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고려삼계탕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2:09

매운 찬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와 10평도 안 되는 방을 점령한다. 아이는 잠결에 안간힘을 쓰며 추위와 싸운다. 걸쭉한 목소리가 땔감처럼 훈훈하게 아이의 머리 위로 번진다. "내 댕겨오겠소" 동이 틀려면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벌써 일 나갈 채비를 마쳤다. 아이의 실눈 사이로 보이는 것은 닭털이 묻은 낡고 헤진 장화의 뒤꿈치다. 아버지의 장화다. 다섯 살 아이에게 아버지는 '헤진 장화를 신는 사람'이었다.

 

 

남대문시장서 닭잡던 충청도 청년의 독립선언

<고려삼계탕>(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주인 이준희(50)씨가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영상이다. 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서울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재작년 일흔넷에 작고하기 전까지 가게에 나와서 직접 쓸고 닦고 했던 분이다.


<고려삼계탕>은 이씨의 아버지, 이상림씨가 1960년에 명동의 옛 코스모스백화점(지금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길 건너 쇼핑몰자리) 건너편 골목에 세운 음식점이다. 명동은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황량한 서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 북쪽에서 내려온 실향민들, 온갖 멋을 부린 서울 처자들, 색색의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거렸다. 이상림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이씨는 충남 서천이 고향이다. 1956년 중사로 제대하고 23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두 살 어린 아내를 고향에 두고 말이다. 건강한 몸을 한밑천 삼아 서울로 올라온 그는 남대문시장 닭전에서 일을 했다. 예전에는 사대문 안에 도계장(고기를 얻기 위하여 닭을 잡는 곳)이 있었다. 그 도계장을 '닭전'이라고 불렀다.

 

 

"한국 최초의 삼계탕 전문점" 자부심

이씨는 천성이 부지런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수십 리 길을 걸어 읍내에 두부를 팔러 다니곤 했었다. 그 부지런함 때문에 그는 닭 박사가 되었다. 축 처진 닭의 꼴만 봐도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아맞힐 정도였다. 아들 이씨는 집에서 만들어 먹던 삼계탕을 돈을 주고 사먹는 음식으로 만든 것은 아버지 이씨가 국내 처음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예약을 하기 위해 <고려삼계탕>에 전화를 걸면 "한국 최초의 삼계탕 전문점"이라는 안내음성이 들린다.


삼계탕은 어린 닭의 뱃속에 찹쌀과 마늘, 대추, 인삼을 넣고 물을 부어 끓이는 음식이다. 연계(軟鷄:병아리보다 조금 큰 닭)를 백숙으로 먹는 것을 '영계백숙'이라고 부르다가 인삼을 넣고 끓이면서부터 계삼탕이라고 불렀다. 인삼이 대중화되고 인기를 끌자 ‘계’자와 '삼'자를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과거 ‘좀 사는 집’은 개장국(보신탕) 대신 삼계탕을 먹었다.


복날이면 <고려삼계탕> 주방은 더욱 바쁘다.

 

아버지 이씨는 이 삼계탕을 푸짐하게 만들어서 200원에 팔았다. 당시 200원은 지금으로 따지면 약 7000원에 이를 것으로 한국은행 쪽은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 공식 물가통계를 내기 시작한 것이 1965년이므로 정확한 계산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당시 연탄불에 삼계탕을 끓였는데 처음에는 잘 안 팔렸다. "삼계탕이 너무 많이 남아서 없는 살림에 온 식구들이 매일 포식했지요."이씨의 회상이다. 아버지 이씨는 여러 방법으로 삼계탕을 끓여보고, 다른 사람이 만든 요리법을 배우기도 해서 자신만의 삼계탕 맛을 만들어냈다.

 

 

1978년 현재의 서소문 자리로

10석도 안 되는 자그마한 가게였지만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렸다. 그는 임대료가 올라가자 명동 사보이호텔 맞은편 건물 2층으로 가게를 옮겼다가 다시 옛 제일백화점 자리(지금 명동 한복판)로, 그곳에서 다시 진고개(지금 충무로 2가)로, 진고개에서 서소문 유원건설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1978년 드디어 지금의 <고려삼계탕> 자리에 터를 잡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건물이 생긴 것이다.


아버지 이씨는 <고려삼계탕>이 번창하자 고향에 있던 가족들을 불렀다. 4남1녀의 장남답게 그는 책임감이 강했다. 셋째에게 <백제삼계탕>을 맡기고 다른 동생과 가족은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게 하거나 다른 일을 하도록 도왔다. 그 못지않게 부지런했던 아내 황순금(74)씨는 벌집 같은 가게 쪽방에서 3남1녀를 길렀다. "아버지는 자식이 잘되면 당신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일하는 사람만이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셨지요. 대학생 때 용돈을 한 푼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방학 때 가게 나와 일을 해야만 용돈을 주셨습니다."

 

 

가업 뛰어든 아들, 석달 간 전면 리모델링

리모델링을 했지만 49년 전통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1995년 <고려삼계탕>은 이씨가 교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가업에 참여하면서 변화를 맞는다. 2001년 그는 3개월 동안 문을 닫고 건물 리모델링을 했다.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급여의 50%를 주고 3개월 휴가를 보냈다. 그들은 3개월 뒤 한 명도 이탈없이 다시 모였다. 이곳에서 21년째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씨는 건물을 6층으로 올렸다. 각층마다 보조주방을 두어 빠른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부엌 안에는 화물엘리베이터를 만들어서 식자재나 기타 물품을 빠르게 옮길 수 있게 했다. 오골계탕이나 통닭 등 신메뉴도 추가했다. 영업사원을 두어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고려삼계탕>을 찾도록 판촉활동도 벌였다.


<고려삼계탕>은 유명세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씨 부자는 지난 1985년 '高麗蔘鷄湯(고려삼계탕)'을 상표출원해 이듬해 등록을 마쳤다. 하지만 삼계탕집을 창업하는 이들이 너도나도 '고려삼계탕'이라는 이름을 따라썼다. 결국 이씨는 지난 2008년 동의 없이 상호를 사용한 한 모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이때부터 서울시내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던 '고려삼계탕' 상호는 이씨 집과 직영점만 빼고는 자취를 감췄다.

 

 

주재료는 중간 정도 자란 수평아리 '웅추'

어떤 맛이 반세기 동안 숱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고려삼계탕>은 닭 중에 웅추(雄雛)를 쓴다고 한다. 웅추는 수평아리를 말한다. 크기는 병아리와 다 자란 닭의 중간 정도다. 사람으로 치자면 청소년기쯤 된다. 육질이 담백하고 오래 삶아도 살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내장을 정리하면 약 450g 정도가 된다.


이 집에서 삼계탕을 만드는 법은 대강 이렇다. 웅추를 가져오면 내장을 버리고 식도를 잘라낸다. 그 안에 인삼, 멥쌀이 30% 섞인 찹쌀, 대추, 통마늘을 넣고 다리를 꼬아 묶는다. 솥 바닥에 해동피, 엄나무, 오가피 등을 깔고 웅추를 눕힌다. 바닥에 깐 약재들은 비린내를 없애고 고기 살을 더 담백하게 만든다고 한다. 솥에 정수기 물을 붓는다. 한 솥에 80~100마리 들어간 것을 기준으로 강불에서 45분 끓이는데 팔팔 끓기 시작하면 불순물과 핏물을 없애고 익힌다. 불을 중불로 낮추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약불에서 3시간 이상 끓여 부드럽고 뽀얀 국물을 만든다. 


뚝배기 안에서 봉화처럼 몽글몽글 연기가 올라오는 삼계탕의 국물은 맑으면서도 진하다. 뱃속에 들어간 닭 날개는 간질간질 위장을 간지럽히는 듯하다.  쫄깃하면서도 담백하고 튼실한 게 이 집 삼계탕의 특징이다. 삼계탕과 함께 나오는 밥은 팥을 삶아서 우린 물로 지어 보랏빛이 돈다.

 

 

무라카미 류·자이머우 등 "최고 음식" 칭송

이 집 단골 중에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도 있었다. "한번은 비서관 3명이 와서 3마리를 달라고 합디다. 살들을 발라내서 큰 1마리로 만들어서 가져갔다"고 이씨는 말했다. 미식가로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도 삼계탕을 한국 최고의 음식이라고 칭송했고, 중국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자이머우도 한국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삼계탕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초밥처럼 세계인 모두가 삼계탕을 먹는 날이 곧 오리라는 신념으로, 이씨는 요즘 국제특허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중국,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미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특허권이 이미 나왔다. 그는 아버지의 정직과 성실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 아들의 세계화 꿈에 동참하려는 듯, 이씨의 어머니는 일찌감치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면서 알파벳을 외웠다고 한다.

알아두면 좋은 닭 상식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부터 닭을 키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 신화, 달걀껍데기가 담긴 가야시대 토기 등이 그런 추정의 근거들이다. 시계가 없던 옛날엔 닭울음으로 시간을 알아챘다고 하는데, 고려때 왕실에서는 일명계(一鳴鷄), 이명계(二鳴鷄), 삼명계(三鳴鷄)라 하여 각각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인시(寅時)에 우는 세 종류의 닭을 길렀다고 한다.


닭 날개를 먹으면 ‘바람이 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닭은 보양식으로 통했다. 더운 여름날 찬 것을 너무 먹어 냉한 속을 다스리는 데도 그만이다.  다른 육류에 비해 섬유질과 염분도 적다. 삼계탕 속의 마늘은 강장제 구실을, 밤과 대추는 위장을 보호한다.


북쪽 사람들은 더운 여름에 삼계탕과 비슷한 닭곰탕을 먹었는데 삼 대신 황기를 넣었다고 한다. 궁중에서는 삼계탕과 비슷한 초교탕과 초계탕을 먹었고 요즘에는 한방삼계탕이나 해물삼계탕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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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골계탕 2만원 / 산삼오골계탕 2만5천원

산삼삼계탕 1만8천원 / 삼계탕 1만3천원

통닭 1만3천원 / 전복죽 1만3천원

 

 

위치 : 서울 중구 서소문동 55-3

전화번호 : 02-752-2734

영업시간 : 오전 10시~오후 10시

주차 : 인근 배재빌딩에서 1시간 무료 주차

직영점 : 세종로점 737-1889, 저동점 2265-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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