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충신동 굴다리길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2:07

충신동과 이화동에 다녀왔다. 서울 낙산 아래 대학로 쪽으로 앉은 동네다. 두 마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붙어 있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가운데 하나다. 율곡로를 따라 동대문 방향으로 달리다 왼쪽에 ‘낙산공원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오르면 닿을 수 있다. 대학로 동숭동 쪽에서 갈 수도 있고 이화동 우남이승만박사기념관 옆길, 혹은 동대문 이화대학병원 쪽에서 갈 수 있지만 이 길이 가장 낫다. 길은 언덕 정상으로 올라 낙산성곽길을 따라 동숭동 쪽으로 내려오는데 비교적 경사가 덜하다. 골목길과 골목길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벽화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을의 내력은 대략 이러하다. 1910년대 한일합방 이후 유민들이 낙산 기슭으로 몰려와 토막집을 지었고 한국전쟁 후에는 수많은 난민들도 몰려왔다. 언덕은 판잣집으로 가득했다. 70년대 개발 붐이 불면서는 낙산 시민아파트가 30동 들어섰다. 이 시민아파트는 고건 서울시장 때 없어져 낙산공원이 됐다.

  • 1 낙산공원에서 이화동 방면의 굴다리길을 따라 가면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 2 달팽이길에서 바라본 충신동. 축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선 집들이 성곽처럼 보인다.
  • 3 굴다리4길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벽화.
  • 4 충신동의 저물 무렵. 달동네의 골목 너머로 서울 시내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예술 골목으로 재탄생

인터넷으로 ‘낙산’을 검색하면 네티즌들이 찍은 사진이 줄줄이 올라온다. 새가 날아가는 그림이 그려진 계단, 꽃 그림이 그려진 계단,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과 강아지 조형물을 찍은 사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낙산을 찾는 네티즌들이 부쩍 늘어난 때는 2006년부터. 문화부 주도로 만들었던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된 이후다. 70여 명의 화가가 참가해 동네 곳곳에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했다. 가파른 계단에는 꽃 그림이 피었고, 낙산공원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조각이 늘어섰다. 창신동으로 넘어가는 굴다리 밑 축대에는 중고교 학생들이 그린 벽화와 동네 노인들이 그린 그림타일이 붙여졌다. 봉제공장 20여 곳에는 작가들이 만들어준 작고 아담한 새 간판이 달렸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이곳이 예쁜 예술마을로 재탄생한 것이다.

 

굴다리길을 따라 가면 ‘미화이발관’을 만난다. 누구나 한번쯤 이 이발관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화려하게 치장한 벽 때문이다. 미화이발관이라는 아크릴 간판 아래로 ‘HAIR CENTA’, ‘컷트전문’, ‘기술개발’, ‘이발전문’, ‘염색전문’이라는 글씨가 가득 붙어 있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자세히 살펴보면 돌팔이는 쫄병’, 뭐해라는 장난스런 글씨도 눈에 들어온다. 好思多心’, 自先自知也처럼 알듯말듯한 한자도 눈에 띈다. 장식은 이발소 주인이 직접 꾸몄다고 한다. 생긴 지 40년이 훌쩍 넘은 이발관이다. 길을 조금 더 오르면 한쪽 벽면에 봉제노동자 두 명이 그려진 벽화를 만난다. 공공미술프로젝트 소속 미술가들이 그린 이 그림은 이곳이 한때 2000여 개의 봉제공장이 있던 곳임을 알려준다. 그림을 지나면 일명 달팽이길이라고 불리는 길이 시작된다. 달팽이처럼 한 바퀴 빙 돌아가는 길이다. 굴다리 아래를 지나는데 벽 양쪽엔 주민과 미술가들이 타일 위에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다. 한쪽엔 귀여운 달팽이 그림과 함께 ‘천천히’라는 글씨가 쓰인 표지판이 서 있다. 이렇게 360도를 돌아서 동네로 들어간다. 충신동 골목의 뼈대는 굴다리길. 달팽이길을 돌아나온 굴다리길은 오른쪽으로 진행하며 충신길과 만난다. 충신길은 다시 낙산성곽길과 이어지는데, 낙산성곽길은 서울성곽을 따라 마을 위쪽으로 나아가며 이화동과 연결된다. 굴다리길과 충신길, 낙산성곽길이 충신동과 이화동을 감싸는 셈이다. 이 두 길 아래 위로 충신2~3, 낙산성곽1, 굴다리3, 4길 등이 사다리 모양으로 연결한다.

 

 

골목이 가진 딜레마

충신동에서 가장 골목다운 골목은 충신2~3길이다.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다. 길은 좁고 가파르다. 몸을 비켜야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도 부지기수다. 갈림길도 많고 낮은 계단과 높은 계단이 연이어 나타난다. 계단과 계단이 만나는 삼거리에 축대를 높이 올리고 망루처럼 지은 집도 있다. 계단이 집 밖으로 노출된 집도 많다. 좁은 골목을 활용해 집을 올리다보니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충신동 골목은 넓지 않다. 마음먹고 돌아보면 3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골목 유형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충신동 골목길 가운데 차가 다닐 수 있는 골목은 굴다리길과 굴다리3길 정도다. 대부분의 길은 자동차가 지나기 버거울 정도로 좁다. 그런 탓인지 골목 곳곳에 유난히 오토바이가 많이 눈에 띈다. “재개발 사무소에서 나왔어요?” 길을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슬쩍 떠본다. 아니라고 하자 다소 실망하는 눈치다. “재개발 한다고 한 지가 10년도 넘었어요. 서울에 여기 같은 달동네가 또 있대요?”하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진다. 아주머니처럼 주민들 대부분은 재개발에 대한 기대를 그다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동네 슈퍼 앞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재개발 소리 나온 지는 꽤 됐지.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하고 말했다. 경로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할머니들은 “언젠가 하겠죠”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디카족들은 주로 이화동 쪽을 찾는다. 꽃과 새 그림이 그려진 계단이 있다. 굴다리4길 쪽이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고 있던 수빈(32)는 “인터넷을 보며 오래 전부터 한번 찾고 싶었던 곳이었다. 여기서 패션화보도 많이 찍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벽화 중에는 칠이 벗겨지고 낡은 것들도 많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도 있고 낙서도 덧칠된 것들도 여럿 있다. 그러고 보니 벽화가 그려진 지는 꽤 됐다. 전국 여기저기에 벽화 골목이 생겨나면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간을 재탄생시켰으니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주민들과 괴리된 미술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골목길 그 자체도 딜레마다. 사람들은 골목길에서 잃어버렸던 풍경을 찾고 싶어한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들에게 골목길은 호기심 어린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시큰거리는 무릎을 두드려가며 아득한 계단을 올라야 하고 배수가 잘 되지도 않는 집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충신동과 이화동, 창신동이 자리한 낙산 자락 역시 마찬가지다. “카메라 들고 놀이 삼아 오는 사람들이야 좋지. 하지만 여기서 한 달만 살아봐. 얼마나 불편한지.” 성곽 앞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의 말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워낙 가팔라 세찬 숨을 몰아쉬며, 다리를 두드려가며 올라야 했던 계단이었다. 할머니는 계단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며 땀을 닦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서울 도심은 빌딩의 불빛으로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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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포토갤러리에서는 출사미션 <아름다운 한국> 시리즈 6탄 <나의 사진기로 무주를 담는다>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중 총 10분의 사진을 선정해 8월 03일(금)에 노출될 '新택리지 무주' 편에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응모와 참여 부탁 드립니다.
  • 기간 | 2009.7.06 ~ 2009.7.29

 

 

 

최갑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 잡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과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사진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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