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상도동 밤골마을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2:10

밤골마을에 갔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유월의 어느 날이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아스팔트길은 비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밤골마을.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시 동작구 상도2. 신상도초등학교 왼쪽 능선을 타고 들어앉은 마을이다. 예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골’로 불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밤골마을을 두고 서울에서 몇 남지 않은 판자촌이라고 말한다. 연말연시면 신문 등 미디어에 ‘○○기업은 밤골마을에 쌀과 라면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하는 곳. 밤골마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아, 아직도 서울에 이런 동네가 남아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낡은 집들, 사람 한 명이 지나가기도 벅찰 정도로 좁고 가파른 길, 수백 가닥의 전깃줄이 얽히고 설킨 전봇대, 골목에 버젓이 드러나 있는 플라스틱 배수관, 찌그러진 함석대문…. 흑백사진에서나 보아오던 서울의 어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다.

  • 1 타이어를 올려놓은 지붕이 생활의 피곤함을 느끼게 한다. 마당의 꽃이 위안거리다.  2 급하게 꺾어지는 계단길은 골목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3 밤골마을 아래쪽에는 도시형 한옥이 많이 남아있다.  4 칠이 벗겨진 기와가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해준다.

 

 

 

달동네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

신상도초등학교 왼쪽으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언덕길이 길게 뻗어 있다. 신상도9길이다. 길을 따라 50여 미터를 가면 왼쪽에 ‘대성빌라’라는 다세대주택이 나오는데 모퉁이를 돌면 본격적인 골목길이 시작된다. 신상도3, 신상도 4, 신상도5, 신상도6, 국기봉길, 국기봉4, 등나무길 등이 이어진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비릿한 비 냄새와 함께 밤꽃 향내가 훅 하고 끼쳐온다. 골목 저편에서 가끔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내려서일까. 밤골마을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서울의 여느 골목길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어둡고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다. 신상도9길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거세졌다. 굵은 빗방울이 이마를 때린다. 멀리서 천둥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비를 그을 곳을 찾는데 다행히 빈집이 한 채 눈에 띈다. 슬레이트 처마 밑으로 얼른 몸을 피한다. 벽 한쪽에는 ‘위험시설, 접근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집 안에는 버려진 가구와 깨진 유리조각이 가득하다. 집 안으로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떵떵떵 하고 울린다. 빈집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대부분의 집들이 흰색 시멘트 담에 붉은 기와지붕을 얹었다. 벽은 금이 갔고 빛이 바랬다. 기와는 깨졌고 허술하다. 지붕의 모양은 다양하다. 일자형, 정사각형, ㄴ자형, ㄱ자형 등 각양각색이다. 그 사이에 슬레이트 지붕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장독대가 올려진 지붕, 화분이 올려진 지붕, 빨래걸이가 놓인 지붕이 있다. 달동네마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고층아파트들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20~30분 지났을까. 다행히 비가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보슬비로 바뀐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친다. 유월의 날씨는 변덕스런 아이의 마음처럼 짐작하기 어렵다. 빈집을 나와 골목길로 내려선다. 상도동9길에서 상도동3길로 접어든다. 비가 그치자 풍경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처량하고 애처로운 풍경은 사라지고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띤다. 키를 넘지 않는 담, 빗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는 양철지붕은 오히려 정겹다. 아이들이 골목으로 뛰어 나오고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화분을 정리한다. 쌀자루를 실은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지붕 위를 뛰어다닌다. 대문 앞 공터에 가꾸어 놓은 상추에도 파릇한 생기가 돈다.

 

 

골목길의 모든 것을 압축

밤골마을은 작다. 아담하다.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밤골마을의 골목길은 깊다. 골목길의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보여준다. 축대형 계단과 구불구불한 계단, 갈라지는 계단을 가지고 있고 빨래건조대, 자전거, 오토바이 등 살림살이를 내어놓은 공용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길의 모습은 또 어떤지. 지형에 맞춰 지그재그로 흔들리는 길, 삼거리와 사거리를 가진 갈림길도 있다. 휜 길, 꺾인 길 등도 짧지만 갖추고 있다. 물론 막다른 길도 숨겨놓고 있어 처음 방문한 이들을 당황하게도 만든다. 마을 윗부분에는 널찍한 테라스 공간도 있다. 스카이라운지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준다. 전망도 그만이다. 서울 시내가 발아래 펼쳐진다. 고양이, 강아지, 자전거, 화단 등 골목의 풍요롭게 해주는 감성어린 소품도 가득하다.

 

밤골마을 골목길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신상도3길이다. 이 길은 언덕 정상부에서 신상도터널이 있는 아래쪽까지 몇 차례 크게 휘어지며 길게 관통한다. 대문들은 자극적인 색상으로 서로 어울리고 벽화가 그려진 담도 몇 곳 있다. 화분도 많고 옥상 활용도 눈에 띈다. 작은 창과 창, 색깔이 다른 문과 문이 어울린 구성도 재미있다. 두 집, 세 집의 대문이 마주보며 혹은 나란하게 적극적으로 조응하기도 한다. 이들은 달동네 또는 서민 동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흐뭇한 풍경이기도 하다. 능선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도시형 한옥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대부분 1950~60년대에 세워진 집들이다. 흰색 벽에 황토색 나무대문을 냈고 합각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한 차례 재개발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다. 밤골마을에서 눈 여겨 볼 것은 지붕이다. 언덕정부의 테라스 공간을 지나는 국기봉4길에서는 밤골마을의 다닥다닥 붙은 지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슬레이트와 타이어로 덮어놓은 허술한 지붕의 모습에 마음 한쪽이 애잔해진다. 요즘 지방의 달동네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국기봉4길은 국기봉길과 이어진다. 길 끝에 ‘밤골상회’라는 자그마한 가게가 있다. 요즘 보기 드물게 ‘상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아저씨 두 분이 앉아 막걸리 잔을 나누고 계셨다. 카메라를 든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길이 날카로웠다. “남의 동네 사진을 왜 찍는 거요?”하고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 드리자 “이런 낡은 동네 자꾸 찍어서 내보내지 말아요. 남 보기 부끄러워서 나 참”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하루 빨리 재개발이 돼야 해요. 요즘 서울에 이런 동네가 어디 있어? 내년에 재개발 된다고 하는데 수 년 전부터 말만 무성하네. 태풍 오면 지붕 날아갈 걸 걱정해야 하는 신세니….” 하지만 아저씨는 곧 막걸리 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라 내민다. “사진 찍는다고 고생하시는데 막걸리도 시원하게 한 잔 하고 가요.” 막걸리 잔을 손에 든 아저씨의 웃음이 비 갠 뒤의 하늘처럼 환하다. 이것이 ‘동네’의 진실된 풍경이 아닐까. 우리 삶의 진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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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 잡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과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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