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북아현동 능안길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2:11

서대문구 안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북아현동.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달동네다. 능선 아래쪽으로 경기대와 이화여대, 충정로로 이어지는데, 아래 부분은 재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반듯한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능선 중반을 기준으로 윗부분으로 올라가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한다. 곧 허물어질 듯 위태롭게 들어선 집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경사가 급하고 계단도 많다. 오래된 가게, 벽에 걸어놓은 빨래, 길 한 켠에 내어놓은 부서진 장난감과 화분 등 골목길을 대표하는 ‘아이콘’도 쉽게 만날 수 있다북아현동은 영화 <추격자>의 추격 신과 자동차 충돌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비좁다’와 ‘가파르다’ 어쩌면 북아현동을 서술하는 데는 이 두 단어가 가장 알맞을지도 모른다.

 

  • 1 늦은 봄, 골목에 핀 붉은 장미가 눈부시다. 금화장2길.
  • 2 능동2길. 깔끔하게 정리된 골목길을 산책하다 보면 마음이 청명해진다.
  • 3 집 세 채가 나란하다. 아침 저녁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다정한 이웃을 상상하게 된다.
  • 4 남매가 손을 잡고 나란히 골목을 걷는다.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풍경이다.

 

 

 

끝없는 골목의 이합과 집산

아현역 정류장에서 큰 도로를 따라 비탈길을 올라갔다. 처음 길을 오를 때만 해도 아직 이곳에 골목길이 남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길바닥은 아스팔트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길가에는 주차된 자동차들이 나란했다. 청파동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농방2길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 어느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첫 시작은 농방길. 북아현동을 대표하는 가구거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날만한 좁은 골목길은 아니지만 골목길의 정취는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녹슨 양철지붕을 인 낮은 집과 거친 시멘트 담벼락, 벽 군데군데 내걸린 빨래와 길가에 놓인 세간은 오직 골목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북아현동을 한나절 헤매고 다녔지만 골목길의 얼개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농방길을 따라가면 마을 정상부분을 가로지르는 금화장2길과 만난다. 북아현동의 골목길은 금화장2길을 뼈대 삼아 능안길, 능동길, 농방길, 호반길 등이 갈라져 내려온다. 그런데 길은 경남아파트 방향과 경기대학교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얼기설기 얽혀들기 시작했다. 능선 중간 부분부터 금화장길, 능안2, 호반3, 능안1길로 갈라졌고, 다시 능동3, 능동길 등과 합했다. 길은 다시 막다른 골목과 계단을 품으면서 가지를 쳤는데 좁은 골목길이 얼기설기 모인 풍경은 평면도를 그리자면, 피부를 수놓고 있는 모세혈관 조직처럼 보일 것이다.

 

북아현동 골목길을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종종걸음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파른 계단이 많은 데다 급한 꺾임길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L자형, S자형, Y자형 등 다양한 형태의 갈림길도 많았다. 북아현동의 길은 끝없는 이합과 집산을 보여주었다. 한편, 길의 형식적 특징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금화장2길 일대는 기하학적인 건물의 중첩이 돋보였다. 2~3층 규모의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이 면과 면을 겹치며 서 있었다. 능동길에서는 급격히 이어지는 계단과 그곳에 놓인 정감 어린 생활소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푸근한 감정이 들었다. 능안길은 골목길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었다. 북아현동 골목길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었다. 작은 계단과 둥글게 휘며 돌아가는 골목길, 붉은 기와지붕에 흰 벽을 올린 달동네의 전형적인 집들이 어울려 있었다.

 

 

급속도로 바뀌는 마을 풍경

최근 서울의 화두는 재개발과 뉴타운이다. 지난 총선에서 재개발과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기도 했다. 재개발 열풍은 북아현동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아현역에서 북아현동으로 올라가는 담벼락 여기저기에는 ‘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주택조합’이라는 긴 제목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공개질의, 재개발조합의 공개 답변 등 벽보로 어수선했다.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초리도 뜨악했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사진 찍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는 주민도 많았다. 곧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옛 골목 풍경이나마 남겨 놓으려고 그런다고 대답했더니 다 쓰러져가는 동네 사진 남겨서 좋을 것 뭐 있냐고 역정을 내곤 했다.

 

북아현동은 1940년대부터 서울의 주요한 서민촌이었다. 6.25 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하나둘 모여 언덕에 집을 지으면서 지금의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경제개발 시대 보따리를 들고 서울역에 내린 시골 사람이 제일 먼저 걸어와 방을 구한 곳도 이곳이었다. 신촌 대학가와도 가까워 가난한 자취생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뒤 재개발 움직임이 일면서 마을 풍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주택재개발 관리처분인가 처리가 되어 재개발도 본격화되는 중이다. 이미 이주가 시작된 곳도 있다.

 

 

골목, 길의 주름 또는 기억

“몇 년 전부터 재개발이 된다고 하면서 동네 인심만 흉흉해졌지. 누구는 재개발 찬성하고 누구는 반대하면서 엄청 싸웠지. 이웃 간에 등지기도 했고…….” 금화장2길에서 만난 김 아무개 할머니의 말이다. “내가 여기서 50년 넘게 살았는데, 예전에는 주변이 전부 당근밭이었어. 무밭도 많았고. 그때만 해도 인심 좋았지. 콩 한쪽도 나눠먹었으니까.” 능안2길에서 만난 송 아무개 할머니는 “서울에서 여기처럼 전망 좋은 데가 어딨냐”고 했다. “햇빛이 잘 들어서 화분 가꾸는 재미가 쏠쏠해. 굳이 아파트 들어와 봐야 돈 있는 사람만 좋지 뭐. 하수도 공사도 하고 보도블록도 새로 깔고 하니 그럭저럭 살만 해.” 물론 재개발을 바라는 분도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허름한 동네가 어디 있어? 하루 빨리 재개발이 돼서 번듯한 집들이 들어서야지동네 사진 찍어서 많이많이 내줘. 얼른 재개발 되게.

 

한 시인은 골목을 ‘길의 주름’이라고 정의했다. “길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 골목이 되기도 한다. 길들도 주름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길의 주름을 골목이라고 불러도 좋다. 골목은 길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길이 되는 것이다.” 북아현동은 그 시인이 말한 것처럼 길의 주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었다. 그 주름 속에는 골목이 오랜 세월 간직한 기억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높은 계단과 낡은 벽, 구불거리는 좁은 길, 오래된 지붕, 선인장이 심어진 화분,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 허물어질 것만 같은 문…. 북아현동 골목길을 걸으며 담벼락마다 환하게 핀 장미꽃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바람이 불면 장미 꽃잎이 난분분 흩날리며 이마 위에 내려앉곤 했다. 그건 분명 삭막한 아파트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풍경과 감정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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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포토갤러리에서는 출사미션 <아름다운 한국> 시리즈 5탄 <나의 사진기로 남해를 담는다>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중 총 10분의 사진을 선정해 6월 26일(금)에 노출될 '길숲섬 남해 창선∙삼천포대교' 편에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응모와 참여 부탁 드립니다.
  • 기간 | 2009.6.01 ~ 2009.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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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 잡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과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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