[영화 '하모니' 실제 모델 청주여자교도소, 지적장애인들 위해 봉사활동]
형기 길어 배운 기술 활용못해 '밖에 나가 좋은 곳에 쓰자'…
"출소해서 미용실 열면 고아원·양로원부터 찾을 것"
13일 오전 충북 청주의 지적장애인 시설인 베데스다의 집.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잘린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교도소 수용자(收容者·수감자) 차림으로 가위를 든 여성 3명의 얼굴엔 긴장이 역력했다.
청주여자교도소에 수용 중인 김모(31·7년형)씨, 박모(31·7년형)씨, 정모(50·무기수)씨 3명은 이날 베데스다를 찾았다. 3시간여 동안 지적장애인 15명의 머리를 돌아가며 손질했다. 배변주머니를 찬 지적장애 2급 이규명(67)씨가 '바리깡'이 머리를 스치자 기분이 좋은 듯 "으으응" 소리를 냈다. 처음엔 깎기 싫다고 입을 삐죽 내밀던 뇌병변 2급 김영실(여·67)씨도 바뀐 머리를 거울에 비춰보곤 박수를 쳤다.
- 13일 충북 청주여자교도소 수용자 3명이 장애인 시설인 베데스다의 집에서 미용 봉사를 하고 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용된 정모(50)씨는 머리를 깎아주면서 “미용 기술을 배운 지 15년이 됐는데 이제야 제대로 써먹게 됐다”며 멋쩍게 웃었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여자교도소 수용자들의 합창을 주제로 했던 영화 '하모니'의 실제 모델인 청주여자교도소 수용자들이 이번엔 미용, 제빵 등 자신들이 가진 재능으로 사회 봉사에 나서고 있다. 청주여자교도소는 국내에 하나뿐인 여자 교도소로, 600여명이 수용돼 있다.
지난 1993년부터 수용자들이 출소 후 자립을 돕겠다는 차원에서 화훼, 제빵, 미용 등 5개 기술을 가르쳐왔지만, 대부분 장기수들이라 십수년 동안 기술을 배우고도 이를 응용할 곳이 없었던 게 아쉬움이고 한계였다. 성병훈 직업훈련 과장은 "각자의 재능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바깥으로 나가 좋은 곳에 써보자는 취지로 봉사활동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미용 봉사엔 교도소에서 실력이 제일 나은 김씨와 박씨, 정씨가 대표로 선정됐다. 작년 11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장애인 시설이나 고아원 등을 찾았다. 21명의 제빵반 수강자와 19명의 화훼반 수강자들도 각자가 정성껏 만든 빵과 꽃장식을 어려운 사람들의 보호시설 등에 보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바깥' 미용봉사 활동인 김씨는 처음엔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어색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움츠러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감사 인사를 받자 걱정은 순식간에 녹았다. 배변주머니를 든 이씨는 이날 문 밖까지 나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만감이 교차해요. 설레고, 참회하고, 보람되고. 고아원에 가면 집에 있을 애들이 눈에 밟히고, 노인들을 뵈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고요."
김씨는 17살이 되던 해 집안의 반대로 결혼식도 올려보지 못하고 살림부터 차리게 됐다고 한다. 자식도 둘이나 낳았지만 심한 의처증인 남편의 폭행을 못 이기고 결국 칼을 들고 말았다. 2007년, 그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처음엔 아이들만 두고 수용되는 게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고 했다.
김씨는 이를 악물었다. 출소 후 자식들을 키우려면 일거리가 필요했다. 제빵, 미용 등 닥치는 대로 배워 자격증을 취득했다. 힘이 들면 집에서 엄마만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했다. 2011년 충북지역 미용 기술대회에 출전해서는 동메달을 땄다. 다음 목표는 전국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이다. 송인섭 청주여자교도소 소장은 "김씨 같은 수감자들은 출소 후 취업이나 창업을 하게 될 경우 정부에서 취업성공수당 및 창업자금을 지원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2년 뒤 출소하면 동네에 있는 고아원, 양로원부터 찾을 거예요.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경험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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