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기업은 어떻게 몰락하나
◆위기의 1등 따라잡기◆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역사적으로도 영원한 1등은 없는 법. 기업도 마찬가지다.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는 기존 저서와는 반대로 어떻게 기업이 몰락하는지를 연구했다. 최근 저서 '위대한 기업은 어떻게 망하는가(How the mighty fall)'에서 그는 망하는 기업의 공통점을 꼽았다.
좋은 것만 보고 벤치마킹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그렇다고 몰락하고 있는 기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단지 '저렇게 되지는 말자'뿐일까. 짐 콜린스는 한때는 위대했던 기업이 추락하는 과정을 질병에 비유했다. "미리 그 조짐을 감지해 내기 어려울수록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쉽다. 반면 아무리 그 조짐을 파악하기 쉽다 해도 말기에 이르러서는 치료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연구에서 그는 기업들이 서서히 망해가는 과정을 크게 5단계로 나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기업들은 쇠퇴하면서 공통적인 패턴을 보였다. 현재 잘나가는 기업의 리더들이 이 패턴을 자신의 기업에 적용시켜 보면 '쇠락'의 조짐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을 것. 그 조짐을 감지해 낸 리더라면 비록 기업이 쇠락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해도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위대한 기업을 꿈꾼다면 이 5단계를 숙지하고 미리 몰락의 가능성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1. 성공에서 비롯된 자만 단계
이 단계에서 기업들은 성공에 도취돼 있다. 이때부터 기업은 점점 퇴보의 길로 접어든다. 성공에 있어 그들의 전략도 주효했겠지만 운이나 호의적인 환경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법. 오히려 성공하는 리더들은 성공 시점에서 '내가 혹시 운이 좋아서 잘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성공을 스스로 과소평가한다고 손해 날 일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 스스로 성과를 과소평가했다면 그 기업은 계속 추진력을 얻기 위해 노력할 터. 허나 정말 운이 좋아 지금껏 성장세를 유지해온 기업이라면 이런 거만한 태도가 바로 몰락으로의 입문을 의미한다.
2. 원칙 없는 확장 단계
성공한 1등 기업은 더 많은 매출을 내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다. 게다가 몰락의 1단계를 지난 이 기업은 이미 성공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때문에 몰락의 2단계에 접어든 기업은 원칙 없는 사업 확장을 추진한다. 과거에 단 한 번도 기업이 몰두하지 않았던 분야, 경쟁상대보다 비교우위가 전혀 없는 분야에 과도한 투자를 한다. 자사의 자원이나 성장동력과는 무관한 분야로 준비 없이 허겁지겁 진출하기도 한다. 물론 기업에 도전과 모험 정신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사의 핵심역량을 무시한 채 모험을 즐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3. 위험 무시 단계
3단계에 접어든 기업은 내부에서 서서히 위험신호가 온다. 반면 외부에서 볼 때는 여전히 건재해 보인다. 다소 실적이 부진하다 해도 '일시적인 것'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평가하기 쉽다. 이 무렵 리더들은 부정적인 데이터를 봐도 그 경고를 무시한다. 대신 긍정적인 데이터나 결과에만 관심을 보이고 집중한다. 이쯤 되면 높은 성과를 내며 왕성하게 활동했던 기업 내 드림팀은 서서히 해체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4. 지푸라기라도 잡는 단계
네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기업이 흔들리는 모습이 비로소 겉에서도 드러나게 된다. 이쯤 되면 3단계에서 감수했던 위험의 결과가 나타나는 단계. 이때 리더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위기를 느낀 리더는 허둥지둥 만병통치약을 찾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검증되지 않은 전략, 급진적인 개혁, 혁신적인 제품, 기업문화의 변화 등을 꾀한다. 이런 시도는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곤경에 빠졌다고 생각했을 때 본능적으로 허둥댄다. 물에 빠졌을 때도 가만히 있으면 뜨게 마련. 하지만 공포에 질려 허우적거리다 보면 점점 더 깊이 빠진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이때 차분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도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해야 한다. 불안감에 싸여 있다 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마라. 냉정하게 무엇을 하면 안 될지를 따질 때다.
5.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단계
다섯 번째 단계에 들어선 기업은 재무상황이 악화되면서 기업의 리더들은 회생 의지를 잃는다. 어떤 CEO들은 기업을 매각해 버린다. 어떤 기업은 업계에서 그저 그런 회사로 전락한다. 극단적인 경우 기업의 수명이 다한다.
짐 콜린스는 비록 4단계에 접어든 기업이라 할지라도 회생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록스. 2001년 앤 멀케이는 4단계에 접어든 제록스를 맡게 됐다. 당시 부채 비율은 무려 900%, 무디스는 제록스의 회사채를 '쓰레기'라고까지 평가했다. 멀케이는 우선 과감하게 사업부를 정리했다. 그가 실무자 위치에 있을 때 최고의 반열에 올랐던 잉크젯프린트 사업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로써 25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 파산 직전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연구개발(R & D) 투자 비율은 늘렸다. 결국 2006년 다시 제록스는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건전한 재무제표를 자랑하게 됐다.
제록스뿐 아니다. HP, 뉴코, IBM, 머크, 텍사스인스트루먼츠, 피트니보우스, 디즈니, 보잉….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최소 한 번쯤은 몰락 위기를 경험한 기업들이다. 진정한 1등 기업은 어려움이 없는 기업이 아니다. 위기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업이다. 더 나아가 위기를 겪고 더 강해지는 기업이다.
[인터뷰 - 주인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 성공에 도취되면 위기에 둔감
국내 기업 중에 한때는 소위 잘나간다던 기업이 '쇠락의 길'에 접어든 사례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쌍용시멘트가 한때 업계 1위였죠. 해태제과도 전자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롯데와 제과업계 1, 2위를 다퉜습니다. 기아자동차도 비교적 잘나간다는 기업이었지요. 동아건설은 건설업계 1위는 아니었지만 리비아 등에서 크게 수주를 받아 국외건설에서는 1위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짐 콜린스가 정리한 쇠락의 5단계처럼 국내 몰락한 기업들도 어떤 공통적인 패턴이나 과정을 보였나요.
짐 콜린스는 '성공에 도취된 자만심'이 몰락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했죠. 국내의 몰락한 기업들도 마찬가집니다.
쌍용시멘트의 경우 시멘트업계 1위 자리를 지키면서 '어떤 분야든 못 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자동차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기업이 위험분산 차원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사의 핵심역량을 먼저 파악해야 하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앞으로 일어날 유망산업이 뭔지를 따져야 합니다. 쌍용은 자동차업계에 뛰어들며 이런 점을 따지기보다 오너의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무리하게 확장을 했습니다.
해태제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미래사업으로 전자 사업이 유망하긴 했지만 해태의 핵심역량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신규 사업이 위험한 것은 그 사업이 안 되면 다른 사업부문에도 큰 지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최고경영자의 관심사가 온통 신규 사업에 쏠리게 되죠.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이나 투자가 상당해집니다.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자본이 한정적이다 보니 잘나가던 기존 사업에 영향을 안 줄래야 안 줄 수 없죠.
그렇다면 제록스처럼 위기에 놓였던 기업이 극적으로 회생한 경우는 없었나요.
최근 LG텔레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한때 가입자 수에서 다른 통신사 두 곳과 엄청난 차이가 났지요. 업계에선 곧 LG가 철수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보면 점유율도 높아지고, 충성고객도 많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우선 LG텔레콤은 통화 품질을 개선해서 기술적인 내용을 보완했습니다. 비용적인 부분에서도 경쟁력을 갖췄고요. 최근에는 고객중심의 마케팅 등이 주효했지요.
잘나가는 1등 기업이나 1등을 노리고 있는 2등기업이 염두에 둬야 할 '1등 지키는 비결'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일 중요한 것이 '겸손한 자세'입니다. 이전에 성공했던 노하우가 다음에도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죠. '최고경영자가 강연을 돌아다니면 망조'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과거 성공사례만 번복해서 말하고 다니다 보면 새로운 전략을 찾기 어렵습니다. 환경의 변화에도 둔감해집니다.
또 감히 성공한 최고경영자에게 고언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면 기업이 계속 성장하기란 어렵게 됩니다. 리더는 최고 기업 반열에 오를수록 외부 의견을 경청하고 위험에 더욱 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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