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도초등학교 왼쪽으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언덕길이 길게 뻗어 있다. 신상도9길이다. 길을 따라 50여 미터를 가면 왼쪽에 ‘대성빌라’라는 다세대주택이 나오는데 모퉁이를 돌면 본격적인 골목길이 시작된다. 신상도3길, 신상도 4길, 신상도5길, 신상도6길, 국기봉길, 국기봉4길, 등나무길 등이 이어진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비릿한 비 냄새와 함께 밤꽃 향내가 훅 하고 끼쳐온다. 골목 저편에서 가끔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내려서일까. 밤골마을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서울의 여느 골목길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어둡고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다. 신상도9길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거세졌다. 굵은 빗방울이 이마를 때린다. 멀리서 천둥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비를 그을 곳을 찾는데 다행히 빈집이 한 채 눈에 띈다. 슬레이트 처마 밑으로 얼른 몸을 피한다. 벽 한쪽에는 ‘위험시설, 접근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집 안에는 버려진 가구와 깨진 유리조각이 가득하다. 집 안으로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떵떵떵 하고 울린다. 빈집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대부분의 집들이 흰색 시멘트 담에 붉은 기와지붕을 얹었다. 벽은 금이 갔고 빛이 바랬다. 기와는 깨졌고 허술하다. 지붕의 모양은 다양하다. 일자형, 정사각형, ㄴ자형, ㄱ자형 등 각양각색이다. 그 사이에 슬레이트 지붕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장독대가 올려진 지붕, 화분이 올려진 지붕, 빨래걸이가 놓인 지붕이 있다. 달동네마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고층아파트들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20~30분 지났을까. 다행히 비가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보슬비로 바뀐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친다. 유월의 날씨는 변덕스런 아이의 마음처럼 짐작하기 어렵다. 빈집을 나와 골목길로 내려선다. 상도동9길에서 상도동3길로 접어든다. 비가 그치자 풍경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처량하고 애처로운 풍경은 사라지고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띤다. 키를 넘지 않는 담, 빗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는 양철지붕은 오히려 정겹다. 아이들이 골목으로 뛰어 나오고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화분을 정리한다. 쌀자루를 실은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지붕 위를 뛰어다닌다. 대문 앞 공터에 가꾸어 놓은 상추에도 파릇한 생기가 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