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가는 열차타고 아리아리 추억속으로…
12일 이른 아침.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강원도 정선으로 향했다.
객실 안에서 누군가 말했다. '바다 건너 베이징도 비행기로 2시간이면 닿는데, 4시간이면 너무 멀다'고. 이미 모든 것을 속도로만 따지는 세상이 되어 버린 걸까.
하지만 서울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홀가분해 보이는 승객들도 많았다. 이날은 정선 5일장 관광열차인 '아리아리 열차'가 첫 운행하는 날이다.
◈ "고생해서 캔 것은 조금 비싸요~"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 매월 끝자리 2일과 7일마다 서는 정선 5일장은 1966년 2월 17일 처음 개장했다.
전통시장은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비됐다. 황토 흙에 좌판을 깐 투박한 시골장터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정선 5일장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취나물과 곤드레나물과 같은 각종 산나물과 약초, 그리고 감자와 황기, 더덕, 칡과 같은 농산물이다. 이것들이 본격적으로 장터에 쏟아져 나오는 시기는 5월부터란다.
정선으로 시집온 지 24년이 됐다는 시장상인 김복희(52)씨는 "정선의 나물과 약초가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이곳의 물과 흙이 좋기 때문"이라며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다.
가격은 파는 이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산에서 더덕과 칡을 직접 캐서 내다 파는 한 할머니는 "손쉽게 캐낸 것은 싸게 팔고, 고생해서 캔 것은 조금 비싸게 판다"고 설명했다.
무릇 노동의 대가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 '아래'로 향하는 자유로움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정선의 대표적인 레포츠 여행으로 자리 잡은 '레일바이크(Rail Bike)'의 출발점인 구절리역이다.
해발 약 600미터 지점. 여름에도 밤에는 서늘해 모기가 없단다.
아우라지역까지 이어진 약 7.2km 구간의 한적한 기찻길을 따라 직접 페달을 밟으며 계곡물을 건너고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산촌 농가 옆을 지나며 사람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이름 모를 산새 두 마리가 예쁘게 인사를 하고 날아간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계곡물처럼 자연스러운 사물이 또 있을까. 마음씨 좋은 동료와 함께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50분간 맛 본 자유로움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도록 돼 있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한 덕이리라. 여름 성수기에는 레일바이크를 밤 9시까지 탈 수도 있단다.
한밤중에 은은한 조명이 깔린 철길 위를 연인이 함께 달리면 어떨까하는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 정선아리랑을 지키는 사람들
정선은 '아리랑의 고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모든 아리랑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선아리랑은 1500여수에 이르는 가사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이날 오후 정선읍 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려진 정선아리랑 창극인 '아리랑고개 너머'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뚜렷한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이념과 물질에 대한 탐욕도 결국 피를 나눈 민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 구성진 노랫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니잘났니 내잘났니 싸우지덜 말아라 하늘 아래 땅 아래 사람들의 조화일세~"
특히 인상적인 것은 출연배우 18명의 거의 대부분이 정선 주민들이라는 사실이다. 또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60~70대 노인이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정선아리랑을 지켜내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에 감동한 탓이리라.
아름다운 산과 계곡, 넉넉한 시골장터, 그리고 정선아리랑. 물론 이 모든 것을 단 하루에 모두 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하루의 짬도 아예 없다면 우리네 삶이 너무 강퍅하지 않은가. 코레일관광개발(www.korailtravel.com)은 하루에 정선을 둘러볼 수 있는 3만~5만 원대의 다양한 '정선 5일장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문의 ㅣ 1544-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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