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용산구 청파동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2:12

서부역에서 숙명여대 쪽을 바라다보면 언덕 능선을 따라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용산구 청파동이다. 연립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골목길다운 옛 골목길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청파동 속으로 걸어가 보면 기대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길은 승용차 두 대가 너끈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고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다. Y자형, L자형, S자형 등 다양한 형태의 골목길은 찾아보기 힘들다. 깎아지른 듯 급한 계단과 막다른 골목도 드물다.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모퉁이에서 우회전을 3번만 하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때 일본식 주택과 한옥, 서민형 주택 등 다양한 양식의 집들이 어울려 독특한 공간감을 빚어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연립주택과 빌라가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여느 동네처럼 평범해져 버리고 말았다.

 

 

 

  • 1 감동산1길. 청파동 골목은 바둑판 구조를 유지하며 비교적 넓고 반듯하게 펼쳐진다.
  • 2 만리시장 3길은 청파동에서 옛골목의 정취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 3 감동산1길에서 만난 강아지의 익살스런 표정.
  • 4 청파동 전경. 일제강점기 시절 주택에서 90년대 다세대주택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한다.

 

 

 

점점 사라져가는 골목길

청파동 골목길의 시작은 중구 중림동에서 남영역에 이르는 6차선의 도로인 청파대로다. 청파대로에서 배나무다리길, 단비길, 미나리길 등 재미있는 이름의 길들이 가지 치듯 올라간다. 이 길들은 다시 능선 중간에서 샘길과 만난다. 샘길은 감동산길과 이어지고 감동산길은 청파새싹길, 청파길, 만리시장길로 연결된다. 청파동은 서울에서 가장 이색적인 공간감을 보여주는 마을 가운데 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식 주택이 들어섰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도시형 한옥이 지어졌고 1970년대에는 서민형 양옥과 달동네형 집들도 더해졌다. 1980~90년대에는 다세대주택과 빌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다양한 양식의 집들이 어울리면서 ‘부조화 속의 조화’를 만들어낸 곳이 청파동이었다. 건축학자 임석재 교수는 청파동을 두고 ‘가히 20세기 집 박물관이라 할 만한 동네’라고 평하기도 했다. 감동산 1길에 있는 청파슈퍼 아주머니는 4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주머니는 “최근 몇 년 전부터 골목길 찍는 사람이 한 두 사람씩 다녀가는데 대부분 실망하고는 돌아간다”고 말했다.

 

“옛날엔 온통 일본식 집이었지. 지금은 대부분 연립주택이나 빌라로 개조됐어. 숙명여대와 가까워 학생 자취방으로 세 주려고 원룸으로 개조한 집이 많아. 요즘에는 고급 빌라도 많이 들어서더라고. 이제 옛날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몇 채 안 남은 것 같아.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 시절 골목길의 흔적’이 파편적으로나마 청파동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청파동 길을 뒤지다보면 진귀한 화석을 만나듯 골목길과 조우할 수 있다. 옛날 골목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은 만리시장 3길이다. 만리시장2길과 청파길 사이를 잇는 이 길은 달동네형 집과 좁은 길이 어우러진 ‘골목길 풍경’의 정수를 보여준다. 폭은 두 세 걸음 정도인데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면 골목이 꽉 찰 정도다. 양옆의 담 높이도 어른 키 정도로 낮다. 길은 양옆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뻗어가기도 하고 5~8단 수준의 계단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배문고등학교와 청파초등학교가 가까이에 있어 하교시간이 되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붐비기도 한다.

 

미나리1길과 미나리2, 단비길도 옛날 골목길의 단편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폭 좁은 계단과 쪽문, 구불구불하고 꺾임이 많은 길의 진행양식을 볼 수 있는데 짧은 마디 단위로 남아있어 아쉽다. 특히 미나리 2길에서는 잘 보존된 도시형 한옥을 볼 수 있다. 붉은 벽돌로 담을 높이 쌓고 나무 대문을 내어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겨우 버티고 있는 한옥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움이 일기도 한다. 기대했던 일본식 주택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샘길과 청파길 일대에 겨우 5~6채 남짓 남아있었는데 주위의 연립주택에 비해 눈에 띄게 낡아 보여 안타까웠다. 청파동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골목길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인 계단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골목길은 때로 비탈길과 개개의 집 앞에서 여러 형태의 계단으로 변주된다. 갈라지고 합치기를 반복하며 입체적인 구성미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다시 다양한 모양의 문과 창문이 어울리면서 골목 특유의 리듬감과 조형미를 완성한다. 하지만 청파동에서는 복잡하게 얽히고 갈라지는 길과 계단의 어울림은 만나기는 어렵다. 연립주택과 빌라로 지속적인 개발이 진행되면서 길이 넓어졌고, 이와 함께 계단이 건물 속으로 숨어버린 까닭이다.

 

 

밝고 차분한 분위기가 특징

청파동 골목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다. 낯선 이가 카메라를 메고 어슬렁거려도 그다지 경계하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호기심을 보이며 먼저 말을 붙이기도 한다. 아이들 역시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민들 대부분이 재개발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속적으로 부분 개발이 이루어져 마을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골목을 취재하다 만난 청파동 주민 몇 분에게 재개발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대부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투로 말했다. 골목은 활기차다. 아이들이 많은 덕택이다. 청파초등학교와 배문고등학교가 인접해 있어 오후면 아이들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청파새싹4길과 5길 일대에 문방구가 세 집 정도 모여 있는데 학용품과 군것질 거리를 사는 어린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도 있고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며 뛰어노는 아이들도 많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지나가기도 한다. 

 

길이 반듯한 데다 햇볕도 잘 든다. 이른 오전부터 오후까지 해가 오래도록 머문다.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에 기대어 햇볕을 쬐고 이야기를 나눈다. 유모차를 밀고 산보를 나온 젊은 아주머니도 많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환한 인상이다분위기도 말끔한 편이다. 대부분의 골목길에는 화분과 가구, 빨래, 아이들 장난감, 자전거 등 자질구레한 생활소품들로 어지럽지만 청파동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자전거, 스쿠터 정도다. 빨래는 모두 옥상으로 올라가 있다. 말끔하다 못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생활소품이 길에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은 사적 영역과 공적인 영역인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파동에서 순도 높은 골목길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다. 연립촌으로 개발되면서 대부분의 골목길은 사라지고 흔적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흔적마저 위태롭다. 빌라를 짓기 위한 공사가 여기저기서 진행 중이다. 남아있는 풍경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지도 모른다. 서둘러 청파동을 찾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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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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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과 시간이 교차...
    다람쥐 님

 

 

 

  • 지금 포토갤러리에서는 출사미션 <아름다운 한국> 시리즈 4탄 <나의 사진기로 보길도를 담는다>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중 총 10분의 사진을 선정해 5월 29일(금)에 노출될 '길숲섬 보길도' 편에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응모와 참여 부탁 드립니다.
  • 기간 | 2009.5.04 ~ 2009.5.22

 

 

 

[동네 이야기]푸른 고개가 있는 동네 청파동 산책 / 레이디경향 2008-05-20

청파동에 가면 다정했던 첫사랑이 떠오른다. 사시사철 불어오던 싱그러운 바람과 봄볕 아래 나른한 낮잠을 즐기던 구멍가게 고양이도 떠오른다. 골목마다 흐르는 발걸음조차 정겨운 그 곳, 청파동에 가보자. 청파(靑坡)동은 ‘푸른 고개가 있는 동네’라는 뜻...

 

 

 

최갑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 잡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과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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