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일화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2003년 1월 12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2002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경선을 통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결정될 때부터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저는 1년여동안 담당기자로서 노무현 후보를 취재했습니다.
여기서 소개해드릴 일화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두달쯤 되던 2003년 1월 12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대통령 취임식을 한달여 앞두고 당시 초대 국무총리 인선을 놓고 언론의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고건씨가 참여정부 초대 총리로 발탁됐습니다만, 1월 12일 당시엔 불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혈기왕성(^^)한 기자였던 저 역시 여기저기 취재원들을 붙잡고 초대 총리가 누가 될 것이냐를 열심히 취재했습니다만,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휴일이었는데요.
고민고민하던 끝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총리를 누굴 시킬 것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대통령 당선자가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를 직접 취재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상대가 대통령 당선자인데, 일개 기자가 어찌 함부로 접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당시엔 웬지모를 용기가 생기더군요. 또 휴일인 만큼 대통령 당선자가 자택에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망설임 끝에 노무현 당선자 자택으로 오전 10시반쯤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당선자가 받는게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전화를 건 제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제 신분을 이야기하고, "당선자가 계시면 통화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제가 노무현입니다"라고 밝히더군요. 총리 인선과 관련한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며 몇가지 질문을 했는데, 당시 노 당선자가 제 질문에 술술 답변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잔뜩 긴장했던 탓인지 몇마디 말도 못해보고 5분여쯤 전화통화를 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어야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보니, 후회가 됐습니다. 기왕이면 질문을 좀더 충분히해서 취재를 잘해볼걸 바보같이 기껏 전화하고, 질문도 몇가지 못했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자택으로 또 한차례 전화를 했더랬습니다. 그랬더니 노 당선자가 또 전화를 받더군요. 그래서 20분 가까이 총리에 대한 취재를 끝내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이후 대통령 당선자와 전화 통화한 내용을 회사에 보고하고, 12시 낮 뉴스부터 기사가 나가기 작했습니다. 취재경쟁을 벌이던 다른 언론사들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고, 다른 기자들도 부랴부랴 당선자 자택으로 전화를 했습니다만, 이미 배 떠난 항구였습니다.
당시 제가 노무현 당선자와 전화통화를 해서 쓴 기사는 내용면에서도 반향이 컸습니다만, 일개 기자가 대통령 당선자 자택에 직접 전화를 걸어 당선자와 통화를 했다는 내용이 더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화를 건 기자도 화제였지만, 기자 전화를 받고 취재에 응해줬던 노무현 당선자 역시 화제가 됐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요 신문 기사에 '대통령 당선자와 기자의 전화 통화'가 화제거리로 보도됐고, 노 당선자가 추구한 탈권위주의의 대표적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미디어오늘'이라는 전문지에서 당시 전화 통화에 대해 쓴 기사입니다.
(전문 보러가기 ☞ 이미지 클릭)
뜬금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일화를 소개해드렸습니다만, 이후 제가 출입처를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더 이상 취재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공과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말한다면 참여정부 당시 언론을 개혁한다며 기자실을 폐쇄할 당시, 과거 담당기자였던 저 역시 큰 반감을 갖기도 했습니다. 국회만 보더라도 출입기자가 3백명을 넘는 상황에서 기자들의 특권을 운운하는 것은 현실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를 맞아 문뜩 생각나는 옛 일화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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