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부산 감전2동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1. 26. 11:38

"우리가 동물원 동물이야? 뭘 구경해?"
'못 사는 동네'가 국제 관광지 된 사연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 문화마을 전경. 20년 동안 인구가 1/3로 줄어들 정도로 낙후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외국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 선대식
감천 문화마을

 

산꼭대기에 마을이 있다. 산 아래에서 가파른 경사의 도로를 따라 한참이나 올라가야 한다. 빨간 불에 멈춰 선 차량은 파란 불이 되자 뒤로 밀린 후 힘겹게 움직였다. 마을 들머리에 닿자, 산자락을 감싸 안은 마을이 보였다.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색을 입은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런 첫인상은 마을 내부로 들어서자 곧 뒤집혔다.

 

가구 하나 옮기기 어려워 보이는 좁은 골목을 따라 집들이 이어졌다. 골목도 미로처럼 갑자기 끊기기 일쑤였다. 16.5㎡(5평) 정도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한 뼘의 마당도 허용되지 않았다. 가파른 골목은 젊은 사람도 금세 지치게 만들었다. 곳곳에 공동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시간이 수십 년 전에 멈춰버린 듯했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돼지국밥집에 들렀다. 이곳 주인인 박수경(53)씨는 이 마을에 시집을 와 30여 년을 살았다. 박씨는 "예전에 이 마을에 산다고 하니까, 정말 못사는 동네라고 놀림을 받은 적 있다"며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그 다음부터는 이곳에 산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마을이 이렇게 바뀔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벽에는 유명 배우의 사인과 중국어로 된 방명록이 적혀있었다. 박씨는 "주말이면 200명이 넘는 관광객이 마을을 찾는다, 노인들만 살던 낡은 동네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 문화마을 이야기다. 지난 17~18일 이곳을 찾았다.

 

[과거] 건설사도 재개발 포기한 마을... 인구 1/4이 소외계층

 

  
감천 문화마을에는 사람 1명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져있다.
ⓒ 선대식
감천 문화마을

감천 문화마을은 부산의 대표적인 산복도로 마을이다.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직후 부산 원도심이 피난민으로 가득차자, 1955년부터 이곳 천마산 능선까지 주거지가 확대됐다. 이곳 토박이인 김문생(66)씨는 "주민들이 곡괭이 하나만 들고 널빤지와 기름먹인 종이로 집을 만들고 마을을 세웠다"고 전했다.

 

1960~70년대 벽돌을 구할 여건이 되지 않자 마을 주민들은 속이 빈 시멘트 블록을 쌓아 집을 개조했다. 단열이 안 돼 겨울엔 춥다. 집이 좁아 화장실을 갖추기도 어려워,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현재 마을의 모습은 이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대 들어 마을은 더욱 쇠락해갔다. 인근 공단의 신발공장 등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났다. 마을엔 노인들과 돈이 없어 떠나지 못한 사람들만 남았다. 1990년대 후반 주민들이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사업성이 부족해 건설사들도 손들고 나왔다.

 

손창민 감천2동장은 당시 마을 분위기에 대해 "정부나 부산시, 건설사조차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낡고 활력이 사라진 마을이었다"며 "수십 년 동안 공공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앞으로도 개발이 이뤄지기가 어려워 보였다"고 밝혔다.

 

1992년 2만9000명에 달했던 감천2동 인구는 현재 1만207명으로 1/3로 줄었다. 주택 4466호 중 300호가 빈집이다. 인구의 1/4인 2342명은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으로 분류된다. 인근에서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라는 예술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금속공예가 진영섭(53)씨는 "이 마을의 쇠락을 보여주는 숫자들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진씨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이 마을을 알리고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며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에 당선돼 사업비 1억 원을 따낼 수 있었다.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라는 이름으로 10점의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이듬해에도 예술작품 12점을 설치하는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당시 주민들은 예술가들의 작업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김문생씨는 "관광객들을 오게 한다는데, 우리가 동물원의 동물도 아니고 구경거리가 된다는 데 거부감을 가진 주민이 많았다"며 "또 일회성 사업으로 마을이 바뀌겠느냐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손창민 동장이 "지속적인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현재] "어르신들이 헌팅을 시도한다"... 인구도 증가

 

  
부산시와 사하구는 감천 문화마을에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서민주거환경개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최근 폐가 3채를 철거하고 만든 공원이다.
ⓒ 선대식
감천 문화마을

 

이후 마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0~30대 젊은이들이 마을을 찾았다. 마을의 이국적인 풍경으로 인해, 사진가와 건축학도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마을의 분위기는 이들로 인해 한층 밝아졌다. 또한 지역 정치인들과 공무원들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2010년 부산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에 10년간 15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감천마을에서는 도시재생을 위한 서민생활환경개선 사업이 올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공동화장실을 개선하고, 골목길을 단장했다. 폐가를 사들여 공원으로 만들었다. 집수리를 못하는 주민을 위해 주택을 수리했다. 내년에는 커뮤니티 센터도 설립된다.

 

주민들에게 마을은 부끄러운 곳에서 자랑스러운 곳으로 변했다. 지난 7월 전 세계에서 온 학생 20여 명이 참가한 유네스코 국제워크캠프가 열렸다. 진영섭씨는 "주말에 마을 어르신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헌팅'을 시도한다, 어르신들이 서로 마을 구석구석을 직접 보여주려 한다"고 전했다.

 

마을엔 카페도 생겼다. 연면적 64㎡(20평)인 3층짜리 집을 730만 원에 사서 지난 8월에 카페를 연 김정희(43)씨는 "수십 년 전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고, 부산 시내나 낙동강에서 멀지 않아 관광객이 많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낡은 마을이지만, 순수한 인간미가 남아있어서 정겹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도 자치조직을 만들어 마을 분위기를 바꿨다. 마을 안내소에서 택배를 받아주고 열쇠를 보관해준다. 아이까지 돌봐준다. 마을 관리사무소인 셈이다. 장세옥(63)씨는 "서울처럼 아파트로 재개발하면 너무 삭막해진다, 재개발 후 재정착할 수 있는 주민도 많지 않다"며 "지금처럼 모두 더불어 사는 마을로 남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수익도 창출하고 있다. 예술가들과 마을 주민이 함께 공방에서 컵, 스카프 등을 만들어 판다. 지난 4월 이후 매출액이 1800만 원이다. 이 돈은 인건비와 마을공동기금으로 사용된다. 장동환(68)씨는 "예전에는 집에만 있었다, 이렇게 공방이 생겨 돈을 벌고 마을을 발전시킬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인구 증가다. 손창민 동장은 "지금까지 매달 인구가 30여 명씩 줄어들다가, 10월에는 9월에 비해 20명 늘었다, 아이 출산도 2~3명에 불과하다가 7명으로 늘었다"며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 마을이 된 것이다, 매우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마을 주민 김문생씨가 주민들이 만든 컵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 마을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아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 선대식
감천 문화마을
 

[미래] 적절한 수준의 환경개선에 대한 고민이 과제

 

감천 문화마을은 수도권에서 수많은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는 전면철거 방식의 재개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손창민 동장은 "차가 못 들어가는 집들이 많다, 각종 공사를 하면서 인부들이 직접 공사 자재를 들고 수십 미터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다"며 "현재와 같은 환경개선 사업 수준에서는 이곳 주민들이 국민 대부분이 누리는 평균의 생활수준을 누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대규모 개발이나 공공투자를 선택할 수도 없다는 게 손창민 동장의 설명이다. 소외계층의 주거 안정이 위협받을 뿐 아니라, 감천 문화마을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 이곳 마을에 적절한 수준의 환경 개선과 그에 따른 정체성 보존에 대한 고민이 과제로 던져진 셈이다.

 

지난 3년 동안 감천 문화마을에서 일어난 변화는 이곳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손창민 동장은 "인구 증가 현상은 주민들이 감천 문화마을도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며 "1년 뒤에 다시 한 번 와서, 고민의 결과와 변화된 모습을 취재해 달라"고 말했다. 기자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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