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24) 하룻밤 사랑에도 따져야 할 것들이 많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2. 19. 20:09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24) 하룻밤 사랑에도 따져야 할 것들이 많다

 

그 남자와는 언젠가 '썸씽'이 있을 것만 같았다. 꽤 평범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그는 왠지 '한때 놀아본 남자' 느낌이 났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몇 주 전 노래방에서 내 허리를 확 감싸안은 그 남자 말이다. 그때 내 의지와 다르게 숨이 막히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몸이 얼어붙어버렸던 기억은 내 몸에 오래 남아, 그가 종종 안부 전화를 걸어올 때도 기분이 짜릿하곤 했었다.

드디어 그 남자와 단 둘이 술을 마시게 되었다. 거의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우리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나마 즐겁게 그 자리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소주를 두 병 가까이 마셔야 했다.

술집을 나와 걸어가는 내내 우리는 손을 잡았다. '그래, 뭐 손이야 잡을 수 있어, 그 전에도 우리는 이 정도 가벼운 스킨십은 하는 사이였으니까'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아니었다. 서로 주춤주춤 하다가 그가 키스를 해오는 순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으니 말이다. 이상하게 그의 키스는 정말 달았다. 단 한순간도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영화나 연극 등을 보며 데이트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봤던 그 남자의 키스에 나는 왜 그렇게 애닳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그 아련한 키스의 끝물, 그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살일 때였다. "너네 집으로 갈래, 우리 집으로 갈래?"

뭐야, 이 남자 너무 대놓고 들이대잖아, 뭔가 낭만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냥 같이 자자는 거야?

내가 정색을 하며 그에게 물었다. "같이 자고 나면,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건데?"

그가 대답했다. "속궁합이 잘 맞으면 사귀는 거고, 아니면…… 아니면 그냥 마는 거지." 이 남자, 나에게 대놓고 원나잇을 하자는 것이었다!

"미안. 남자랑 감정 없이 자는 건 20대 때 졸업했어." 나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나서 그를 밀치고는 그대로 집으로 가버렸다. 돌아가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아니, 난 그 남자를 잘 알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그가 싫었는가, 아니, 그의 입술이 내 입술과 목덜미에 닿을 때 나는 그 남자가 '땡겨서'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나는 그와 쿨하게 원나잇을 하지 못했을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적으로 바뀐다. 단순히 오늘 밤 하루 즐겁게(?) 시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원하는 남자는 이제 싫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몸으로 끌릴 수도 있고, 외로움에 하룻밤 체온이 그리울 때도 있고, 술에 취해서 아무 남자의 품에 안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해서, 최소한 여자로서 사랑할 여지를 갖고 있기에 내 입술을 원하고 내 몸을 원하길 바랐던 것 같다.

이제 우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나이 아닐까? 무책임하게 행동하거나 무책임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하룻밤'의 다음날도 생각하고 싶은 마음. 그게 내가 그 남자와의 하룻밤을 거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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