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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식 한나라당 의원 이런저런 공·사석에선 여러 차례 만났지만 그와의 공식적인 인터뷰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 2006년 10월 서울산업대 총장 재직 당시 인터뷰를 했으니 3년10개월 만에 인터뷰를 위해 다시 대면한 셈이다. 7·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로 당선된 감흥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그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예전에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만났을 때와 비교하니 목소리도 반 옥타브 정도는 높아진 듯했다. ‘고향의 지역주민을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보고 싶다’는 바람이 이뤄져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나기 때문일까. 윤진식(64) 한나라당 의원. 충북 충주지역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해 국회의원 배지를 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햇병아리 의원이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거쳐 현 정부 들어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정책 브레인 역할을 했던 그의 전력은 단순한 ‘초선 의원’ 몇 배의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난 윤 의원은 ‘정치 초년병’으로 민생 현장에서 느낀 감회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 “탁상행정 비판이 이해되더라” 행정고시 12회로 지난 1972년 공직에 첫발을 디딘 윤 의원은 현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근무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2003년 산업자원부 장관에서 물러날 때까지 30년 이상을 경제관료로 지냈다. 경제관료 출신이 이번 선거 운동 과정에서 경험한 민생 현장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저는 거의 평생을 공직에 있으면서 주로 경제정책 업무를 다뤘습니다. 정책 하나하나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만큼 ‘현장’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나름대로 발로 뛰면서 정책개발을 해 왔다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번 선거 기간 중 민생 현장을 구석구석 누비다 보니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걸 절감하게 되더군요. ‘예전에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이런 실태를 알았어야 하는데…’, ‘△△정책을 실행하기에 앞서 이런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 봤어야 하는데…’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요. 공직에서 정책추진자로서 생각하고 있던 것과 민생 현장에서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것과의 괴리가 너무 크더군요.” 윤 의원은 “정부에 있을 때는 정부정책에 대해 언론에서 ‘탁상행정’ 운운하며 비판하면 너무 심한 것 같아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는데 막상 민생 현장 경험을 하고 보니 그 같은 비판이 이해가 가더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일부 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지역 현안과 관련해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을 뛰다 보니 ‘일리가 있는 요구였구나’라는 걸 느끼기도 한다”고 전했다. “‘역지사지’라고 말해야 할까요. 정책을 펼치면서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민생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일을 추진한다면 몇 배의 효과가 있겠구나 하는 걸 매일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책의 취지가 좋더라도 국민들과 괴리된다면 그 정책 효과는 기대할 수 없잖아요. 국민과 민생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수렴해 정부에 전달하고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게 국회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관료 출신 신참 의원이 민생 현장에서 보고 느낀 ‘충격’이 작지 않은 듯했다. # “4대강 사업과 관련한 환경 파괴 우려 등은 수렴해야” 지난 7·28재·보선 기간 동안 핵심 쟁점 중 하나가 ‘4대강 사업’이었다. 그가 현장에서 느낀 지역주민들의 정서는 어땠는지 물어봤다. “4대강 사업에 대해 그동안 반대했던 쪽에서도 최근 다소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충북만 보더라도 야당인 이시종 도지사가 큰 틀에서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고요. 충주시민들은 4대강 사업에 대해 특별히 저항감이랄까 그런 건 없고 이 사업이 지역에 보탬이 된다고 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환경이나 생태계 파괴 우려 등을 어떻게 불식시켜 가느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4대강 사업이 너무 급하게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어차피 공정이 상당히 진척된 상황인 만큼 이를 우려하는 측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수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대강 사업이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한 사업인 만큼 개선해야 할 점을 찾아 보완하고, 반대하는 분들의 걱정을 적극 해소해 주는 차원에서 정부가 보다 신경을 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야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4대강 사업 속도 조절론과 관련, 그는 “하천공사나 항만공사, 바닷물공사 등은 공기를 압축해서 당겨 진행해야 효과적”이라며 “환경 등에 대한 우려는 수렴해 보완하되 공정상의 기술적인 측면은 불가피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플러스 알파’ 문제와 관련해서는 “충주지역에선 ‘충청권이 많이 받으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정도지, 별 이슈가 되지 못한다”며 “이 문제는 국회에서 결론을 내리는 대로 추진하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의 친서민정책 기조는 방향 잘 잡은 것”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1월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은 윤 의원은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상대적으로 빨리 극복해 내는 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계는 그를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귀담아듣고, 기업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뛴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 최근 정부정책의 화두로 떠오른 ‘친서민’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논란을 빚고 있는 친서민정책과 ‘대기업 때리기’식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에 대해 이명박 정부 전반기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그가 만약 부정적인 코멘트를 한다면 ‘기삿거리’가 되겠다고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저는 현 시점에서 정부가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각종 경제지표만 보면 경제위기는 완전히 극복한 것 같고 대기업들은 사상 최고 실적을 구가하고 있지만 지역에서 확인한 민생 현장은 영 딴판이에요.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영세상인과 실업자, 농민,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관심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한국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거둔 결실을 서로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한쪽에선 흥청대고, 다른 한쪽에선 고통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경제나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이런 걸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대·중소기업 상생과 관련해서도 그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납품단가 문제 같은 것을 법률로 규정하고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면서 민간기업 간 거래에 국가가 나서서 강제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가장 필요한 건 ‘협력업체가 잘돼야 우리도 발전한다’는 대기업의 인식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세요. 정부가 나서서 강요하지 않더라도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윈-윈(Win-Win)하는 상생협력이 체질화돼 있습니다. 협력업체의 불만이 늘고 중소기업이 계속 어려워지면 대기업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나 법률로 강제하기보단 ‘협력업체와 더불어 성장하겠다’는 대기업들의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 “부동산 투기는 경제정책 만병의 근원… DTI 완화 신중해야” 경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화제를 부동산으로 돌렸다. 극도로 위축된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가 고민 중인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등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부동산경기 침체는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고 3~4년 전부터 이미 진행이 됐다고 봐야 합니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앞서 건설업체들이 막바지 밀어내기를 했고,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으로 자금 지원을 해 줬거든요. 시장 플레이어들이 비이성적인 투자를 했던 셈이죠. 그 당시 어마어마하게 일을 벌여 놓았고 그게 지금 와서 이렇게 악성 미분양이 된 겁니다. 단순히 DTI 규제를 풀고 안 풀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윤 의원은 “다만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조차 안 되는 극도로 위축된 시장 상황은 어떻게든 정상화해야 한다”며 “정부가 조만간 적절한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부동산시장 정상화 대책은 최소한의 조치에 그쳐야 하며 시중의 부동자금이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도록 자극해선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경제관료로서의 경험을 통해 보면 부동산 투기가 너무 과열된다거나 할 때는 모든 경제정책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런 상황에선 그 어떤 경제정책도 약발이 먹히지 않아요. 제가 볼 때 부동산 투기는 경제정책 만병의 근원인 것 같습니다. 부동산시장은 다소 침체가 되더라도 안정적인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정책기조 속에서 미분양 사태 해결과 부동산 거래 정상화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일벌레 대통령…“어설프게 일해서는 청와대서 버틸 수가 없다” 인터뷰 도중 지난 2006년 10월 윤 의원이 서울산업대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했던 인터뷰가 화제에 올랐다. 그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주저 없이 ‘일’이라고 답했다. 배석했던 산업대 홍보실장이 “대학 내에선 총장님을 ‘워크홀릭(workholic·일중독 환자)’이라고 부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가 청와대에서 보좌했던 이 대통령도 타고난 일벌레로 소문이 난 터라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이 궁금해 슬쩍 물어봤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취미가 일’이라는 윤 의원조차도 감당하기에 무척 벅찼던 모양이다. “저는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조세금융비서관, 김대중 정부 때 재정부 차관, 노무현 정부 때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고, 현 정부 들어 다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했으니 역대 네 분의 대통령을 비교적 가까이에서 보좌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로 따지면 이 대통령이 가장 혹독했던 것 같습니다. 이 대통령은 중요 현안이 생기면 의사 결정을 위해 회의를 소집하는데 한번 회의가 시작되면 3~4시간은 기본이에요. 대통령 스스로도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경제 현장의 세세한 부분까지 워낙 잘 알고 계시다 보니 회의에서 대통령께 한번 보고를 드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좀 쉬라’고 해도 쉴 수가 없어요. 어설프게 준비했다가 정곡을 찌르는 대통령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 ‘한 방’에 나가떨어지거든요. 장차관의 답변이 미덥지 못하면 담당 실무자를 회의에 직접 불러 부연 설명을 시키기도 하고요. 이런 회의가 몇 차례 계속됩니다. 최종 판단과 결정은 대통령께서 내리지만 지독할 만큼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는 셈이죠. 회의를 몇 번 하고 나면 참석자들 대부분이 녹초가 됩니다.” 그는 “어떤 사안에 대해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고 결정을 얻어 내려면 그분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준비를 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하니까 관료들이 손을 놓고 청와대만 바라본다는 말이 있다”고 슬쩍 운을 띄워 봤다. 그러자 윤 의원은 “이런 회의에 부치는 안건은 중차대한 일로 한정된다”며 “세세한 일까지 대통령이 모두 챙길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상회의 준비를 예로 들었다. “외국 정상과의 회담을 위해 해외 출장길에 오를 경우 사전에 마라톤회의가 3~4차례 반드시 열립니다. 여기에서는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안건은 기본이고 상대방 정상의 취미, 관심사, 제시할 화젯거리 등까지 모두 쏟아 놓고 일종의 ‘도상훈련’이 진행돼요. 그냥 외국 정상과 악수하고 밥 먹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최근 자원외교 등 이런저런 외교적 성과가 나오는 것은 모두 치밀한 사전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고향 위한 마지막 봉사… 모든 걸 쏟겠다” 결과적으로는 잘됐지만 윤 의원이 청와대 정책실장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 지난 7·28재·보선에 출마한 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한 위험 부담이 있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선 “대통령의 강권에 떠밀려 출마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동안 저는 이것저것 다 해 봤어요. 장관도 해 봤고 청와대 일도 해 봤고 공직을 떠나 대학 총장도 했고 민간회사(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도 경험했습니다. 이젠 나이도 어느 정도 됐는데 내가 가진 역량과 인적 네트워크를 내 고향을 위해 한번 쏟아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아직 건강하고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을 때 충주시민들과 내가 태어난 고향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자는 저의 의지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윤 의원은 지역 내에 30대 그룹 계열사 3개를 유치하고 충주시 인구를 20만명에서 3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실현 가능성을 묻자 그는 “이미 1개 기업은 유치를 확정했고 다른 공약도 구체적인 복안이 다 있다”며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 의원은 지난 2004년 서울산업대 총장 취임 공약으로 “임기 동안 외부로부터 1000억원의 재원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일부 교수들의 비웃음을 딛고 약속했던 액수의 배인 2000여억원을 유치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털어 내기 위해선 여와 야가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고 타협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치 초년병으로서 앞으로 열심히 배워야겠지요.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면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한번 지켜봐 주세요.”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듯했다. 인터뷰 = 김병직 부국장겸 경제산업부장 bjkim@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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