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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물'만 보러 가시나요?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0. 5. 14. 21:57

청계천에 '물'만 보러 가시나요?



청계천 문화관에서 본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촌) 판잣집 뒤쪽이 청계천쪽이다.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촌)


 


4월 15일, 청계천 문화관에 볼 일이 있어 제기동(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와 청계천변을 향해 걸었다. 청계천을 향해 10분쯤 걸었을까? 청계천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청계천변에 운동을 하러 나왔다는 어떤 여자가 알려준 대로 청계천문화관 쪽을 보자 판잣집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9월 초, 청계천을 따라 16km 가량을 걸은 적이 있는데 그때 궁금해 했던 바로 그 집이었다.

청계천변을 따라 걷다 만나면 좀 생뚱맞다 싶다. 2~3층 높이쯤 될까? 높다란 철제계단 위에 아무런 안내 글조차 없이 이 판잣집이 뎅그러니 올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좁은 계단인데 페인트칠을 했으니 조심하란다. 그리하여 셔츠자락을 한 손으로 꼭꼭 여며 잡고 계단을 한참 올라가 보니 어머나!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광명상회? 또리 만화방? 리어카 두개가 휴식중이다. 시골태생이어서 도시의 판잣집은 낯설다. 하지만 시골에도 워낙 흔했던 광명상회나 판잣집에 덕지덕지 붙여진 반공방첩 벽보나 담배, 아이미 등의 안내판이나 빨간 공중전화는 썩 낯익다. 내가 자란 곳 점방과 읍내 곳곳에서 자주 봤던, 이제는 그립고 아련한 추억속의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광명상회, 또리 만화방에 옛 추억이 아련히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촌) 광명상회 앞-아이미 캐릭터를 한때 참 좋아했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 입구엔 작은 점방이 하나 있었다. 술이나 담배, 라면이나 과자, 까스명수, 미원, 공책 등, 언제나 필요한 물건들 조금씩을 팔았다. 성냥과 양초도 팔았다. 분홍색의 이쁜이비누가 담긴 비닐봉지와 노란 고무줄과 까만 고무줄 묶음이 늘 점방 입구에 걸려 있곤 했다.

점방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고 동네 아주머니 서넛, 혹은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서서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우리들도 그곳에서 놀 때가 많았는데, 종종 "시끄럽다"며 쫓겨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다시 모여 들어 고무줄놀이나 구슬치기를 하며 놀곤 했다.

동네에는 넓은 곳들도 많았는데 우린 왜 그 곳을 고집했을까?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 아닐까? 고향 가는 길, 점방자리를 지나며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점방에서 팔고 있는 과자만큼 반가운 것은 겨울 어떤 날 점방 앞에서 하루 종일 뻥튀기를 튀기는 아저씨였다. 무더운 여름날, '아이스께끼' 통을 메고 나타난 아저씨도 반가운 사람 중 하나였다.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 속 그리운 풍경과 그리운 사람들이다.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하지만,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 광명상회에는 동네점방이나 읍내의 가게들, 학교 문방구에서 낯익혔던 물건들이 꽤나 많았다. 특별한 추억으로 더욱 그리운 것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한참 동안이나 서성이며 오래된 기억속의 물건들과 해후했다. 체한 동생에게 먹일 까스명수를 사러갔던 어느 날 밤, 반갑게 열리던 점방 쪽문을 떠올리며.

점방 천장에나 읍내 가게마다 빠짐없이 걸려있던, 동그란 원을 따라 집게가 달려있어 미원을 걸어놓고 팔던 것은 친정 엄마의 젊은 모습을 그리워하게 하는 물건이다. 미원의 주성분인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몸에 해롭기에 이제는 없애야 할 물건이지만, 한때 미원은 삶의 고단하고 쓴 맛을 달게 해주는 명약이었다. 미원을 물에 타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미원파'와 '미풍파'가 신경전을 벌이던 그 시절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촌) 광명상회 안


 


내가 살던 곳은 80가구가 넘는 제법 큰 동네였다. 미원이 동네 아낙들 인기를 독점하고, 한복을 곱게 떨쳐입은 어여쁜 색시들 사진이 큼지막한 미원 달력이 몇 년 동안 집집마다 걸렸다. 그 얼마 후 미풍이란게 나왔다. 동네 아줌마 몇이 미풍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원파'와 '미풍파'로 갈려 수근 대곤 했다.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사람이 원수가 되기도 했던 시절이었던지라, 음식이 빠질 수 없던 동네잔치가 있을 때면 미원파와 미풍파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무엇을 넣었든 우리들에게는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울 만큼 날마다 먹고 싶은 잔치음식들이었는데 두 파는 무슨 음식에 무엇을 넣는가를 두고 말도 참 많았다. 피식 웃음이 나는 기억이다.

동네 점방이 꽤 인기 있던 나의 어린 시절 70년대, 동네 부녀회에서 좀도리쌀을 모았다. 그와 함께 성냥과 양초 몇 갑, 이쁜이비누 몇 개, 미원 몇 봉지 등, 꼭 필요한 열 댓가지의 물건을 라면 박스 하나에 담아 팔아 부녀회 기금으로 모으기도 했다. 그 물건상자를 두 달에 한 번씩 다른 집으로 넘겨 팔았는데 우리 집에 온 상자가 얼마나 마음 설레게 하던지.

친정어머니 올해 75세. 명절이면 골목마다 왁자지껄하던 풍경은 벌써 20여 년 전에 사라졌다. 이제 20여 가구 남짓하다던가. 동네 어르신 몇 분 남지 않았다. 요양원에 계신다는 분도, 치매로 딴 세상을 살고 있다는 분도 있다. 그 분들도 이 물건들을 보며 나처럼 그때를 떠올리며 웃겠지. 모든 것이 그리운 날이었다.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촌)에서-어른들이 말하는 소주 대둣병 들고 호롱에 쓸 석유 심부름을 더러 다녔다.금쪽같은 마음으로 가져간 환타도 반갑다

 


소풍가는 날이나 운동회 때 맛볼 수 있었던 환타나 맥콜도 기억에 남아 있지만 내 눈을 오래 붙잡는 것은 오른쪽에 있는 술병들이다. 이 술병들을 어른들은 '대둣병'이라고 하던가.

친정아버지는 막걸리 외에는 거의 마시지 않으셨다. 때문에 집에는 술병이 거의 없었다. 이런 우리 집에 유일하게 늘 걸려 있었던 술병은 호롱불에 쓸 석유를 담아 걸어 두었던 오른쪽 술병들이다. 또 정지(부엌) 한구석에 이 술병 몇 개가 늘 있었다.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늘 보고 자란 것이라 반가운 술병이다.

농사일이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과 함께 석유 심부름을 간적이 몇 번 있다. 읍내까지 가려면 잿배기라는 곳을 지나야만 했는데 엎어지거나 놓치기라도 하면 깨질 것이라 조바심 내며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잿배기에 죽은 처녀를 묻었다는 소문 때문에 처녀귀신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발에 힘을 주고 걸었었다.

양초마저 비싸고 귀해 쓰지 못하던 수많은 날들, 어쩌다 켠 양초가 눈부실 만큼 어두컴컴한 호롱불 아래서 어머니는 한복 바느질을 해서 살림에 보탰고 우린 호롱불 주위에 둥글게 모여 공부를 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전기붙이 들어올 때까지. 호롱불 밝히던 어린 날이 생각나 쉽게 눈이 떼어지지 않던 그리운 소줏병이다.

지금도 시어머니가 찾는 '이쁜이비누'





청계천 테마존(촌)에서-어쩌다 목돈 여윳돈이 생기면 사다가 물에 타주시던 오렌지와 파인애플 쥬스 가루~

 






청계천 테마촌(존)에서:껌진열대가 ?익다


 






청계천 판잣집 테마촌에서:태어나 처음 만난 유니나샴푸와 이쁜이비누다.


 


비교적 바쁘게 사는 편인데 '유니나샴푸'와 '이쁜이비누'(수세미 위)가 가끔 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내 생전 처음 만난 샴푸요, 세숫비누로 그릇을 닦았다는 사실이 신기하기 때문이다. 나 어린 시절 그때, 집집마다 이쁜이비누로 그릇을 닦았다. 지금도 가끔 시어머니는 냄비를 닦으며 "이쁜이비누로 닦으면 번쩍번쩍 잘 닦일 텐데"라며 아쉬워하곤 한다.

'문땅개'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 생각을 하게 한 껌과 껌을 꽂아놓고 팔던 진열대도 있었다. 선생님은 종종 '먹다가 벽에 붙여두었던 껌' 이야기를 리얼하게 하시곤 했다. 고1부터 고3까지 담임을 하고, 다른 것에는 눈도 돌리지 말라는 듯 선택의 여지없이 문예부에 못 박아 버리시곤 했던 선생님.

이미 어지간한 것은 걸러낼 수 있고 희석할 수 있는, 그리운 것이 많아지는 40대 중반인데, 나는 한때의 앙금을 왜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촌) 또리 만화방-저멀리 보이는 하드통, 절대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또리 만화방 풍경이다. 이 집에서는 앉아서 만화도 볼 수 있도록 했다. 도시가 배경인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등에서는 만화방의 추억이나 풍경이 심심찮게 나온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꽤나 추억이 많은 장소인가 보다. 하지만 들판이나 냇가, 마을 뒷산 등이 주요 활동지였던 시골태생인 내게 만화방의 추억은 거의 없다.

만화방과 관련된 추억은 없지만 만화와 관련된 추억은 있다. 내가 자란 시골 만화방에는 이처럼 하드통도 없었고 난로나 번듯한 책상과 의자가 없었다. 만화 또한 이처럼 책장에 꽂히기보다는 기다란 고무줄이 매여진 널따란 판에 진열되어 있었다. 앉아서 시간을 때우며 보기보다는 빌려다 집에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돈을 쉽게 만질 수 없던 우리는 그래도 돈을 받을 수 있는 명절에나 읍내 만화방에 갔다. 명절 점심쯤, 읍내로 나가는 2차선 신작로에는 만화를 빌리러 가거나 학교 앞 문방구에서 봐뒀던 장난감이나 인형을 사러 가는 동네아이들로 넘쳐 났다. 지금도 명절이면 종종 그리워지는 명절날의 신작로 풍경이다.

60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청계천, 그 안에 있는 판잣집 테마존은 1950~60년대 청계천변을 따라 두 서너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의 방들이 수상가옥처럼 다닥다닥 길게 늘어선 판자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그 당시의 생활 모습과 물품, 그리고 문화를 알 수 있도록 전시된 공간입니다. 새마을 노래에 맞춰서 집 앞을 쓸던 아련한 우리 내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곳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이 과거의 향수를 머금고 여러분 앞에 모습을 보입니다.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촌)에서
지난 세월, 추억속의 물건들이 모두 있는 곳은 아니지만 뜻밖에 만난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했다. 추억할 것도 많고 그리운 것도 많음은 행복한 것 같다. 테마존에서 옛 물건들을 만나는 동안 추억과 그리움이 물씬 피어오르고, 그러는 사이 며칠동안 속끓였던 것들이 사실 별것 아니었노라 위로해주니 말이다.

▲팔각형 유엔성냥, 환타,맥콜,이쁜이 비누, 미원이 대롱대롱 걸려있는 '광명상회' ▲키득키득 웃으며, 때론 주인공의 현실이 정말인 듯싶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만화를 보던 '또리 만화방' ▲과거 청계천 판잣집 내부를 그대로 재현한 연탄가게 살림집 '청계연탄' ▲교복도 입고 사진도 찍으며 과거의 시간을 되돌리는 추억여행을 할 수 있는 옛날교복 ▲'술래잡기 ~♪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지 말타기~♬♪'란 노래가 들려오는 듯한, 추억의 놀이를 재현한 닥종이 인형전으로 구성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고향친구들과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청계천 두물다리 지나 청계천변에 있지만 교통이 약간 불편하다. 서울시설관리공단(02-397-5904)에 문의하거나 청계천 문화관을 검색하면 가는 방법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