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역 정류장에서 큰 도로를 따라 비탈길을 올라갔다. 처음 길을 오를 때만 해도 아직 이곳에 골목길이 남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길바닥은 아스팔트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길가에는 주차된 자동차들이 나란했다. 청파동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농방2길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 어느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첫 시작은 농방길. 북아현동을 대표하는 가구거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날만한 좁은 골목길은 아니지만 골목길의 정취는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녹슨 양철지붕을 인 낮은 집과 거친 시멘트 담벼락, 벽 군데군데 내걸린 빨래와 길가에 놓인 세간은 오직 골목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북아현동을 한나절 헤매고 다녔지만 골목길의 얼개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농방길을 따라가면 마을 정상부분을 가로지르는 금화장2길과 만난다. 북아현동의 골목길은 금화장2길을 뼈대 삼아 능안길, 능동길, 농방길, 호반길 등이 갈라져 내려온다. 그런데 길은 경남아파트 방향과 경기대학교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얼기설기 얽혀들기 시작했다. 능선 중간 부분부터 금화장길, 능안2길, 호반3길, 능안1길로 갈라졌고, 다시 능동3길, 능동길 등과 합했다. 길은 다시 막다른 골목과 계단을 품으면서 가지를 쳤는데 좁은 골목길이 얼기설기 모인 풍경은 평면도를 그리자면, 피부를 수놓고 있는 모세혈관 조직처럼 보일 것이다.
북아현동 골목길을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종종걸음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파른 계단이 많은 데다 급한 꺾임길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L자형, S자형, Y자형 등 다양한 형태의 갈림길도 많았다. 북아현동의 길은 끝없는 이합과 집산을 보여주었다. 한편, 길의 형식적 특징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금화장2길 일대는 기하학적인 건물의 중첩이 돋보였다. 2~3층 규모의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이 면과 면을 겹치며 서 있었다. 능동길에서는 급격히 이어지는 계단과 그곳에 놓인 정감 어린 생활소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푸근한 감정이 들었다. 능안길은 골목길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었다. 북아현동 골목길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었다. 작은 계단과 둥글게 휘며 돌아가는 골목길, 붉은 기와지붕에 흰 벽을 올린 달동네의 전형적인 집들이 어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