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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7대 자연경관 선정 제주도] 사려니숲길 르포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2. 1. 10. 18:14

세계 제7대 자연경관 선정 제주도] 사려니숲길 르포

 

아바타적 분위기의 신역(神域)을 노닐다 봉개동~붉은오름 입구 10km… 완경사 내리막 숲속 길

 

 

제주도 말로 사려니, 살안이, 혹은 솔안이의 살, 솔은 신성한 곳을 뜻한다고 하니, 사려니 숲길은 곧 신역(神域)의 숲길이다. 실제 걸어보면 과연 신의 땅이라 할 만하게 사려니숲은 짙고 아름다우며, 간혹 안개가 끼면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제주 올레 19개 코스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그 올레길들에 못지않은 인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태 전 개방된 이래 매년 방문자 수가 배로 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기까지 했으니 사려니길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늘어날지-. 한겨울 눈이 깊이 쌓이는 때도 입구까지 제설작업이 되어 여러 사람이 찾아온다고 한다.





↑ [월간산]사려니숲길 중반부를 지나면 울창한 삼나무숲 사이로 길이 전개된다. 비에 젖은 삼나무 숲에 흠뻑 배들었던 정갈한 기운이 길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문득 졸음에서 깨어나 창밖을 본다. 엄청난 숲 사이 도로를 버스는 서행하고 있다. 와이퍼가 버걱거리는 앞 차창 밖으로 내다뵈는 도로의 저 끝까지 아름드리 삼나무 숲이다. 날이 흐린 데다 숲은 넓고 짙어서, 숲속 깊은 곳은 숫제 한밤중이다.

'아무리 인기가 좋다 해도 이렇게 비가 부슬거리고 쌀쌀한 가을날에는 한적하겠지' 하는 추측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종종 굵은 빗방울이 후득이는데도 사려니숲길 출발점을 지나는 2차선 아스팔트길은 입구 양쪽으로 1km쯤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주말에는 날씨 불문하고 이런 상황이라 한다. 11월 6일 일요일 오늘은 올해 단풍빛으로는 마지막일 것이라 하여 특히 많은 사람이 몰려온 것 같다고 숲해설사 강송화씨는 말한다.

사려니길은 한라산 동사면,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 중간(교래사거리에서 1112번 비자림로를 따라 5km쯤 서진한 지점)부터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 오름까지 이어지는 15km 숲길이다. 다만 중간 지점부터 사려니오름까지는 사전 신청해야 가볼 수 있으며, 연중 개방하는 구간은 교래리~붉은오름 간 약 10km다. 각 지점의 들목엔 두 아름쯤 되는 커다란 통나무 형상의 조형물을 세워 사려니숲길 입구임을 알려주고 있다.

해발 590m에서
440m로 완만한 내리막


일방통행길이 아니므로 어느 한 곳을 특별히 출발점이라 말하는 건 무리다. 다만 비자림로에서 붉은오름 방향이 전체적으로 내리막이어서 사람들 대부분이 북쪽 교래리의 비자림로 중간 기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비자림로 출발점이 해발 590m 정도, 붉은오름 아래 종점이 440m다.





↑ [월간산]사려니숲길 입구.

우정 사려니숲길로 들어설 것도 없이 입구 주변 삼나무숲 산책만으로도 그만이겠다 싶다. 강송화 해설사의 말로는 1930년대 제주도가 벌겋게 헐벗었을 때 제주도민들이 일본에 가 속성으로 자라는 삼나무를 보고 들여와 바로 이곳 일대에 처음 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곳 사려니숲길 입구 주변의 삼나무들은 수령이 80년쯤으로 유난히 굵은 것이라 한다. 이곳에서 키운 묘목들이 제주도 곳곳으로 퍼져나가 지금 같은 삼나무 숲 천지가 되었다고 한다.

노랑, 파랑 우비를 걸친 사람들이 줄지어 사려니숲길로 접어든다. 바닥에 붉은색의 '송이'라 부르는 제주도 특유의 화산 파쇄석을 깐, 농로처럼 널찍한 길은 자전거도 얼마든지 다닐 정도지만 탐방객이 많아지며 출입을 금했다. 입구 안쪽 50여 m 지점의 길가에 자그마한 안내소와 안내자가 있지만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일제 때의 남벌이나 6·25전화도 피해간 것일까. 사려니숲길 주변 수목들은 육지부보다 한결 풍성하고 짙다. 온화한 기후로 생장이 빨랐던 덕인지 수목들이 굵고 육감적이다. 굵은 줄기의 큰키나무들을 간혹 팔뚝만 한 굵기의 덩굴식물들이 휘감았고 키 작은 관목이나 관중, 고사리 등속도 무성하다. 강송화씨가 말한다.

"활엽수종은 거의가 때죽나무나 서어나무예요. 저기 세로로 길게 무늬가 나 있고 옆으로 멋지게 휜 나무가 때죽나무죠."





↑ [월간산]비를 맞으면서도 사려니숲길의 마지막 단풍빛을 즐기려 찾은 사람들.

아름드리 곰솔나무처럼 표피가 거친 수목 줄기들엔 푸르스름한 이끼가 두툼하게 덮여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가 저 유명했던 영화 '아바타'의 숲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런 아바타적 숲 분위기는 한겨울을 제외하곤 봄부터 늦가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추적이는 빗줄기에 떨어진 단풍잎들이 핏빛처럼 붉다.

"이제 마지막 단풍이에요. 오래지 않아 눈이 내릴 겁니다."

강송화씨는 겨울 사려니숲길 풍경도 아름다우니 그때도 한 번 다시 와 보라 권한다.
빗물이 모이고 모여 내륙처럼 냇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어딘가 움푹 팬 곳에서 고일 것만 같은 평지길이지만, 길을 가로질러 뚜렷한 물길이 지나고 있다. 새왓내라는 내로, 40여 개 오름들 사이로 흘러내린 물줄기들을 모아 이윽고 제주도 남동쪽 표선 바닷가로 쏟아져내리는 길이 25.7km의 천미천(川尾川) 지류다.

시간 남짓 걸어 다리가 좀 피곤하다 싶은데 마침 길 오른쪽에 정자가 나선다. 비를 그으며 간식 들기엔 안성맞춤인 자리다. 정자가 선 이곳에서 물찻오름 길이 갈라지는데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을 금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물찻오름(水城岳·717.2m)을 보고 싶다는 민원이 많아, 아마도 2013년쯤엔 개방될 것이라 한다. 강송화씨가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낸다.





↑ [월간산]사려니숲길 개념도

"제주도에는 아홉 군데 물 저장 능력이 뛰어난 오름이 있어요. 이곳 물찻오름과 물영아리, 물장오름, 어승생악, 금오름, 원당봉 같은 오름이에요. 물찻오름은 지하에서 솟아오르던 용암이 중간에 굳어서 그릇 같은 역할을 해주어서 물이 차오른다고 해요. 그래서 물찻오름이죠."

사람과 친숙해진 노루,
도망가지도 않아


한라산 동면의 대표적 등산기점인 성판악 쪽 갈림길목에서 길이 왼쪽으로 크게 휘어나간다. 성판악 방면 길도 휴식년제로 묶여 있으며, 이즈음부터 서귀포시 관할로 바뀐다.

"이 근처는 오뉴월이면 잎이 무성해져서 주라기 공원 같아져요"하는 강 해설사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유난히 굵은 수목들이 많이 우거졌다. 서귀포 쪽으로 들어서자 녹나무과 식물들이 많이 뵌다.

이 일대가 곶자왈 지형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곳이라며 강 해설사가 가리키는 숲속은 땅이 고랑이 진 듯 울퉁불퉁하다. 곶자왈이란 바위가 많은 곳이란 뜻으로, 제주도 전체가 용암지대이긴 하지만 유난히 크고 작은 바윗덩이들이 많은 곳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이런 데의 수목은 흙이 많은 곳에 비해 성장이 매우 더디어서, 저기 팔뚝처럼 가늘어서 수령이 고작 10년생쯤 돼 뵈는 것도 실은 20~30년쯤 되었을 것이라 한다.





↑ [월간산]1 사려니숲길에서 만난 어린 숫노루. 사람을 보고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2 사려니 숲길가의, 누군가 가난했을 이의 무덤.

"잠깐 스톱! 쉿!"

앞선 일행이 그러면서 몸까지 낮춘다. 길 바로 옆의 숲에서 자그마한 숫노루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사람들과 많이 익숙해져서인지 곁눈질로 흘끔거리면서도 도망가지 않는다. 빵을 던져주면 먹을까, 저 어린 숫노루한테는 특식이 아닐까 어쩌고 떠드는 소리에 그예 노루는 숲속으로 몸을 감춘다.

오른쪽으로 목제 데크를 깐 샛길이 뵌다. '치유와 명상의 숲'이라 따로 간판을 세워둔 것으로 보아 숲이 유난스레 좋은가보다. 모두들 이 길로 접어든다. 역시, 한결 굵고 크게 자란 활엽수목들이 주변 공간을 채우고 나선다. 데크길은 구불구불 숲속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나서 다시 주탐승길 쪽을 향한다.

어느덧 비는 그치고 늦가을 파스텔 톤 치유와 명상의 숲을 빠져나오는 순간 이마를 건드리는 서늘하고도 정갈한 기운-. 바로 앞 암녹색으로 짙디짙은 삼나무숲이 근원지다.

제주도 사람들은 삼나무를 쑥대낭이라 부른다. 곧 쑥대처럼 빨리 크는 나무(낭)이라는 뜻이다. 그 쑥대낭 숲 전체에 투명한 액체로 머금어진 듯한 정갈함이 조금씩 숲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그 숲속 데크 길로 들어가본다. 길이 끝나는 숲 가운데 자궁처럼 자리한 작은 휴게공간에는 이미 우리처럼 쑥대낭 숲기운에 이끌린 몇 사람이 수백 가닥 비에 젖은 삼나무 줄기들이 모여 서서 이룬 맑은 어두움의 아늑함에 조용히 취해 있다.
삼나무숲 옆 주탐승로의 정자에 모여 앉아 도시락을 드는 사람들 모습이 편안하다. 이미 비자림로~붉은오름 간 10km 길을 5분의 3쯤 지났다. 사람들은 차를 놓아둔 비자림로 쪽 입구로 대부분 발길을 되돌린 뒤여서 사려니숲길은 휑하니 비었다.





↑ [월간산]비에 젖은 사려니숲길의 허공과 땅을 장식한 단풍잎들.

길가 삼나무숲 아래에 숲을 가꾸는 조형물인 듯 외담을 두른 단아한 무덤 한 기가 자리했다. 제주도 무덤들은 짐승이나 해충 박멸을 위해 놓은 불길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반드시 돌담을 둘렀다. 돌이 흔한 제주도이긴 하지만 네모나게 반듯이 다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집 무덤은 대개 외담, 부잣집 무덤은 겹담을 둘렀다.

붉은오름 입구에 다다른다. 붉은오름(529m)은 옛적 벌거숭이 민둥산이었을 때 붙인 이름. 이제는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는 화구륜을 한 바퀴 빙돌아도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숲이 짙어졌으니 푸른오름이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화구륜을 돌아 내려오기까지는 1시간쯤 걸린다.

갑자기 저 아래 도로변이 시끌벅적하다. 앞질러 내려간 일행들이 한남리 사려니숲길 입구의 포장마차에서 오뎅과 막걸리로 판을 벌였다. 비가 부슬거리거나 말거나, 상큼한 숲 탐승을 끝내고 속이 출출해진 우리에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세창코델리아호

평택~제주 간 운항 8500톤급 카페리
생맥주잔 들고 밤바다 보며 송년 건배 하는 낭만






↑ [월간산]1 명상의 숲길은 아바타의 한 장면 같다. 2 굵은 교목부터 작디작은 풀까지 고루 품고 있는 사려니숲.

평택~제주 간 세창코델리아호는 중국을 오가는 선박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보따리 장사꾼들이 없이 오로지 관광 목적인 사람들만 타는 여객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객실이며 홀은 말끔했고, 바다가 뵈는 창가 쪽으로도 휴식용 테이블들을 여럿 배치해 놓았다. 생맥주잔을 들고 바닷가 창에 앉으면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때문에 사람들은 평택항 출항 후 밤늦도록까지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객선을 타고 가는 제주도 한라산행은 연말연시 산악회원 단합용 산행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일행이 10명 단위를 넘을 것 같으면 아예 단체 객실을 빌리는 것이 더 재미나다. 다소간 들뜬 기분이 보태진 뱃길 송년회 낭만은 일년에 한 번쯤은 맛볼 만한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저녁 8시부터는 가수 겸 MC가 진행하는 노래 무대도 1시간쯤 연다.

평택~제주 간에는 그간 정기 여객선이 없어, 뱃길 낭만을 즐기려는 이들은 우정 인천항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지난 3월 세창코델리아호가 취항하며 이런 불편함이 없어졌다. 세창코델리아호 소문이 퍼지며 서울 남쪽의 평택, 수원, 아산은 물론 충북 청주 근처에서도 등산동호인 모임의 문의가 들어온다고 세창해운 김종찬 본부장은 말한다. 수도권 남부지역 사람들 중엔 서해안을 드라이브하며 평택까지 내려간 뒤 코델리아호를 이용하는 낭만파들도 많다고 한다. 8500톤 급이니 예전에 금강산 관광용 카페리호로 유명했던 설봉호(4,000톤 급)보다 두 배나 커서 안정감이 있다. 승객 900명, 화물차 및 승용차 150대 등을 동시에 운송할 수 있는 선박이다. 식당, 노래방, 오락실, 목욕탕, 편의점, 호프바, 커피숍, 안마기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평택항 발 화목토 오후 6시30분(이튿날인 수금일 오전 8시 제주항 도착), 제주항 발 월수금 오후 6시30분(이튿날인 화목토 오전 8시 평택항 도착).





↑ [월간산]

운임(편도)은 3등실 성인 6만500원(터미널이용료 1,500원 별도), 2등실 1등실 가족실도 있다. 예약문의는 홈페이지 또는 1577-4287 제주 064-759-3121~2, 평택 031-684-0857~8.

탐승 길잡이

사려니숲길은 연중 어느 때 가도 된다. 단, 사려니오름까지 걸어보고자 하면 탐방 이틀 전까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림산림연구소(064-730-7272, jejuforest.kfri.go.kr)에 인터넷을 통해 신청한다. 월·화요일은 휴무.
거의 모든 사람이 봉개동 비자림로→붉은오름 입구 방향으로 걸으며, 10km에 쉬엄쉬엄 걸어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안내팻말 등이 세워져 있어 길을 잘못 들 염려는 거의 없다. 중간 중간 화장실, 벤치 등이 놓여 있다.
숲해설사와 동행을 원하면 제주시청 공원녹지과(064-728-3595)에 문의한다. 단, 20명 이상 단체 탐승객에 한한다.

교통

비자림로변에는 별도의 주차장이 없으므로 길가에 주차해야 한다. 또한 차를 가지러 되걸어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제대로 구경하려면 대중교통편을 이용토록 한다. 제주시→비자림로 사려니숲길 입구: 제주시외버스터미널(1688-5300)에서 표선행이나 성산행 버스 이용.
표선행 매시 28분(06:28~20:28) 출발. 성산행 07:15 08:05 09:45 10:40 12:10 13:05 14:45 15:40 17:15 18:05 19:45 출발. 사려니숲길 입구까지 25분 소요, 요금 1,000원. 출발시각·요금 문의 064-753-3242.
붉은오름 쪽은 제주시외버스터미널~남조로~서귀포 간 20분 간격으로 버스 운행.

숙박(지역번호 064)

제주도 곳곳에 숙박시설이 많지만, 사려니숲길을 목적으로 한다면 출발점에서 가까운 절물자연휴양림을 권할 만하다. 7~8월 이외엔 비수기 요금을 적용, 4인실 3만2,000원, 6인실 4만 원, 8인실 6만 원 등이다. 문의 721-7421.
청아대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위치하며, 숲과 어울린 분위기가 괜찮은 휴양시설이다. 통나무집 14동, 200여 평 연회장, 건강족욕탕 등을 갖추었다. 마당에 작은 캠프파이어장도 있어 소수 인원의 산악회 송년 모임장소로 삼을 만하다. 요금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문의 746-8005.





↑ [월간산]청아대 건강족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