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질아질 성마령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 같은 정선읍내 10년간들 어이 가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선아리랑의 성마령 고갯길을 간다. 해발 1,560m로 치솟은 가리왕산은 남으로 큰 줄기를 내리뻗으며 정선의 서쪽 옛 한양 방면을 가로막았다. 이 두툼하고도 높직한 산줄기를 가로질러 넘는 여러 가닥 고갯길이 생겼으니, 마항치, 벽파령, 마전치, 동무지치 등과 더불어 성마령이 그것이다.
↑ [월간산]송림이 우거진 사이로 널찍한 성마령 길이 지나고 있다. 성마령은 정선을 드나드는 한양쪽 주요 통로로서 가마도 다녔기에 옛적에도 길이 적잖이 넓었을 것이다. |
정선아라리의 '아질아질 성마령…' 노랫말은 조선조 말 부임해 가던 고을 원 오횡묵(吳宖默)의 부인이 지었다고 한다. 고갯길이 어질머리 앓도록 굽이가 많고 가팔라서, 저 깊고 깊은 산골 마을 정선에 한 번 들면 언제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어 절로 장탄식이 나왔던 모양이다.
가리왕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2차선 도로에서 서쪽 짤막한 다리 건너 콘크리트 포장길로 접어든다. 이렇게 꼬불꼬불 한없이 올라가다가 그냥 훌쩍 고갯마루를 넘는 게 아닐까 싶게 깊고 긴 산골짜기-. 어김없이 두 다리로 걸어서 지나야 했을 옛적에는 시작부터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정선 읍내의 어느 바람난 남녀에겐 이 성마령 길은 그중 짧고도 고마운 탈출로였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정선읍내야 일백오십 호 몽땅 잠드려 놓고서
임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 [월간산]돌리네 안에 묘를 앉힌 '정승구덩이'.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상을 통틀어서도 이런 무덤은 아마도 이것이 유일할 것이다. |
심한 꼬부랑길이라 관광버스는 어림없다. '성마령 등산로' 팻말이 인도한 그 길 끝에는 고즈넉한 산사가 하나쯤 앉았으려니 싶었는데, 뜻밖에 여러 가구의 마을이 나선다. 정선읍 용탄리 행매동마을로, 예전엔 분교도 있었다고 한다. 고랭지 채소 농사로 지금도 살림살이가 그런대로 괜찮은 마을이라 한다.
행매동마을을 남쪽으로 가로질러 벗어나자마자 찻길이 끝나며 승용차 서너 대쯤 댈 수 있는 작은 공터가 닦여 있다. 차를 대고 행장을 차려 나선다.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화만 신은 사람도 서넛이다. 이미 오후 3시가 가깝다. 고개 넘기도 전에 꼴깍 저무는 건 아닐까.
차 한 대 겨우 다닐 만한 좁은 임도를 따라 걸어들었다. 먼지가 풀풀 일고 팔뚝만 한 활엽수목이 어지러이 엉킨, 여느 산의 어느 임도와도 다름없는 평범함. 그렇겠지. 옛 고갯길이라는 게 그렇고 그럴 수밖에-. 그러나 오래지 않아 선입견이 지나쳤음을 안다. 공터에서 200여 m 임도를 따르다가 오른쪽 오르막 샛길로 접어들어 섰다. 가렸던 장막을 훅 걷어낸 듯한 시원스러움으로 다가오는 공간-. 잔가지를 정성스레 다듬은 미끈한 소나무들이 뚜렷한 원근감으로 계곡을 더욱 깊고 정갈하게 펼쳐내고 있다.
갑자기 우리는 언제 어디에 다다라도 좋은 나그네 심사가 된다. 발 닿는 곳까지 가다가 해 저문 그곳에서 머물면 그뿐인 부평초 인생이 된다.
소나무 숲을 지난 햇살이 어지러이 갈지자로 토막지며 눕는다. 더불어 걸음걸이도 편한 갈지자로 흐트러진다. 정선아라리 노랫말의 그 주인공은 규중에만 머물던 여인네라 엄살이 좀 심했던 것 같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즐겨보자고 마음먹었다면 이런 아름다운 고갯길이 또 어디 있을까 하는 흥타령이 나왔을 게 분명하다.
↑ [월간산]정선 쪽 '성마령 가는 길' 팻말. 그러나 평창 쪽으로 넘어가면 아무 표식도 없다. |
앞선 일행이 길 왼쪽 저편에 모여서서 웅성거린다. 깊이 10m에 지름 30m쯤으로 움푹 꺼져 내린, 영락없는 큰 사발모양의 돌리네(doline)가 형성돼 있고 그 바닥 한가운데 큼직한 비석까지 갖춘 무덤이 한 기 오롯이 앉았다. 어떻게 이런 데에 무덤 쓸 생각을 했을까. 이런 돌리네는 바닥으로 물이 잘 빠지기는 한다. 그러나 비가 급작스레 많이 쏟아지면 혹 물에 잠기지 않을까.
정선에는 이렇게 석회성분이 빗물에 녹아내리며 그릇처럼 움푹 꺼진 지형이 많다. 억새 명산으로 유명한 민둥산 동편 팔구덕마을의 여덟 개 돌리네가 유명하고, 그외에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렇게 그 안에 무덤을 쓴 예는 처음이다. 구덩이 옆에 선 '정승구덩이' 안내판이 이 무덤자리의 내력을 전하고 있다.
이 분묘는 고려 말 정승 우화공 전체명의 묘다. 이성계에 불복해 산골에 은거하고자 성마령을 넘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상중의 며느리가 지쳐 쓰러진 노승에게 젖을 짜서 먹여 살려주었더니 노승이 이 묫자리를 잡아주고 "암반이 나올 것이며, 그대로 안장하면 후손이 높고 귀하게 될 것"이라 일렀다. 그러나 성미 급한 막내 동생이 바윗덩이를 일구어내며 전우화공 묘소는 꽝 소리와 더불어 주변이 내려앉아 웅덩이가 되었다.
지금 여기 산소가 있으니, 그런 기이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산소는 그대로 앉혔다는 말이 된다. 아무튼 난생 처음 보는 기이한 무덤이라 일행은 한동안 구덩이 주변을 떠날 줄 모른다. 이러다간 기어이 고개도 넘기 전 날이 저물고 말 것이라며 정선 토박이 산꾼 나병기씨는 재촉하지만, '성마령 가는길 1.5km' 팻말을 본 서울 나그네들은 느긋하기만 하다. 날이 저물어보았자 그까짓 것, 옛날처럼 호랑이가 나올 것도, 산적이 숨은 것도 아니니 그냥 되돌아서면 그만인 것이다.
↑ [월간산]성마령 너머의 평창 쪽 고갯길 낙엽송이 아름드리로 컸다. |
벌깨덩굴이며 여러 가을 야생초화가 길가를 따라 피어나 있다. 1960년대의 신작로처럼 널찍한 임도로 올라섰다가 이내 다시 숲으로 든다. 길이 가팔라지기 전, 무너진 돌담이 작은 평지를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행매원(行邁院)이라는, 일제 때 비행기재로 신작로가 나기 전까지 정선의 관문인 성마령을 넘는 길손들을 위한 숙소가 섰던 자리'라고 안내판이 전하고 있다. 지금 이 성마령 길의 한갓진 고요 속에서 많은 길손들로 붐볐다는 말을 어떻게 실감할 수 있을까.하늘의 별을 매만질 수 있을 듯한 고개라서 성마령
앞장선 사람의 그림자가 우스꽝스러울 만큼 길게 늘어지고 숲은 금빛 찬란한 햇살로 채워질 무렵 우리는 고갯마루에 닿는다. 정선문화원이 2008년 성마령 고갯마루에 세워둔 표지석이 길손들을 맞는다. 성마령은 한자로 별 성 자, 어루만질 마 자를 써서 '星摩嶺'이라 표기하고 '하늘의 별을 매만질 듯한 고개'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해발 979m. 대관령보다 200m쯤 더 높은 곳, 공장이라곤 없는 곳이니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 하늘이 열린 겨울 이 성마령에는 여전히 별이 한 줌씩 움킬 수 있을 만큼 많을 것이다.(좌표 N37˚23′25.5″ E128˚32′31″)
고갯마루 아름드리 느티나무 옆 평평한 곳에 준비해 온 먹을거리들을 펼쳐놓는다. 979m 높은 곳의 상큼한 늦가을 공기만으로도 도회의 우리에겐 성찬이다. 여기에 정선 막걸리와 아라리 여사가 정선 시장에서 사온 메밀전병, 삶은 옥수수가 곁들여진다. 전병 한 입 베어 물고, 한 겹 포근한 옷으로 몸을 감싸고 청노루처럼 코끝으로 가을 숲향도 맡아본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한 사람은 반대쪽 하산 지점으로 차를 돌리려 되내려가고, 일행은 내리막 길로 접어든다. 아름드리 낙엽송 숲과 붉은 햇살로 매혹하던 길이 갑자기 험악해진다. 좁은 소로로 변하고 안내판마저도 없어 간혹은 족적을 찾기 어렵다. 특히 널찍한 임도로 내려선 이후는 누구든 길이 헷갈릴 것이다.
↑ [월간산]성황나무와 돌무지, 표지석이 선 '별도 매만질 수 있다'는 뜻의 이름인 성마령 고갯마루. |
갈골, 산막골, 졸우막 등의 여러 자연부락을 합해 평안리로 했다고 한다. 그중 송림이란 마을도 있었을 만큼 소나무가 무성했던 모양이다.
서편 산릉의 상고머리처럼 가지런한 숲 뒤로 붉은 해가 막 넘어가고 있다. 예상보다 성마령 길은 이렇게 저물기 전에 넘을 만큼 짧았다. 짧았던 고갯길이 아쉬워서 우리는 그냥 앉아 차를 기다리지 않고 미탄면 소재지 쪽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수숫대 사이로 밭뙈기 가운데 둔덕에 앉힌, 누군가의 별장인 듯한 갈색의 장방형 목조 주택이 뵌다. 서향이어서 오래도록 노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곡 안에서 찻길이 끝나서인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아스팔트 도로변 어스름이 지는 농가 마당에 나앉아 할머니가 얼갈이배추를 다듬다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할머니 눈에 어린 외로움이 잿빛이다.
길잡이
↑ [월간산]성마령길의 평창 쪽 기점인 평안리 마을의 농가. 뒤에 멋진 노송들을 두르고 있다. |
성마령길은 정선군 정선읍 용탄리~평창군 미탄면 소재지 간의 17km 긴 길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포장길이 가 닿는 용탄리 행매동과 아스팔트길이 난 미탄면 평안리까지로 끊는 경우 걷는 거리는 7km로 한결 짧아진다. 이렇게 양쪽 끝을 차로 들어가면 2~3시간으로 충분하다.
동에서 서로 성마령을 넘어가면 차를 가지러 가기가 좀 불편하다. 미탄면 소재지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행매동까지 되넘어오려면 택시비가 3만 원쯤 든다. 그러므로 성마령 고갯마루까지 갔다가 되내려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평창 쪽 산길은 별 볼 것이 없다. 평안리 마을 구경이 아쉽다면 나중에 차로 들어가본다.
성마령 길만 보고 멀리 정선까지 가기는 그렇다. 정선 오일장 구경이나 구절리 레일바이크 등속을 곁들이는 것이 좋겠다. 늦가을 민둥산 억새 구경을 엮는 것도 권할 만하다.
교통
일단 정선까지 가서 용탄리 행매동마을까지 택시를 갈아탄다.
서울→정선 동서울종합터미널 (02-446-8000)에서 1일 10회 운행. 3시간30분 소요. 문의 정선시외버스터미널 033-562-9265.
↑ [월간산]평창 쪽 성마령 길 중간에서 만난 자작나무 고사목. 밑둥에 수액을 받느라 V자로 낸 흠집이 뵌다. |
정선 시외버스터미널(033-563-9265), 정선시내버스터미널(033-563-1094)에서 성마령길 입구인 용탄리 가는 버스가 하루 7회 운행한다. 행매동까지 가는 버스는 없다.
정선읍내에서 행마동까지 택시요금 1만5,000원. 영신택시 033-563-4422, 개인택시 사무실 033-592-5050.
숙박(지역번호 033)
수정헌(守靜軒)은 여성산악인 권혜경씨가 운영 중인 소박한 민박집으로, 옛 광산 독신자 숙소를 리모델링했다. 3~4인용 3만 원(공동 화장실 사용). 매식도 된다. 문의 563-8860.
가리왕산이야기는 가리왕산자연휴양림 입구 오른쪽 둔덕에 위치한 멋진 펜션으로 캠프파이어장, 야외 바비큐장 등 시설이 돼 있다(문의 562-1665). 그외 동강펜션(378-6075), 임씨네농장(562-4346) 등이 동강변 업소로 권할 만하다.
↑ [월간산] |
맛집(지역번호 033)
두메산골(오가피 영양밥 등, 생약초 전문음식점. 563-5108), 춘천황기닭갈비(생약초 전문음식점 562-9945), 정선골식당(황기보쌈 전문점 563-8114), 동광식당(황기족발집 563-3100), 정선황기숯불(황기 양념을 쓴 삼겹살 바비큐 전문점 563-5292), 동박골식당(곤드레 나물밥 전문점 563-2211), 짐포리식당(민물고기 매운탕 전문점 563-2479). 춘천닭갈비집(563-2683)은 뼈를 골라낸 닭갈비와 곤드레나물밥이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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