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1,400여 년 전 부여 땅으로 들어간다. 정림사는 웅진을 버리고 사비를 선택한 성왕의 뜻을 더 깊고 굳게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 듯하다. 무왕의 전설이 내려오는 궁남지와 백제의 마지막을 함께 겪어야 했던 부소산성 낙화암과 백마강은 오늘도 푸르기만 하다. 부여는 백제의 고도 사비의 흔적이 빛나는 역사의 길을 고스란히 품었다. | |
궁남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마를 캐던 소년이 서동요를 불러 신라의 공주를 신부로 맞이했다’는 이야기로 더 잘 알려진 무왕. 그가 600년 백제의 30대 왕에 올랐다. 우리는 지금 그가 만들어 놓은 낭만의 한가운데 ‘궁남지’에 서 있다. 무왕이 아들인 의자왕에게 통치권을 넘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 중 하나가 궁의 남쪽에 인공연못과 인공산을 만든 것이다.
궁남지, 아직도 당시의 규모를 알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밝혀진 규모를 감안해서 살펴보면 아마도 연못 크기만 1만 평~3만 평 정도가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 전체가 아니라 일부라는 것이다. 어디 규모뿐이겠는가, 삼국사기에 보면 수로를 만들어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또 물가에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었다. | |
궁남지 포룡정. 연못 가운데 정자가 있고 정자로 가는 다리가 운치를 더한다.
버들잎에 연둣빛 물이 오르는 봄이면 낭창거리며 흔들리는 그 모양도 볼만하다.
연밭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그 옛날 무왕의 발걸음 위로 내 발걸음을 포갠다. 무왕은 아들인 의자왕에게 왕권을 넘겼고 의자왕 대에 백제의 역사가 단절된다. 제국의 꿈이 스러진 이 땅을 무왕은 예견했던 것일까. 지난 여름 화려했던 연꽃이 그립다.
아름다운 돌탑
궁남지를 나와 궁남사거리에서 직진, 오른쪽에 보이는 정림사지로 들어간다. 박물관도 있고 유명한 5층석탑도 보인다. 정림사지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앞에 박물관 건물이 보이고 왼쪽 옆에 5층석탑이 보인다. 석탑 앞에는 인공으로 파 놓은 연못이 있고 연못 뒤에 탑이 서 있다.
돌탑이 아름답다. 탑돌이 하듯 탑 주변을 맴돌았다.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바라보기도 했다. 1400년 된 돌탑이지만 아직도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아마도 비례와 균형의 법칙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 법칙이 어떻게 적용됐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바라보면 볼수록 아름다움은 깊어져 갔다.
탑 전체로 볼 때 상대적으로 긴 기단은 탑 전체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다. 그리고 각 층의 지붕돌은 그 끝이 조금씩 하늘을 향하고 있어 하늘로 솟구치는 기상이 느껴진다. 장중하면서도 경쾌한 정림사지5층석탑 하나로도 정림사지를 찾아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겠다. 이 탑은 아름다움 이면에 역사의 흔적을 안고 있다. 나당연합군으로 참전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평제탑’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꽃 같은 그들, 낙화암에 다시 피어나다
정림사지에서 정문으로 나와 우회전해서 조금 가면 궁남지에서 걸어왔던 그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만나면 우회전해서 부소산성을 향해 간다. 미성삼거리를 만나면 구드래나루터 방향으로 가지 말고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 길 왼쪽에 부소산성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있다.(부소산성 이정표만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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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 반월루. 반월루에 올라 보면 부여 읍내가 한 눈에 다 보인다.
해발 106m의 부소산은 산을 둘러싼 부소산성이 있어 유명하다. 백제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부소산성으로 들어간다. 부소산성에서 처음 만난 건 삼충사다. 삼충사는 의자왕 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 투옥되어 죽은 성충과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탄현을 지켜야 한다며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흥수, 김유신의 5만 군대에 맞서 5천의 결사대로 싸우다 황산벌에서 죽은 계백 장군 등 세 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이다.
충렬사를 지나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길을 따라 올라간다. 포장된 도로이기는 하지만 주변에 숲이 있어 팍팍하지만은 않다. 영일루를 돌아보고 전망이 좋은 반월루로 향한다. 반월루는 부여읍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오르면 저 멀리 궁남지도 보이고 읍내에 있는 정림사지도 볼 수 있다.
발걸음은 부소산성길의 핵심 포인트인 낙화암으로 향한다. 그 옛날 나당연합군이 침입하였을 때 백제 사람들이 강으로 뛰어내려 죽은 곳이다. 이른바 ‘삼천궁녀’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삼천 명의 궁녀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낙화암 부근의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음으로 백제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사료는 증언하고 있다.
낙화암 절벽 위에 세워진 백화정은 그 자체로 바위에 피어난 꽃 같다. 낙화암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고란사가 나온다. 이번 걷기여행의 종착지점이다. 절 풍경소리에 미련을 두고 고란사 나루터에서 배를 탔다. 낙화암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물길이 운치가 있지만, 직접 배를 타고 물길 따라 구비 도는 부소산 자락을 올려보는 멋도 색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구드래 나루터에 도착하고 있었다.
구드래 나루터는 백제 사비성(부여)의 관문 역할을 했던 포구였다. ‘구드래’라는 이름을 오늘 날 말로 바꾸자면 ‘큰 나라(大王國)’에 가장 가깝다. 구드래 나루터는 ‘큰 나라’의 수도로 들어가는 해상관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큰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 |
길 안내 자가용 자가용은 서해안 고속도로 대천 I.C에서 40번 국도를 이용하여 부여로 진입하거나, 천안~논산 고속도로 서논산 I.C에서 나와 4번 국도를 따라 부여로 진입 - 궁남지.
대중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부여행 버스가 많다. 기차는 논산역에서 내려서 논산~부여 간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숙소 부여 읍내에는 관광호텔과 모텔 등이 있다. 최근에 조성된 백제문화단지 부근에 롯데리조트가 있다.(부여 읍내에서 약 8km 거리).
주변여행지 정림사지 부근에 부여 국립박물관이 있고, 부여 읍내에서 8km 정도 거리에 백제문화단지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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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좋은 시기 : 봄, 가을. 궁남지 연꽃을 보려면 8월~9월초쯤에 가야 한다.
주소 : 출발 : 궁남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 도착 : 고란사-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1
총 소요시간 : 3시간
총 거리 : 4.8km
준비물 : 편안한 운동화. 물 한 병. 햇볕 가릴 모자. 햇볕 차단제.
요금 : 궁남지는 주차요금과 입장료가 없다. 부소산성은 입장료 2000원, 정림사지는 입장료 1500원. 도착지점인 고란사선착장에서 구드래선착장까지 편도 배 요금은 어린이 2200원 어른 3500원.
문의 : 부여관광안내소 : 041-830-2330. | |
백제의 고도를 걷는 역사 기행이다. 연꽃으로 유명한 궁남지는 백제 무왕의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정림사지 5층석탑과 박물관을 돌아보고 삼천 궁녀의 전설이 전해지는 낙화암과 고란사를 돌아보는 코스다.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고 부소산 비탈길을 걷는 구간도 있다. 아스팔트 길을 걸을 때는 다소 팍팍하겠지만 각각의 역사 유적지에서 알고 느끼는 감흥은 걸어야 제맛이다. 정림사지와 부소산성은 출입시간이 정해져 있다. 정림사지는 겨울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여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부소산성은 겨울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여름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