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두 귀 모습을 한 바위산과 기묘한 돌탑을 보기 위해 전북 진안의 마이산도립공원을 찾는 사람은 한반도가 생긴 이래 가장 규모가 큰 ‘토목공사’ 흔적과 만나게 된다. 시공자는 자연, 공기는 수백만년, 원자재는 돌과 모래를 비벼 만든 ‘천연 콘크리트’로 수 km 거리를 2000m 두께로 쌓았다. 공법은 지하 8000m에서 단단한 바위로 굳힌 뒤 주변보다 400m 이상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비바람과 얼음의 힘으로 장기간 깎아내는 것이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이렇게 형성된 세계 최대 역암층의 홍보탑이다. | |
탑사의 돌탑 - 조선 후기 임실에 살던 이갑용이란 이가
1885년 은수사에 수도하던 중 쌓은 것으로 80여 개가 있다.
“콘크리트를 부어 산을 만들었나?”
지난 22일 마이산도립공원의 탑사 들머리, 100m가 넘는 까마득한 암 마이봉 절벽을 바라보던 한 탐방객이 동료에게 말했다. “콘크리트를 부어 산을 만들었나?” 실제로 절벽엔 화강암, 편마암, 규암 조각이 모래와 뒤섞여 촘촘히 박혀있지만 진흙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먹 크기의 돌부터 1m 가까운 바위도 들어있다. | |
잘 살펴보면, 마치 물살에 휩쓸린 듯 돌들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며 늘어선 모습도 있다. 동행한 노병섭 전주제일고 교사(지구과학)는 “홍수로 돌과 자갈이 휩쓸려 퇴적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약 1억년 전 진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중생대 백악기는 남반구에 있던 초대륙 로라시아가 흩어지면서 한반도는 물론 중국 땅덩어리가 이합집산을 거쳐 현재의 꼴을 이루던 시기였다. 지각변동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한반도는 남북방향으로 누르는 힘을 받았는데, 이미 있던 북동 방향의 단층선을 따라 지층이 서로 미끄러지면서 많은 분지가 형성됐다. 경상분지를 비롯해 음성, 공주, 부여, 영동, 무주 등의 분지는 이때 생겼다. 진안 부근에서도 구부러진 형태의 두 지층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면서 중간에 함몰지가 형성됐다. 함몰된 계곡 속으로 기반암 절벽에서 홍수 때마다 돌과 모래가 쏟아져 들어와 부채꼴 형태로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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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사에서 화엄굴로 가는 도중 드러난 역암층의 단면 - 거대한 바위도 홍수로 휘쓸려 왔음을 알 수 있다. | |
노 교사는 “마이산 역암층 돌의 모서리가 닳지 않은 상태이고 크고 작은 것들이 뒤섞여 있으며 큰 바위까지 들어있다는 것은 멀지 않은 기반암에서 큰 홍수와 함께 쓸려왔음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진안분지는 길이 약 32㎞, 너비 약 18㎞의 반 사다리꼴 분지이며, 마이산 역암층은 1500~2000m 두께로 분지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다. 진안 분지에는 큰 호수가 있었고, 마이산은 호숫가에서 가까운 선상지였다.
중생대 때 형성된 분지 분포도 (자료 제공: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분지의 형성과 퇴적과정이 정확히 언제 얼마 동안 이뤄졌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이영엽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1억2천만~8천만년 사이에 수백만년 동안 계속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형성시기가 비슷한 시화분지에서는 셰일 지층에서 공룡화석이 발견되고 있지만 펄이 아닌 모래와 자갈이 쌓인 마이산 역암층에서는 화석이 거의 나오지 않아 연대추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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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사 돌탑으로 되살아나는 마이산 역암
이 교수는 진안분지가 모래와 자갈에 이어 두터운 화산재로 채워졌다고 설명했다. 그후 진안분지는 양쪽 지층이 잡아당기는 바람에 땅속 7~8㎞ 깊이까지 가라앉았다가, 이번에는 양쪽에서 누르는 힘을 받아 주변 지형보다 400m 높은 곳으로 솟아올랐다. 따라서 현재의 마이산 봉우리는 지난 1억년 동안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과 역암의 무른 부분이 침식돼 사라지고 남은 골갱이이다. 마이산 봉우리에 벌집모양으로 숭숭 뚫린 구멍(타포니)은 현재도 진행중인 풍화현상을 잘 보여준다. | |
탑사와 암 마이봉(왼쪽) - 두터운 역암층과 타포니를 볼 수 있다.
마이산 거대타포니 근접 모습(오른쪽) - 역암층을 구성하는 바위와 작은 풍화 흔적도 보인다.
역암 자체는 꽤 단단하지만 자갈이나 바위 등이 빠져나간 곳을 중심으로 풍화가 집중돼 구멍이 점점 커진다. 마이산의 거대한 타포니는 대규모 역암층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으로 평가받는다. 퇴적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형성된 화강암과 달리 풍화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이산도 북사면엔 타포니가 거의 없어 이채롭다. 이는 겨울에 햇빛을 많이 받는 남사면에서 밤낮의 온도차이가 커 얼음이 얼고 녹으면서 바위를 쐐기처럼 부서뜨리는 힘이 많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
길버트 형 삼각주 지층 - 백악기 때 퇴적암이 호수 안쪽으로 차례로 쌓여나간 모습을 보여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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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이산 하면 탑사의 이국적 돌탑을 떠올린다. 조선 말 이갑용이 쌓은 돌탑과 그보다 1만배나 연륜이 많은 마이산은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돌탑의 재료 대부분은 마이산 역암에서 떨어져나온 바위이다. 스러지는 마이산은 돌탑으로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산은 진안분지 경계선인 북동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았다.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건조하고 황량한 계곡에 수시로 홍수와 산사태가 났다. 그 안쪽 커다란 호수가엔 공룡이 먹이를 찾고 익룡이 하늘을 가로질렀을지도 모른다.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앞 하천변에는 백악기 호수의 증거가 남아있다. 호수로 흘러들던 하천의 토사가 쌓이면서 퇴적물이 호수 안쪽으로 전진해 가면서 비스듬한 층을 이루는 독특한 퇴적층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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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솟는 고드름의 비밀
수 마이봉(해발 667m) 바로 아래에 있는 은수사는 땅에서 솟는 고드름으로 유명하다. 원불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화수를 떠놓고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물이 얼면서 고드름이 위쪽으로 자라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를 정화수가 불체(佛體)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팀이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2004년 <한국기상학회지>에 낸 논문에서 솟는 고드름의 형성원리를 밝혔다. 먼저 영하의 날씨에 그릇의 표면과 수면의 물이 언다. 스테인리스 그릇처럼 열전도도가 높아 바닥에서 정화수의 열을 빼앗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 표면에서 마지막까지 얼지 않는 ‘숨구멍’이 생긴다. 물은 얼면서 부피가 10% 증가하는데, 팽창한 물이 숨구멍에 난 관을 따라 얼음기둥을 형성해 위 또는 기류의 방향에 따라 옆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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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사에서 본 수 마이봉 | |
연구진은 천연기념물인 600년 된 청실배나무가 있는 은수사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하나 탑사와 계곡 내 상가에서도 솟는 고드름이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 또 냉기가 장기간 지속되는 등 마이산의 독특한 기상조건이 솟는 고드름 형성의 중요한 원인지만, 같은 조건이 충족되는 다른 곳에서도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윤마병 대전과학고 교사 등은 한걸음 나아가 실험 냉동장치를 이용해 마이산의 솟는 고드름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지난해 <한국지구과학회지>에 보고했다. 이들은 야외에서는 영하 3~5도에서 솟는 고드름이 잘 만들어지는데 비해 기류조절 등이 어려운 냉동고에서는 영하 12~13도가 최적 조건이라고 밝혔다. 또 솟는 고드름의 형성은 매우 민감해 진동과 물의 불순물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연구진은 2006~2008년 동안 마이산에서 3㎝ 이상의 솟는 고드름을 모두 34개 확인했다. | |
은수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386호 청실배나무(왼쪽) - 산돌배나무의 변종이며 이 부근에서 솟은 고드름이 자주 만들어진다.
마이산의 정화수에 생긴 솟는 고드름(오른쪽) (출처: 지구과학회지 2009년)
한편, 경기도 연천, 강원도 삼척 환선굴 등 폐 터널과 동굴에서도 규모가 큰 솟는 고드름이 발견되고 있지만 석순처럼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어서 마이산의 것과는 생성원리가 전혀 다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