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에 가면 용문사와 그 앞의 은행나무(사진)를 놓칠 수 없다.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용문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은행나무다. 나이는 1100년 정도로 보고 있고 나무 높이 62m, 줄기 둘레 14m에 달한다. 가을에 단풍이 들었다가 떨어지는 낙엽의 무게만 2t, 은행 열매는 15가마니나 된다.
이 나무는 신라 경순왕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또 신라의 고승 의상 혹은 원효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도 전한다. 용문사는 여러 번 전쟁과 화재를 겪었으나 이 나무만은 그 화를 면했다. 사천왕전이 불탄 뒤부터는 이 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삼고 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그 변고를 알렸다 전한다. 조선 세종 때는 정삼품(正三品)보다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은 명목(名木)이다.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부르는데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이 은행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지어졌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 하였다고 한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으나 이후 중창되었다.
상원사도 유서가 깊은 절이다. 유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330년대에 보우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했고, 1398년(태조 7)에 조안이 중창했으며, 무학이 왕사를 그만둔 뒤 잠시 머물렀다. 1458년 해인사의 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했다. 1462년(세조 8) 세조가 이곳에 들러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어명을 내려 크게 중수했다고 하는데, 최항이 그때의 모습을 기록한 '관음현상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1463년(세조 8)에는 왕이 직접 찾았다. 상원사도 1907년 의병 봉기 때 일본군이 불을 질러 겨우 법당만 남게 되었다. 이후 신축했으나 6·25전쟁 때 용문산전투를 겪으면서 다시 불에 타 없어졌다가 이후 복원됐다.
양평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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