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34) '섹시 여친' 의심하는 속좁은 남자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19. 20:03

(34) '섹시 여친' 의심하는 속좁은 남자들

 

"언니,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아끼는 후배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알콩달콩 사랑을 잘 키워나가고 있는가 싶었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이별의 이유라는 것이 또 기가 막혔다. 어느 순간부터 '지금 술 마시냐, 혹시 남자랑 같이 있냐' 하며 의심하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열받아서 못 만나겠다"며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어느 술자리에선가 그녀가 '참 섹시하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몸매가 쭉쭉빵빵하거나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술을 마시면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눈빛이 촉촉해지는 게 '내가 남자라면 오늘 쟤랑 한번 자보고 싶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눈이 크고 잘 웃는 것이나 표정이 풍부하고 제스처가 큰 것 역시 섹시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아는 남자들 중에도 그녀가 술 취할 때까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남자들이 몇몇 있었다. 그러니까 모임과 술자리가 잦은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의심을 품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하지만 차라리 섹시한 그녀가 즐길 거 다 즐기고, 놀 거 다 놀면 억울하진 않을 것 같다. 정작 그녀는 "사귀는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자요?" "감정 없이 몸만 섞는 것처럼 허무하고 슬픈 게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참으로 반듯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남자들이 어찌 여자들의 '색기'를 눈치 못 채랴. 처음에는 그 은근한 성적 끌림이 여자를 사랑하게 하는 매력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 말고 다른 남자에게도 섹시해 보이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나 역시 몸이 잘 맞았던 남자와는 이별이 지저분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너랑 정말 속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 너와 하는 게 너무 좋아" 했던 남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 남자한테도 이렇게 해줬니?" "너 어딘가 좀 달라졌다. 다른 남자한테 배워왔냐?" 하며 빈정대기 시작했다. 특히 남자들과 술자리를 하거나 전화를 못 받은 날이면 밤새 시달려야 했다. '그런 게 아니다, 당신 말고는 다른 남자가 없다'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는 나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내가 다른 남자랑 같이 자는 것을 들키고 나면 '그럼 그렇지' 하며 승리의 미소를 지을 것만 같았다. '에라이, 순진해터진 처녀를 만나서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며 나는 그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섹시해 보인다는 이유로 실연당한 여자 후배에게도 다른 방법이 없다. 그녀가 섹시하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 더 많이 사랑받는 것. 물론 그런 '좋은' 남자를 대한민국에서 찾을 수 있는가는 의심스럽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