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서촌 골목을 걷는 건 쉽지 않다. 종로구청에서 추천한 골목투어 코스를 따라 길을 나섰지만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비슷한 골목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이정표가 없으니 결국 사람에게 길을 물어 통의동 백송터를 찾았다.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고궁박물관 입구 맞은 편 대림미술관 골목 안쪽에 있다. 통의동 백송은 높이 16m, 흉고둘레 5m에 달할 정도로 크고 또 수형이 아름다워 1962년 천연기념물 43호로 지정됐었다. 그러나 1990년 7월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돼 그루터기만 남은 상태다. 이 주변으로 효자동 80년 역사를 대변하는 보안여관, 골목이 아름다운 통의동 서촌 한옥이 있다.
자하문길을 건너 서쪽으로 향했다. 서당으로 쓰이던 이상가옥터를 지나 누각길을 따라 걷다보면 옥인부동산 안쪽 골목에서 대오서점을 만난다. 권오남(80)할머니는 “예전엔 여기가 다 이런 한옥이었지. 근방에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었어. 그래서 지금도 곳곳에 시인이나 화가 집이 많아요”라고 설명해준다. 누각길, 통인오거리길, 팔운대길을 따라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 사이사이에 근대 화가 이중섭, 이상범 가옥이 있다. 재개발 중인 옥인아파트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1938년에 지은 박노수가옥,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안평대군의 옛 집터에 있었던 돌다리 ‘기린교’ 등을 만날 수 있다.
팔운대1길을 따라 배화여고가 있는 언덕에 올라선다.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배화여고 생활관은 물론, 백사 이항복의 집터인 필운대를 만날 수 있다. 필운대는 배화여고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건물 뒤편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야 찾을 수 있다. 배화여고 인근에는 우리나라 최초 공립 도서관인 종로도서관과 최초 공립 보통학교인 매동초등학교가 있다. 인왕산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서촌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고종이 활을 쏘기 위해 즐겨 찾았다는 황학정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15년 전부터 활쏘기를 배웠다는 정지용씨는 “일제가 경희궁을 헐면서 황학정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해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활을 쏠 수 있다는 게 놀랍죠”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