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人間 이재오를 만나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0. 8. 6. 19:25

人間 이재오를 만나다

    
 
(사진설명: 5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김밥집에서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과 인터뷰를 했다. 자전거를 타며 선거운동을 하다 넘어져 깊게 파인 왼쪽 무릎의 상처가 보인다. 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다리도 시커멓게 멍이 들었다.)

모든 정치인이 `서민`을 말한다. 그러나 서민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말로는 서민을 외치지만 행동은 서민이 아니다. 이재오. 그는 정말 척박한 한국 정치에서 예외적 인물이다. 그의 앞에 `서민 정치인`이란 수식어를 붙인들 누구도 시비를 걸 사람이 없다. 그 스스로가 서민이며 행동도 서민이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20년 전 가진 돈 850만원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 2000만원으로 은평구 구산동에 23평짜리 단독주택을 장만했다. 마흔이 넘어서 마련한 집이다. 아직도 그 집에 산다. 가난한 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으나 국회의원이 되고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지지리 못난 이재오는 이제 4선의원인데도 가난하게 산다. 30만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때가 꼬질고질한 모자를 쓰고 산을 오른다. 5000원 정도하는 해장국, 순댓국, 김밥이 그의 주 식사 메뉴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떨어지면 낙향한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치른 지난 7ㆍ28 재보선에서 보란 듯이 재기한 이재오.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면서 18대 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가 그토록 공을 들였던 지역 주민들은 이재오의 오만을 심판했다. 투쟁의 화신이며 갈등의 씨앗인 그를 버렸다. 눈물을 머금고 귀양살이를 한다. 그리고 인내를 키우고 근육을 단련시켜 귀국한 지 1년 만에 드디어 그의 정치적 터전인 여의도에 입성하게 된다. 매일경제 취재팀은 선거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신 지난 5일 지역구를 돌면서 당선사례를 하는 이재오 의원을 만났다.

◆ 갈현1동 주민센터 앞에서

= 은평구 갈현1동 주민센터. 아침 8시가 되자 붉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등산가방을 멘 아저씨가 내려온다. 이재오였다. 아침 6시에 구산동 집을 나서 그가 교편을 잡았던 대성고등학교 뒤편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넘어 갈현동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이번 7ㆍ28 재보선에서 `나홀로 선거`란 새로운 정치실험으로 화려하게 재기한 이재오. 기다리던 매일경제 취재팀을 보고는 반갑게 악수를 한다. 후텁지근한 바람을 타고 진한 땀냄새가 전해졌다.

날씨 탓에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종아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오른쪽, 왼쪽 무르팍이 모두 다쳤다. 오른쪽은 시커멓게 멍이 들었고 왼쪽은 시뻘건 생채기가 그대로 있다. 자전거를 타고 유세하다가 넘어져 생긴 상처다. 공교롭게도 모두 야권 단일화와 관련이 있다. 그중 큰 상처는 선거 닷새 전인 7월 23일 야권 단일화에 합의했다는 김해진 공보특보의 전화 보고를 받고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생긴 것이고, 작은 상처는 야권 단일화가 된 26일 오후 자전거 앞바퀴가 계단을 들이받아 넘어져 생긴 것이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네요.

"괜찮아. 이 정도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는 징크스가 있는 법이다)두 번 다 단일화 때문인데 불길한 생각 안 들던가요.

"병원에 입원할 정도라고 하던데 그냥 선거 운동했지. 의외로 크게 안 다쳤어. 단일화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란 징조로 봤지.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원래 인터뷰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길목에서 기다린 거였다. 이재오 역시 본인의 스케줄대로 행동했다.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다. 이게 요즘 유행하는 `이재오 인사법`이다.

주민센터에 들러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바로 옆에 있는 경찰서에도 들렀다. 어떤 주민은 이 의원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며 가족 안부를 물었다. 이재오의 가정사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취재진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사실 매경 측이 그렇게 요구했다.

◆ 김밥집에서

= 20분간 갈현1동 주민센터 주위에서 인사를 나눈 이 의원은 허름한 김밥집을 찾았다. "여기가 이 동네에서 김밥이 제일 맛있어. 콩나물국도 일품이지."

일행은 취재진까지 모두 6명. 김밥 여섯 줄을 시켰다. 모양은 볼품없지만 정성을 다해 만 김밥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편하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찾아왔다.

-선거가 끝났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지역구를 돌아보십니까.

"재보궐 선거 운동 기간에는 `서민과 함께 호흡하던 옛날의 이재오로 돌아온 것을 알아 달라`고 절박한 마음으로 유권자들을 만났다. 선거가 끝났다고 그만두면 되나. 그리고 지금 지역 주민을 만나는 일은 당선사례이기도 하지만 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의미가 크다.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자전거를 타면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등산을 하면서 직접 일자리 문제나 서민생활의 애로 등 생생한 얘기를 듣는다."

-2008년 18대 선거가 끝났을 때도 낙선사례를 했을 텐데요.

"(웃으면서)그때는 간단히 했지."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5000원 넘는 점심식사를 하지 말자고 했는데 좀 무리한 얘기 아니었나요.

"비판이 있었다는 건 안다. 그러나 비현실적이거나 무모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서민경제 얘기하면서 서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야지. 그래야 서민들이 살고 영세자영업자들이 산다. 5000원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 노력을 하는 게 공직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라고 본다. 돈을 버는 기업인들은 다르지. 그런데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이 5만~6만원짜리 점심을 하면 되겠나.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생각과 행동은 좀 달라야 한다."

주문한 김밥이 나왔다. 배가 꽤나 고팠던 모양이다. 김밥 하나를 집는데 한쪽만 매끈하게 칼집이 돼 있는 꽁다리부터 고른다. 그러다 보니 내용물 중 소시지와 당근이 테이블에 떨어졌다. 그걸 손으로 집어서 입에 넣는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요새 서민 정치가 화두입니다.

"정치는 원래 좀 못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 아니냐. 새삼 강조할 필요가 뭐 있어. 정치란 게 원래 서민정치지."

-서민 정치하는 걸 뭐라 할 일은 아닙니다만 지나치게 나가면 그게 포퓰리즘 아닙니까.

"이런 비난이 나오는 건 말로만 서민정치를 해서 그런 거다. 정말 말로만 하면 그게 포퓰리즘이지. 표를 얻기 위해 사탕발림하는 거 아니야. 제대로 된 서민정치를 해봐. 포퓰리즘이란 말이 나오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야지."

그러면서 그는 검은색 등산가방에 있는 초록색 수첩을 꺼냈다. 주민들을 만나 들은 내용을 메모한 것이다. 그중 두 꼭지를 읽어준다.

"현재 고물수집과 관련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전국에 5만여 명 있다. 그런데 환경정책 때문에 앞으로 고물상이 가전제품을 수집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데 대해서는 서민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얘기인데 전기 검침 업무를 하는 검침원이 있는데 전국적으로 7만여 명이다. 이 검침 업무를 이제 합리화해 우체국에서 한다고 하는데 예산상으로 비슷하다. 자칫하면 7만명이 실직위기다. 그건 좀 곤란하지 않겠나."

김밥은 한 줄 정도 분량이 남았다.

"모두 아침을 먹고 왔는가 보지." 그는 남은 김밥을 싸달라고 했다. 식당 주인이 방부제를 안 넣은 거라 3시간이면 다 쉬니 빨리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동네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먹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식당을 나선다.

◆ 갈현 중앙시장에서

= 식사를 마친 이 의원은 오밀조밀한 골목길 안에 위치한 시장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게를 지날 때마다 오누이처럼 이 의원 손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한 블록을 지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한 시간여 시장에서의 인사를 마치고 난 시각은 오전 10시였다.

인터뷰는 계속됐다.

-지금 하시는 걸 보니 과거의 이재오와는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선거를 통해 뭔가 깨달은 게 있습니까.

"나의 정치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정치 2막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반성할 게 많다. 술 담배 안 하고, 골프도 안 치고, 나름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정치를 위한 정치`를 한 것 같다. 미국을 다녀와서 깨달은 건 정치하는 사람의 눈높이가 서민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이들의 불편을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점을 이제는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깨닫게 됐다."

-당직은 안 맡으실 건가요.

"(허허) 이 나이에 뭐. 다 해봤는데."

-지역대표이긴 하지만 중앙정치라는 영역이 있지 않습니까.

"내 생각은 이렇다. 지역구인 은평 주민이 잘살면 나라가 잘산다. 나라가 잘된다고 지역 주민들, 서민들이 잘산다고 하는 건 허세다. 그게 지역의 대표고 나라를 위하는 정치인이다. 앞으로 나는 의정활동도 이런 방향으로 할 것이다."

-상임위는 보건복지위원회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일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복지예산의 규모를 무조건 늘리는 것이 좋은 복지정책이고, 친서민정책이라는 생각은 틀렸다. 실제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저소득층이나 서민에 대한 정부의 보조와 지원규모가 늘어난다고 해서 이들의 살림살이나 형편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또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펴는 데 내가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동네 찜질방과 목욕탕에서

= 삼복 더위에 시장통을 돌면서 땀으로 흠뻑 젖은 이 의원은 취재진에게 번개 제안을 했다. 목욕을 같이하자고 했다. 마다할 리가 있는가. 목욕탕 안에서도 이 의원은 동네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였다.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탕 안에서, 혹은 샤워를 하면서 주민들과 얘기하고 가끔 농도 주고받았다. 건강검진을 받으면 실제 신체 나이가 40대로 나온다고 자랑한다. 앞 모습은 나이를 속일 수 없었지만 매일 아침 등산과 사이클링으로 단련된 45년생 이 의원의 뒷모습은 50대로 보였다. 목욕을 마치고 몸을 말리면서 몇 마디를 더 나눴다.

-정치인 이재오를 생각하면 `전투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 과거 재야에서 정치활동을 할 때는 투사적으로 투쟁해야 할 일이 많았다. 또 이명박 정권 창출과 관련해서 나의 투쟁적인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투사형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다. 10년 만에 건강한 보수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청이 너무 컸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을 창출하기까지 고난과 위기가 많았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투쟁적이고 투사적인 모습을 보인 면이 많았다. 정치인 이재오의 그런 모습에 대해 반감을 갖는 국민이 많지만 그것이 내가 맡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그러면 이제 이재오 리더십은 변화했습니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투사형 리더십`과 안녕을 고하고 섬김의 리더십을 막 실천하려는 때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야인생활을 하게 됐다. 정치인 이재오가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런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를 잃은 것은 아쉽다. 리더십에 대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계파를 단순히 여당 내 권력투쟁의 산물로 보는 시각, 또 나를 특정 계파의 수장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도 사실 여당이 정권을 되찾아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모두들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봐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에는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섬김의 리더십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고 정책을 내고, 생각이 다른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그쪽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무엇입니까.

"섬김의 리더십과 일맥상통하는데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기업하는 사람 모두 해당된다고 본다. 하나는 역지사지할 줄 아는 능력이다. 자기의 눈으로 세상과 시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으로, 직원의 눈으로, 고객의 눈으로 자신과 자사의 제품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현재의 성공에 취해 이런 일을 게을리하면 위기가 온다. 두 번째는 현장형 리더십이다. 21세기에는 정보를 얻을 수단은 많아졌고, 습득의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정작 현장과 더 유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500여 곳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실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직접 사람을 만나 들어봤다. 길지 않은 공직생활이었지만 세상 보는 눈을 크게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CEO들의 공통점을 보면 고객의 접점에 있는 세일즈맨들의 얘기를 중시한다. 매장이나 구매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는가."

[대담=손현덕 정치부장 / 정리 = 김은표 기자 / 이가윤 기자 / 사진 = 김성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