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강영우 박사가 미국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시에 있는 자택거실에서 기뻐하고 긍정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뒤로 강 박사가 32세이던 1976년박사 학위 를 딴 뒤 부인 석은옥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스프링필드=박승희 특파원]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으로 답을 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시련은 해일처럼 덮쳤다. 중학교 3학년 때 골키퍼를 하다가 친구가 찬 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8시간 만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이미 3년 전 돌아가셨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된 누나는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숨진다. 13세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9세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는 맹인재활센터로 가야 했다.
“제가 살아온 인생은 보통 사람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일 때문에 내 삶엔 더 좋은 일이 생겼다. 저는 나쁜 일이 생기면 미래에 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긍정적인 가치관, 생각을 가지고 늘 살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강 박사에겐 긍정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고통과 시련에 직면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그거라고 했다.
“암보다 깊은 병은 포기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게 가장 나쁘다. 긍정과 부정은 컴퓨터 자판의 ‘스페이스 바’ 하나 차이다. ‘nowhere(어디에도 돌파구가 없다)’에서 스페이스 바 하나만 치면 ‘now here(바로 여기)’로 바뀐다. 끝이라고 생각하면 끝이지만, 지금 여기라고 생각하면 기회가 된다.”
췌장암은 현대인에게 죽음과 동격이다. 어떤 이는 대체의학 등으로 맞서지만 아직은 거대한 벽이다. 강 박사는 “죽음 너머의 더 좋은 일”이란 말로 췌장암과 화해했다. 췌장암 진단이 내려졌을 당시를 묻자 웃으며 “다른 암이라면 생각을 달리했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한 달여 전 스티브 잡스가 그 병으로 죽는 바람에 걸리면 죽는 병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힘들 때 포기하지 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강 박사는 긍정적인 가치관만으론 안 되고 “섬김과 나눔의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의 230년 전 건학 이념이 ‘Not for Self(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공부를 하는 목적과 사는 목적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주어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생(生)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순위를 따져 공적인 일부터 정리한다고 했다. 그러곤 ‘장애를 축복으로 만든 사람들’이란 책이 내년 초에 발간된다며 “나는 사라져도 책은 나올 것”이라고 농 섞인 말로 배웅했다.
스프링필드=박승희 특파원
◆강영우=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68년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뒤 아내 석은옥씨와 미국으로 유학해 3년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에서 교육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장애인이 받은 최초의 박사 학위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안재욱·김혜수가 출연한 드라마 ‘눈먼 새의 노래’로도 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