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경북궁 서쪽 마을 "서촌"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09:46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뜻한다. 관광 명소로 유명세를 탄 북촌과 달리 서촌 골목은 친절하지 않다. 이정표가 없어 골목과 골목 사이에서 길을 잃기 일쑤. 그래도 서촌 골목은 으리으리한 한옥이 모여 있는 북촌보다 낯이 익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을 돌아 세월을 덧댄 개량 한옥을 만나면 어릴 적 살던 동네가 떠오른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효자로를 건너 거미줄처럼 연결된 골목을 따라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서울 서촌 지도 보기

북촌 vs 서촌, 닮은 듯 서로 다른 옛길

“여기 주민은 ‘서촌’이라면 몰라요. 사람들이 북촌과 대비해 서촌이라 부르는 거죠. 여기는 누하동, 저 골목은 옥인동, 저쪽으로 돌아가면 통인동….” 체부동에서 60년간 대오서점을 운영한 권오남(80)할머니가 대뜸 이렇게 설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동인 청운효자동만 하더라도 효자동·창성동·통인동·누상동·누하동·옥인동·청운동·신교동·궁정동 등 9개 법정동을 포괄한다. 골목을 돌아 나서면 마을 이름이 바뀌는 곳이 서촌 일대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물길을 따라 가회동, 안국동, 계동, 재동, 삼청동을 아우른다.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던 터라 옛 모습을 간직한 한옥 800여 채가 남아 있다. 골목 사이사이로는 갤러리와 카페가 현대의 예술적 풍취를 더한다. 이에 비해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의 예술가들이 서촌 주민이었다. 북촌과 비교되는 점은 한옥 양식에서도 발견된다. 서촌 633채 한옥 대부분은 1910년대 이후 주택 계획에 의해 대량으로 지어진 이른바 개량 한옥이다. 시인 이상의 옛집만 하더라도 1933년 주택 업자에게 팔린 뒤 145평의 집이 5개의 필지로 나뉘어 도시형 한옥으로 새로 지어졌다.

 

  • 1 서촌에는 한옥과 빌라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윤정기자>
  • 2 1927년 경성시가도. 경복궁 서쪽으로 들어선 마을이 ‘서촌’이다. <서울시청 제공>

 

 

이정표 대신 사람에게 길을 묻는 곳

솔직히 말하면 서촌 골목을 걷는 건 쉽지 않다. 종로구청에서 추천한 골목투어 코스를 따라 길을 나섰지만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비슷한 골목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이정표가 없으니 결국 사람에게 길을 물어 통의동 백송터를 찾았다.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고궁박물관 입구 맞은 편 대림미술관 골목 안쪽에 있다. 통의동 백송은 높이 16m, 흉고둘레 5m에 달할 정도로 크고 또 수형이 아름다워 1962년 천연기념물 43호로 지정됐었다. 그러나 1990년 7월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돼 그루터기만 남은 상태다. 이 주변으로 효자동 80년 역사를 대변하는 보안여관, 골목이 아름다운 통의동 서촌 한옥이 있다.

 

자하문길을 건너 서쪽으로 향했다. 서당으로 쓰이던 이상가옥터를 지나 누각길을 따라 걷다보면 옥인부동산 안쪽 골목에서 대오서점을 만난다. 권오남(80)할머니는 “예전엔 여기가 다 이런 한옥이었지. 근방에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었어. 그래서 지금도 곳곳에 시인이나 화가 집이 많아요”라고 설명해준다. 누각길, 통인오거리길, 팔운대길을 따라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 사이사이에 근대 화가 이중섭, 이상범 가옥이 있다. 재개발 중인 옥인아파트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1938년에 지은 박노수가옥,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안평대군의 옛 집터에 있었던 돌다리 ‘기린교’ 등을 만날 수 있다.

 

팔운대1길을 따라 배화여고가 있는 언덕에 올라선다.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배화여고 생활관은 물론, 백사 이항복의 집터인 필운대를 만날 수 있다. 필운대는 배화여고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건물 뒤편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야 찾을 수 있다. 배화여고 인근에는 우리나라 최초 공립 도서관인 종로도서관과 최초 공립 보통학교인 매동초등학교가 있다. 인왕산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서촌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고종이 활을 쏘기 위해 즐겨 찾았다는 황학정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15년 전부터 활쏘기를 배웠다는 정지용씨는 “일제가 경희궁을 헐면서 황학정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해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활을 쏠 수 있다는 게 놀랍죠”라고 말한다.

 

 

개발과 보존 사이, 서촌 사람들


“자유당 시절에는 효자동에서 외지인이 자고 가려면 신고를 해야 됐어요. 그만큼 이 일대는 규제가 많았어요.” 마을토박이인 원흥식(71)씨는 30년 넘게 서촌에서 부동산을 운영했다. 청와대가 지척에 있어 서촌은 오래도록 개발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 1990년대 말 건축 규제 완화로 빌라들이 들어서면서 서촌에는 한옥과 빌라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올해 3월 서울시가 경복궁 서측 청운·효자·통의동 일대 58만 2,297m2에 대한 한옥 보존 대책을 발표하자 실망하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마을을 둘러보니 이미 재개발조합 추진위가 들어선 곳도 있었다. 원흥식씨는 “오래된 골목과 건물이 많으니까 불편해하는 주민도 있죠. 한옥 관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한옥 매매는 요즘 거의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개발과 보존 사이 서촌의 느린 시간 속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매동초등학교 앞에서 1년 전 커피숍을 낸 이형춘(49)씨는 “북촌에 똑같은 가게가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이곳을 모르다가 서촌의 정감어린 분위기가 좋아 커피집을 내게 됐죠”라고 말한다. 문방구를 개조해 만든 이씨의 가게에서는 매일 커피 볶는 냄새가 흐른다. 바로 옆집은 인도에서 공정무역으로 가져 온 물건을 파는 가게가, 또 그 골목을 따라 젊은 예술가들의 음악 소리가 들린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서촌에 현대의 시간이 조심스레 포개진다.

 

가는 길
서촌 여행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시작한다.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효자로를 따라 걷는다. 고궁박물관 맞은편 대림미술관 안쪽 골목에 통의동 백송터가 있다. 이정표가 없는 곳이 많기 때문에 골목에서 주민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종로구청에서 서촌 골목 투어 이정표를 설치하고 있지만 아직 없는 곳이 많아 미리 종로구청 홈페이지(http://tour.jongno.go.kr)에서 상세지도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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