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칼바람이 시리면 그 나름대로 걷는 맛이 있으니까. 전국 각지 안 걸어본 곳 없는 도보여행가들이 겨울에 제맛인 길을 골라줬다.
전남 담양 죽녹원 3가지 색 가로수길
가로수가 들어선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를 꼽으라면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전남 담양을 고른다. 거기에는 죽녹원과 관방제림, 그리고 메타세쿼이어 길이 있다. 세 길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 죽녹원은 푸른 대나무가 보기 좋고, 관방제림은 담양천 따라 200년 넘은 고목에서 풍기는 세월의 힘이 멋지다.
메타세쿼이어길은, 단풍이 늦게 지는 나무의 특성상 가을의 뒷맛이 아직 남아 있어 독특한 볼거리가 있다. 이 세 길은 전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죽녹원을 지나 담양천
돌다리를 건너면 관방제림이고, 이 길은 메타세쿼이어길과 연결된다. 담양향교에서 출발해 세 곳을 모두 둘러보면 2시간쯤 걸린다. 죽녹원에서 대나무잎으로 만든
호떡을 먹고, 관방제림에서 한약재로 삶은 한방달걀을 먹는 것도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충남 예산 대흥면 호수 끼고 도는 마을 골목길
예산 대흥면은 슬로 시티다. 유별난 경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막걸리가 생각나는, 마음 편한 동네다. 1970년 즈음에 딱 멈춘 것 같은 텁텁한 풍경의 마을길은 골목마다 정겹다. 시골 느낌이 물씬 나는 동네로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을 촬영했다. 한산한 마을에 뭐 볼 게 있냐 싶겠지만 소소한 볼거리들이 제법 있다. 느티나무와 함께 자란 대흥향교의 은행나무와, 고건축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고택, 백제 시대에 지었다는 절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으면 된다.
작은 마을이지만 산길 섞어서 천천히 걸으면 6~7km 정도의 코스가 나온다. 길 위에서 내내 내려다보이는 예당호의 겨울 풍경도 좋다. 충남 토박이들 사이에서는 겨울 낚시 스폿으로 알려진 곳인데, 겨울 철새가 많고 근처 경치도 예뻐서 사진 찍기 좋다. 호숫가 식당에서 파는 붕어찜이나 어죽도 맛있다.
경북 봉화 외씨버선길
춘양목 소나무숲길
경북 봉화와 청송, 강원도 영월의 마을과 산길을 잇는 긴 둘레길이다. 이맘때는 경북 봉화군의 춘양목 산림체험관에서 도심리까지 가는 약 6km코스의 금강숲길이 좋다. 송림은 겨울에도 짱짱하게 푸른 터라 걷다 보면 눈이 시원하다. 숲길 따라 타박타박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이 숲의 금강송은 곧고 단단해서 궁궐을 지을 때 목재로 썼다. 걷다 보면 아래쪽 둔치에 노란 띠를 두른 나무가 있는데 조만간 문화재 기둥이나 서까래로 쓰일 주인공들이다. 잘생긴 소나무를 만나면 꼭 끌어안고 나무의 체온을 느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면역력을 높여 감기 예방에도 좋다니 참고하자.
걷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칼바람이 시리면 그 나름대로 걷는 맛이 있으니까. 전국 각지 안 걸어본 곳 없는 도보여행가들이 겨울에 제맛인 길을 골라줬다.
경기 성남 남한산성
회색 돌담 쓸쓸한 산길
흥한 나라 유적지는 ‘관광객’이 가지만 망한 나라 유적지는 ‘상념객’이 간다고 했다. 천년 고도 경주만큼이나 비극적 패자 백제의 부여가 좋은 이유도 그래서다. 수학여행을 갔다면 볼품없다고 실망했겠지만, 마흔에 다다르니 유적지 하나하나가 가슴에 박힌다. 남한산성이 그렇다. 그저 애잔해서 좋다. 청나라에 항복한 왕의 아픔이 알알이 박힌다. 겨울엔 나뭇잎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성곽이 더욱 도드라진다. 색이 지워지면 산성의 앙상한 뼈대가 드러난다. 그걸 따라 걸으며 느끼는 쓸쓸함을 권한다. 평소의 남한산성길이 수채화라면 겨울 남한산성은 수묵화나 판화다. 거칠게 칼질한 판화 같은 느낌의 길.
제주 비양도 섬바람길
바닷바람 부는 고즈넉한 돌해변
제주도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섬이다. 협재해수욕장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간다. 여기는 혼자 가는 게 좋다. 동행자가 있으면 오히려 번잡하다. 제주도는 육지를 기준으로 하면 비주류다. 그 제주에서 한 번 더 마이너의 시선으로 고독을 응시하려면 겨울 비양도가 제격이다. 바닷바람이 좀 차겠지만, 그래도 남쪽 바다여서 못 견딜 추위는 아니다. 이 섬을 걸으려면 아침 배를 타고 들어가서 오후 배로 나오는 시간이면 적당하다. 작은 섬이라 여기저기 에둘러가며 올라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내려와서는 꼭 보말죽을 먹자. 왜 꼭 먹어야 되는지는, 먹어보면 안다.
걷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칼바람이 시리면 그 나름대로 걷는 맛이 있으니까. 전국 각지 안 걸어본 곳 없는 도보여행가들이 겨울에 제맛인 길을 골라줬다.
제주올레 6코스
다양한 제주를 전부 만나는 길
이 길은 볼 게 많다. 그냥 경치가 좋아 볼 게 많은 게 아니라 정말 이것저것 즐기고 구경할 게 많다는 얘기다. 제지기오름과 보목포구의 경치는 아름답고,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는 간식거리가 많다.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사갈 수 있어서 외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천지연폭포 위쪽의 생태공원은 사람 적고 조용해서 혼자 걷기 좋고, 전망대에서 폭포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제주올레 사무국과 안내센터 근처의 간세공방조합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제주 토종말인 조랑말을 형상화한 제주올레 로고의 이름이 간세인데, 이곳은 낡은 천을 모아서 간세인형을 만드는 곳이다. 체험 공간도 운영하니 폭신폭신 귀여운 인형을 하나 만들어 가방에 달아놔도 귀엽다. 제주도 남쪽 관광지를 따라 도는 길이라 상대적으로 덜 춥다.
제주올레 10코스
아픈 역사와 예쁜 풍경의 묘한 조화
10코스는 길다. 약 15km 가까이 돼서 걷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난다. 겨울 10코스는 화순해수욕장 지나 산방산 근처가 멋있다. 이 산은 제주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마치 종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용머리해안 전망대에서 보는 형제섬과 송악산, 마지막으로 송악산에서 보는 가파도와 마라도쪽 경치가 좋다.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섬이지만, 겨울바람 맞으면서 보는 고즈넉한 섬들은 또 다른 맛이 있다.
제주의 겨울은 상대적으로 관광 비수기지만,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추운 날을 골라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 이 길에는 제주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미국의 공격을 막으려고 제주도에 비행장과 비행기를 은폐할 격납고, 무기를 숨겨둘 해안 동굴을 만들었는데 10코스 중간 ‘알뜨리비행장’ 터도 그런 곳이다. 비행장이 있던 곳에선 지금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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