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 골목길의 시작은 중구 중림동에서 남영역에 이르는 6차선의 도로인 청파대로다. 청파대로에서 배나무다리길, 단비길, 미나리길 등 재미있는 이름의 길들이 가지 치듯 올라간다. 이 길들은 다시 능선 중간에서 샘길과 만난다. 샘길은 감동산길과 이어지고 감동산길은 청파새싹길, 청파길, 만리시장길로 연결된다. 청파동은 서울에서 가장 이색적인 공간감을 보여주는 마을 가운데 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식 주택이 들어섰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도시형 한옥이 지어졌고 1970년대에는 서민형 양옥과 달동네형 집들도 더해졌다. 1980~90년대에는 다세대주택과 빌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다양한 양식의 집들이 어울리면서 ‘부조화 속의 조화’를 만들어낸 곳이 청파동이었다. 건축학자 임석재 교수는 청파동을 두고 ‘가히 20세기 집 박물관이라 할 만한 동네’라고 평하기도 했다. 감동산 1길에 있는 ‘청파슈퍼’ 아주머니는 4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주머니는 “최근 몇 년 전부터 골목길 찍는 사람이 한 두 사람씩 다녀가는데 대부분 실망하고는 돌아간다”고 말했다.
“옛날엔 온통 일본식 집이었지. 지금은 대부분 연립주택이나 빌라로 개조됐어. 숙명여대와 가까워 학생 자취방으로 세 주려고 원룸으로 개조한 집이 많아. 요즘에는 고급 빌라도 많이 들어서더라고. 이제 옛날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몇 채 안 남은 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 시절 골목길의 흔적’이 파편적으로나마 청파동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청파동 길을 뒤지다보면 진귀한 화석을 만나듯 골목길과 조우할 수 있다. 옛날 골목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은 만리시장 3길이다. 만리시장2길과 청파길 사이를 잇는 이 길은 달동네형 집과 좁은 길이 어우러진 ‘골목길 풍경’의 정수를 보여준다. 폭은 두 세 걸음 정도인데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면 골목이 꽉 찰 정도다. 양옆의 담 높이도 어른 키 정도로 낮다. 길은 양옆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뻗어가기도 하고 5~8단 수준의 계단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배문고등학교와 청파초등학교가 가까이에 있어 하교시간이 되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붐비기도 한다.
미나리1길과 미나리2길, 단비길도 옛날 골목길의 단편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폭 좁은 계단과 쪽문, 구불구불하고 꺾임이 많은 길의 진행양식을 볼 수 있는데 짧은 마디 단위로 남아있어 아쉽다. 특히 미나리 2길에서는 잘 보존된 도시형 한옥을 볼 수 있다. 붉은 벽돌로 담을 높이 쌓고 나무 대문을 내어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겨우 버티고 있는 한옥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움이 일기도 한다. 기대했던 일본식 주택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샘길과 청파길 일대에 겨우 5~6채 남짓 남아있었는데 주위의 연립주택에 비해 눈에 띄게 낡아 보여 안타까웠다. 청파동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골목길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인 계단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골목길은 때로 비탈길과 개개의 집 앞에서 여러 형태의 계단으로 변주된다. 갈라지고 합치기를 반복하며 입체적인 구성미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다시 다양한 모양의 문과 창문이 어울리면서 골목 특유의 리듬감과 조형미를 완성한다. 하지만 청파동에서는 복잡하게 얽히고 갈라지는 길과 계단의 어울림은 만나기는 어렵다. 연립주택과 빌라로 지속적인 개발이 진행되면서 길이 넓어졌고, 이와 함께 계단이 건물 속으로 숨어버린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