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낯익은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라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0. 5. 14. 21:30

낯익은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라

 

진도읍 장날·함양군 버스정류장 등 우리땅 다큐사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사진찍기 좋은 곳'

이제 제법 따스해졌다. 사진애호가들이 카메라 둘러메고 떠날 채비를 하는 계절이다. 전문사진가의 작품처럼 그럴싸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은 소망이 있다. 어디로 갈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때 조금만 눈길을 돌려보자. 우리 땅 방방곡곡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있다. 수백명이 다녀간 여행지도 그들이 찍으면 다르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기 때문이다. 때론 뾰족하고, 때론 한가로운 그들의 시선이 발길을 잡아끈다.

10년 넘게 우리 땅을 찍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네 명이 '그들만의 장소'를 추천한다. 듣기만 해도 익숙한 곳이 있는가 하면 너무 낯설어서 떠나기조차 꺼려지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시선은 흔하지도 생경하지도 않다. 올봄 그곳으로 '내 시선'을 찾아 떠나보자.

◎ 이규철 < 달빛 소금에 머물다 > 등의 전시회를 열었고, < 같이 왔으니 같이 가야지예 > 등을 출간했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도 | 사람들은 수북이 쌓인 소금밭에 눈을 못 뗀다. 해가 질 무렵 염전은 아름답다. 하지만 사진가 이규철(42)씨가 애정을 가지고 셔터를 누른 곳은 따로 있었다. 엠비시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화도)로 들어가는 1.2㎞의 노두길(갯벌에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 길)에서 바라본 개펄이었다. 이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한 게들"이었다. 셔터를 눌렀다. 그는 매크로렌즈와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메고 그 개펄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 경험 이후로 이씨는 최소 1년에 한번 그곳을 찾는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조도 | 조도대교에서 차로 25분 달리면 상조도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다도해의 풍경은 말이 필요 없는 절경이다. 이규철씨는 "동해안은 섬이 없고 서해안은 섬은 있지만 남해안의 섬처럼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고 말한다.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풍경은 카메라에 담긴 힘든 구도다. 아름답다. 이씨는 그 풍경에 반해서 인스턴트 삼계탕을 끓여 먹으면서 한나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모항 | 이규철씨는 모항의 한 회관에 차를 세우고 그 뒷길을 따라 작은 전망대에 올랐다. 모항과 그 건너 서해안이 내려다보였다. 그 한가로운 모습에 홀딱 빠졌다. 그는 "모항처럼 사진 안에 개펄과 해수욕장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해가 떨어지기 직전 여름날 그곳을 찍었다. 오른쪽에 해수욕장, 그 사이에 마을, 왼쪽에 개펄을 담았다.

◎ 이한구 < 섬진강을 따라서 > , < 청산도 > 등의 전시회를 열었고 < 청매실 농원 홍쌍리의 인생 > 등의 사진집을 냈다.

서울 북한산국립공원 비봉능선 아래 골짜기 | 북한산만큼 사람들이 사계절 자주 찾는 산은 없다. 누구에게나 가까운 이웃 같은 산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특별한 사진촬영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계절 풍경이 다르고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새벽과 아침 풍경이 모두 미세하게 달라 다른 맛이 있는 곳이다. 사진가 이한구(42)씨는 그곳에서 큰 바위와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산벚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는 꽃이 지기를 기다려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그는 수차례 산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 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전라남도 강진 영랑생가 | 이한구씨는 관광지에 있는 유명인 생가에서 늘 '가짜'의 이미지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시인 김영랑(본명 김윤식,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지은이)의 생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정한 복원은 생가를 둘러싼 자연과 시간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모란꽃에만 셔터를 누를 때 그는 생가 뒤편에 있는 대숲을 향했다. 그는 해마다 키가 크고 촘촘해진 대숲을 볼 때마다 흐뭇했다. 그의 날카로운 카메라가 부챗살처럼 펼쳐진 대숲을 담았다.

경상남도 김해시 수로왕릉 | 카메라를 메고 길을 나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다. 한 고장의 '지금'뿐만 아니라 '옛날'을 알면 훌륭한 사진을 찍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촬영지에 도착해서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한구씨의 학구열이 김해시의 '어제'를 담았다. 그는 수로왕릉 문을 지키는 이가 지금까지 새벽마다 '능참봉(조선시대에 능을 관리하던 종구품 벼슬) 예'를 올린다는 소리를 듣고 셔터를 눌렀다. 김해시 시민들조차 잘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그 모습은 "새벽처럼 지극하고도 고요했다"고 한다.

◎ 허용무 < 탄광촌 사람들 > , < 원형의 섬 진도 > 등의 사진전을 열었고 우리 땅을 찍은 출판물을 여러 권 냈다.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장 | 사진가 허용무(45)씨가 진도 장날에 발견한 것은 '시간의 멈춤'이다. 시골 장날의 모습은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도시의 치열한 장보기가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단 1분만이라도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만한 축복도 없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세상이다. 시간이 멈춘 평화로움. 진도읍 장날은 2일장 7일장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방조제 | 33.9㎞의 새만금 방조제는 하늘과 바다를 나누는 경계선이다. 허용무씨가 주목한 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개펄이다. 허씨는 "개펄을 생성하는 데에는 짧게는 4500년, 길게는 2만년이 걸리지만, 파괴하는 데에는 단 몇 년도 걸리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 땅과 그 땅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은 곧 잊혀질 것이다. 그의 사진이 그 기억들을 붙잡아둔다.

강원도 영월과 정선, 동강 | 영월 댐이 백지화되고 동강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알려지자 관광객들이 몰렸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개발이 진행되고 각종 생활 오폐수가 강으로 유입되었다. 생태계는 급속도로 파괴됐다. 강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삶도 달라졌다. 허용무씨의 시선이다. 그 안타까움을 사진에 담았다. 강원도 정선군 동면과 영월군 상동읍 사이에 있는 백운산에서 찍었다. 한겨울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 노익상 < 가난한 이의 살림집 > 등 우리 땅 곳곳을 찍은 사진집을 여럿 냈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권정생 집 | 고 권정생씨는 우리에겐 < 몽실언니 > 와 < 강아지 똥 > 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사진가 노익상(51)씨는 1988년 작가를 찾아가 그 집을 촬영했다. 집은 남루했다. 재래식 부엌을 포함한 여섯평 남짓한 권씨의 집은 그의 검소한 삶을 보여주었다. 노씨는 "그때 받은 충격은 오래도록 힘들게 했다"고 말한다. 2007년 숨을 거둔 권 작가의 생가는 관광지로 꾸며진 화려한 곳이 아니다. 소박한 우리 땅 사람을 찾아 떠난 노씨의 사진 시선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버스정류장 | 함양 버스정류장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 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풍경도 눈에 띈다. 사진가 노익상씨는 그 독특함에 카메라를 들었다. 다방 아가씨, 두루마기 차림의 촌로, 읍내 구경을 나온 촌 아낙, 도시의 등산객들 등. 장날인 2, 7일에는 장에 물건을 팔러 나온 농부를 쫓아 사진을 찍으면 훌륭한 '포토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추천한다. 노씨는 약초를 팔던 노파의 사진을 찍고 이곳 매력에 폭 빠졌다고 한다.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흑산도 | 흑산도는 지금 쾌속선을 타면 몇 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지만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이틀이나 걸렸다. 노익상씨는 과거 가슴속에 사연을 담고 이곳으로 향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는다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