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결혼식의 문제점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09. 5. 21. 23:03

[모두가 피곤한 '고비용' 결혼식]

[7] 신랑·신부 얼굴도 안보고 밥먹으러… 식장이 식당으로 전락

 

다음 달 20일 결혼하는 박모씨(34·출판사 직원)씨는 피로연을 남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예상 하객 600명 가운데 신랑·신부의 친구와 직장 동료 등 젊은 사람 150명에게는 '식권' 대신 달콤한 화과자(和菓子·찹쌀가루와 팥 등을 써서 화려한 모양으로 만든 일본 과자)를 예쁘게 포장해서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박씨는 "2년 전 친구 결혼식에서 본대로 똑같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거든요. 솔직히 젊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그 나물에 그 밥'인 피로연 음식에 질려 해요. 그때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던 친구들이 너나없이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했어요."

화과자 선물세트는 15개들이 기준 개당 1만원 안팎이다. 박씨는 "아무리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리려고 해도, 피로연 식대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예상 비용 1200만원 중에서 10%는 아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꽃 장식과 고급 식기, 와인 잔이 배열된 서울 강북의 한 특1급 호텔 결혼식장. 이 호텔의 피로연 식대는 하객 1인당 8만~12만원이다.

혼주와 신랑 신부, 하객을 모두 피곤하게 만드는 '고비용' 결혼식 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하객에게 무조건 음식을 접대'하는 피로연 문화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차츰 힘을 얻고 있다.

결혼식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하객들 밥값'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집안의 위세를 보여주는 자리'라는 관념이 강하다 보니, 혼주들은 피로연을 생략하거나 '저렴한' 메뉴를 고르고 싶어도 선뜻 행동에 옮기기 어렵다.

업체들은 이 같은 혼주의 마음을 파고든다. 특1급 호텔의 경우 하객 1인당 한 끼 밥값이 1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 시내 중저가 결혼식장도 2만원대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단체 손님인 점을 감안하면, '어딜 가나 거기서 거기'이기 쉬운 한 끼 식사에 고급 식당 수준의 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피로연 비용이 떨어지지 않으니 결혼식 비용이 줄어들 리 없고, 결혼식 비용이 만만치 않은 까닭에 청첩장을 널리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특별히 친한 사이가 아닌데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이 늘면서, 하객들이 식장에 오면 축의금만 전달하고 곧바로 피로연장으로 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전례원 소속 전문 주례인 김정(75)씨는 "손님들이 신랑·신부 얼굴은 보지도 않고 피로연장으로 휙 올라가 버리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고 했다.

다들 똑같이 식을 치르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로연을 바꿔서 조촐하고 우아하게 식을 치르겠다는 신랑 신부와 혼주들이 꽤 많다. 고도원(57)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들 딸을 결혼시킬 때 아주 가까운 일가친척만 초대했고, 음식은 부인이 집에서 고기를 재우고 김치를 담가서 대접했다. 고 이사장은 "음식에 관한 한 결혼식이 장례식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육개장과 모듬전, 혹은 편육에 과일과 떡을 곁들이는 식으로 간소하게 보편화된 장례음식의 틀을 결혼식에도 적용하자는 얘기다.

그는 "따끈한 설렁탕이나 국수 한 그릇이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데 충분하다"며 "꼭 초대해야 할 사람만 초대해서 공공시설에서 간소하게 식을 올린 다음, 가까운 일가만 식장 주변의 소박하고 깔끔한 밥집에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한국전례원 신종순(69) 부원장은 부산 지역의 피로연 문화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신 부원장은 "부산 지역에서는 결혼식이 끝난 뒤 하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1만원 안팎의 돈을 봉투에 넣어서 주고, 멀리서 온 친지들만 따로 모여 밥을 먹는다"며 "이제 집에서 혼사를 치르는 사람은 없어진 만큼, '잔치 음식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손혜경(여·39) 웨드사업부 본부장은 "피로연 문화를 단번에 통째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밥'과 '선물'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밥 먹고 갈 시간이 없는 손님들이나 낯선 사람들과 멀뚱멀뚱 앉아있기 어색한 손님들에게 안성맞춤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손 본부장은 "이런 식으로 '선택 사양'을 도입한 식장이 조금씩 늘고 있고 하객들의 반응도 좋다"며 "소비자들이 앞장서 이런 식장들을 선호하면, 얼마 안 가 업계 전반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