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20) 바람을 피워서는 안 되는 이유
S언니는 유난히 '바람'에 민감하다. 평소 진보적이고 성 담론이나 섹스 이야기에 적극적이던 그 언니 맞나 싶다. 이를테면 젊은 아가씨와 바람이 났다는 유부남 지인과는 절교를 선언하기도 했고, 유부남 상사에 마음 설레는 K양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며 화를 내고, 애인이 있는 남자와 감정적으로 얽혔을 때 과도하게 고민을 하기도 한다.
사실 그녀는 몇 년 전 이혼을 했다.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싶더라고. 또래 친구들은 남자친구를 사귀라고 충고하더라.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그런데 난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자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어. 그래서 이혼했지."
언니의 대답을 듣고 '그녀가 생각보다 보수적인 걸까, 아니면 내가 개방적인 걸까'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나에게 '바람'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일부일처제의 모순에 기본적으로 의구심을 품고 있다. 100살까지 살 수 있다면 근 70년 동안 한 사람과 섹스를 해야 한다는 건데, 이게 정말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정말 고통스럽게 참아야 한다는 건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아무래도 버릴 수가 없다.
게다가 남자들의 첫 번째 성경험 50%가 '군대 가기 전 친구들이 돈으로 사준 청량리의 그녀'일 만큼 섹스를 사는 게 일반적이고 "술도 취했겠다, 옆에 젊고 예쁜 아가씨가 온몸으로 들이대는데, 어떻게 그걸 참고 집에 가냐"는 남자들의 변명이 이제는 좀 이해마저 될 만큼 대한민국 특유의 접대 문화가 너무 오랫동안 깊이 팽배하게 박혀 있으니.
여자도 마찬가지다. 유부녀들에게 물어보자.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남자의 목젖과 넓은 어깨, 팔뚝의 힘줄을 보면서 '저 품에 안겨보고 싶다'고 느껴본 적 없어? 네 피부에 다른 남자의 입술을 느끼고 싶었던 적은? 급하게 입술을 찾아 헤매며 깊게 혀를 밀어넣고 싶은 적은? 그런 걸 원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없다고 대답할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머릿속으로나마 다른 남자를 미친듯이 욕망하는 것, 다른 남자와 자고 싶다고 간절하게 느끼는 것도 정신적이나마 '바람'의 일종 아닐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S언니가 씁쓸하게 말했다. "결혼이란 엄마, 아빠, 친척, 지인들, 회사 사람들…… 네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다가 그들 앞에서 평생 서로에게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하는 거야. 내 남편과의 사랑이 식었다고 느끼는 순간, 그와의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않고, 다른 남자들과 아슬아슬한 선을 공유할 때마다, 나는 내 결혼식을 떠올렸어. 그 사람들에게 했던 약속을 스스로 버리고 싶지 않았어. 그들을 속이며 살 순 없었어."
아, 결국엔 약속의 문제라는 것이다. 연애할 때 잘 빠진 외모에 잘 놀던 남자만 골라 만나다가 결혼할 때 평범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남자를 선택하던 많은 지인들이 떠올랐다. 유난히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 약속부터 시작해 아주 작은 약속이나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책임지고,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 이런 남자들은 그 무수한 사람들 앞에서 한 '결혼 약속'을 어길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결국 '바람'이란 유혹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느냐의 문제거나 욕정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접대 자리를 갈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과 신뢰. 그걸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하냐의 문제인 것이다.
나도 거짓말을 싫어한다. 약속을 어기는 건 더더욱 싫어한다. 항상 '바람'의 문제에 자신없던 나는 이제 좀 갈피를 잡은 것 같다. 최소한 내 가족들, 내가 사랑하는 지인들, 그들 앞에서 한 약속은 평생 지키면서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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