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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_ 강원도 삼척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5. 9. 00:18

영화 봄날은 간다_ 강원도 삼척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그 어린 날의 나도 그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는자 늘 로맨스 영화의 희생양
찬란한 봄이지만 실연당한자에겐 잔혹한 계절
꽃 같은 스무 살, 너희들은 아는가 꽃이 지는 게 왜 슬픈지를…

 

왜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오는 걸까.

↑ [조선일보]강원도 삼척 남쪽 끝자락에 있는 솔섬.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이 소나무 숲은 사진가들 덕분에 사라질 위기를 넘겼다.

 

한때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자연의 배치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황량한 무채색의 겨울이 지나고, 다짜고짜 피어나는 화려한 색깔의 꽃들이나 여기저기서 치고 나오는 연둣빛들이 너무 급작스럽고 요란하단 생각이 들었다. 겨울의 정지와 봄의 움직임 사이의 극단적인 변화를 이어줄 심리적 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는 겨울과 봄의 감정 변증법 사이엔 가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밟으면 곧 바스러지는 낙엽이 꼭 나 같다고 생각하던 시절의 일들이다. 실연당한 내 눈엔 모든 계절이 '가을'이었으면 싶었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거나, 케이블 방송을 보다 보면 지나간 영화를 틀어주는 때가 있다. 어떤 이유인진 몰라도 나는 그런 식으로 '밀양'과 '살인의 추억'을 서너 번 봤다. '봄날은 간다'도 이와 비슷한 경우인데, 아마 방송국 관계자들은 이 영화가 '봄날'에 틀기에 가장 적당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봄날은 간다'를 모르는 청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제 이 영화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그래서 문득 이렇게 시작하는 줄거리를 쓰고 싶어진다. 알다시피 '봄날은 간다'에는 이영애 와 유지태 가 나온다. 이 영화는 '소리'를 채집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란 직업을 가진 상우가 강릉방송국 라디오 PD인 이혼녀 은수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이야기다, 라고.

영화는 줄곧 담담한 시선을 유지한 채 상우가 소리를 모으기 위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막 사랑에 빠진 연인의 심리적 긴장감을 담아냈다. 은수와 상우가 처음 만나는 허름한 정선역, 동해바다가 보이는 묵호의 은수 아파트, 삼척의 신흥사, 신흥사 근처에 있는 너른 대나무 숲, 그리고 기억 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는 마지막 장면의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물을 수 있는 건, 상우가 아직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상우의 질문에 "헤어져!"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었던 건, 은수가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나는 내 소설의 도입부에 이 부분을 인용했었다. "내가 잘할게!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말했던가.

내가 변할게! '추억'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그 시절의 젊은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잘한다고, 변한다고 울먹이던 사람들은 결국 버림받는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늘 로맨스 영화의 희생양이 된다. 공포영화에서 가슴 큰 금발머리가 언제나 첫 번째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이것이 연애의 잔혹한 법칙이다."

유지태를 보면 영화 '바이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랑을 굳이 '러브'라고 말하던 열아홉 살, 친구의 자살, 서태지 의 음악이 BGM으로 깔리는 '바이준'을 보다가 "타자기와 뭉크의 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 단지 그것들이 열아홉 살,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의 전부였다"로 시작하는 '아담이 눈뜰 때'의 첫 구절을 떠올렸다.

지금은 남편이 된 애인의 스튜디오에서 '바이준'을 촬영했었다. 한 번의 큰 실연으로 사랑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던 때였으므로, 나는 영화에 찍힌 익숙한 공간을 제법 담담히 바라볼 수 있었다. 유지태의 데뷔작이 내게 더 특별해진 건, 그래서였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내게 꽤 오랫동안 청춘을 상징하는 무엇이었다. '봄날은 간다'에서 여자인 은수보다 남자인 상우에게 더 깊이 감정이입이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때 누군가에게 깊게 '실연당했다'는 내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봄날은 간다'를 본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버린 애인의 차를 긁어놓고 달아난 상우처럼 이 봄의 찬란함을 아프고, 쑥스럽게 바라본다. 그리고 어느 날 삼척에 갔다가 영화에서 '파도소리'를 채록하던 맹방해수욕장에 앉아 소주를 나누어 마시던 때를 기억해 냈다. 봄날은 간다. 너무 빨리. 꽃이 지는 게 슬프다고 말하자, 스무 살 청춘들이 내게 물었다. 왜요? 대답해준다 한들 알 리 없는 꽃 같은 스무 살, 나는 그냥 웃었다.

●봄날은 간다 : 감독 허진호 . 치매에 걸린 할머니, 홀로 된 아버지와 사는 상우는 지방 방송국 PD인 은수를 만나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여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된다.

함께 소리를 찾아 강원도 를 여행하며 급격히 사랑에 빠진 이들은 서로의 감정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