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은 국내 최고의 눈꽃 산행지다. 덕유산 향적봉의 높이는 1614m. 남한에서는 네 번째로 높다. 이 높은 봉우리를 손쉽게 오를 수 있다. 바로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가 향적봉 턱밑까지 운행되기 때문. 이 덕택에 고산의 풍모가 물씬한 향적봉 정상을 가볍게(?) 밟아볼 수 있다.
그러나 거저먹다시피 향적봉을 올랐다고 해서 전망도 그저 그럴 것이라고 단정 지으면 곤란하다. 겨울산은 무조건 높아야 한다. 높은 산에서 바라봐야 설국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덕유산 향적봉의 고사목에 만발한 설화와 끝도 없이 펼쳐진 산국의 파노라마. 눈 쌓인 산들이 겹치고 겹쳐 한폭의 수묵화로 피어한다. 특히, 향적봉에서 남덕유산을 향해 1.3km 떨어져 있는 중봉까지의 ‘눈꽃산책’은 산악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덕유산 주릉 종주의 일면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고원을 따라 설국으로 빠져드는 기분은 경험하지 않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 |
설천봉부터 펼쳐지는 눈꽃세상
곤돌라가 덕유산 설천봉에 닿기도 전부터 가슴이 뛴다. 산의 풍경이 180도 바뀌었기 때문. 무주리조트의 슬로프를 제외하고 갈색으로 죽어 있던 산이 해발 1200m를 지나면서 화사한 빛으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나뭇가지마다 새하얀 눈꽃이 피어난다. 눈꽃은 정상으로 향할수록 솜뭉치를 흩어놓은 것처럼 두툼해진다. 곤돌라가 설천봉 왼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을 넘어 서면 태양도 마중을 나온다. 파란 하늘 아래 눈꽃은 더욱 눈부시고, 덕유산을 빙 둘러친 장쾌한 산자락의 너울은 끝이 없다.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 | |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목의 전망 좋은 바위에서 사진가들이 눈꽃 세상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눈꽃터널이다. 나뭇가지에 만발한 눈꽃이 하얀 사슴뿔 마냥 엉키어 하늘을 가린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날씨다. 눈꽃이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후드득 떨어진다.
눈꽃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은 마음이 급하다. 서둘러 향적봉에 올라 덕유산의 황홀한 설경을 보고 싶어 한다. 특히, 날이 맑으면서 눈꽃이 제대로 핀 날은 더욱 그렇다. 때로 덕유산은 바람에 눈꽃이 다 떨어지거나, 아예 구름 속에 숨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산정의 날씨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늘만이 안다. 입산자는 그저 자연이 황홀한 풍경을 베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 |
산 너머 한려수도까지 펼쳐진 설국의 파노라마
향적봉 정상의 파노라마는 감탄 그 자체다. 덕유산이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보인다. 중봉에서 지봉을 거쳐 추풍령으로 달려가는 백두대간의 자태가 장쾌하다. 서쪽으로는 덕유산 주릉의 끝에 남덕유와 장수덕유가 송골매의 날개처럼 솟아 있다. 그 뒤로 천왕봉에서 반야봉을 거쳐 노고단으로 줄달음질 쳐 나간 지리산 주릉이 선명하다. 남쪽의 산들은 농도를 달리하며 수묵화처럼 겹치고 포갠 채로 이어진다. 그 끝은 한려수도에 떠 있는 섬의 산까지 이어진다. 향적봉에서 설국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목적지는 중봉. 향적봉과 중봉은 고원지대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평평한 산세가 이어져 있다. 봄가을에도 알프스를 오른 듯한 기분에 한갓진 산책을 즐길 수 있지만, 겨울의 눈꽃산책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중봉으로 가는 길에 향적봉 대피소를 들르는 것도 필수 코스다. 바람이 훼방을 놓지 않는다면 야외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따끈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점심나절에 먹는 컵라면도 수라상 부럽지 않은 별미다. | |
동엽령 너머로 줄달음질 친 백두대간, 그 힘찬 기상
중봉으로 가는 길에도 눈꽃터널은 끝이 없다. 동화 속 세상으로 안내하는 눈길은 종종 곁가지를 친다. 그 길을 따라가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한다. 천년풍상을 견뎌낸 주목이 눈꽃을 이고 있거나 덕유산의 주릉이 펼쳐진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또 그곳에는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진가들이 한둘쯤은 박혀 있다.
향적봉에서 1.3㎞ 거리의 중봉(1594m)은 향적봉과 함께 덕유산을 대표하는 봉우리다. 향적봉은 좌우로 밋밋한 산세라 정상다운 맛이 부족하다. 또 향적봉 대피소 위에 통신 안테나가 높아 솟아 있어 남덕유로 이어진 아름다운 주릉의 모습을 가린다.
그러나 중봉은 다르다. 중봉에서 동엽령까지는 150m 이상 표고차가 난다. 주릉이 갑자기 푹 꺼져버린 느낌이 든다. 중봉 전망대에 서면 동엽령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로 이어진 덕유산 주릉의 드라마틱한 모습이 한눈에 든다. 겨울 깊은 덕유산을 찾아 나선 이들이 새하얀 눈꽃세상 너머로 깨알같이 멀어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
오수자굴에서 백두대간 주릉을 따라 중봉을 향해 오르고 있는 등산객들.
중봉에서는 어느 쪽을 바라봐도 설국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중봉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고
중봉이 갈림길이다. 눈꽃산책에 나선 이들은 이곳에서 향적봉으로 돌아간다. 산책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하지만 덕유산의 깊은 품을 찾아 나선 이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중봉에서 오수자굴을 거쳐 백련사로 향할 수 있다. 중봉에서 1.4km 거리의 오수자굴은 종유석처럼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이 명물이다. 성난 남근 모양으로 생긴 고드름 수십개가 바닥에서 솟아나 눈길을 끈다. 중봉~오수자굴~백련사~삼공리집단시설지구는 3시간 이상 걸리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중봉에서 동엽령으로 내려서면 칠연폭포로 갈 수 있다. 당일치기 산행에 나선 이들의 단골 코스다. 산악인들은 자신의 몸보다 큰 배낭을 메고 남덕유를 향해서 간다. 이들은 덕유산 주릉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남덕유를 넘을 것이다. 그러나 중봉에서 발길을 돌린다고 해도 여한은 없다. 겨울 덕유산의 진면목은 중봉에서의 조망만으로도 충분하다. | |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무주IC로 나와 19번 국도 진안 방면으로 8km 가면 삼거리다. 좌회전해서 49번 군도를 따라 가면 무주리조트 입구가 나온다. 대중교통은 무주읍을 경유한다. 무주읍에서 무주리조트로 가는 버스는 수시로 운행된다. 무주리조트에서 스키 시즌에 운영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기버스는 서울·부산·대구·광주·전주·대전·청주·포항·마산·울산 등 중부와 남부권 40여개 도시에서 운영된다. 숙박 무주리조트는 호텔을 비롯해 콘도와 유스호스텔 등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무주리조트 입구에도 모텔과 민박 등의 숙박시설이 많다. 향적봉의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즐기려면 향적봉 대피소(063-322-1614)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괜찮다. 향적봉 대피소 정원은 40명, 1박 7000원, 침낭 대여료 2000원.
볼거리 무주리조트는 남부지방에서는 손꼽는 스키 리조트.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서 스키장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리조트 내에 노천 스파도 있어 피로를 풀 수 있다. 구천동 계곡의 끝에는 신라와 백제가 오가는 길목이었다는 나제통문과 반딧불이의 생태와 천문대가 있는 반디랜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지 안국사와 산정 호수가 있는 적상산 등이 2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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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좋은 시기 : 사계절
주소 : 전북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산 43-15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2시간
문의 : 덕유산국립공원(063-322-3174) 준비물 : 물=적당히 준비하세요. 지도=이정표 많아 필요 없어요. 신발=방수 등산화가 필요해요. 복장=바람과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단단하게 준비하세요. 스패츠와 모자, 장갑도 필수입니다. 맑은 날은 선글라스나 고글도 챙겨가세요. 간식=따끈한 물과 도시락 있으면 좋아요. 향적봉 대피소에서 컵라면 사먹을 수 있어요. | |
향적봉은 쉽게 오를 수 있다고 해서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산이 높아 일기변화가 심하다. 겨울에는 강풍과 눈보라를 만날 수 있어 채비를 단단하게 해야 한다. 방수가 되는 등산화와 스패츠, 귀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모자, 덧껴입을 점퍼 등을 꼭 가져가야 한다. 또, 주말 오전은 설천봉으로 가는 곤돌라가 붐빈다. 곤돌라 운행 시간(오전 9시~오후 4시)도 유념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