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싶은 여자-연애하고 싶은여자
"결혼하자."
그가 말했을 때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빠졌다. 결혼 적령기를 서서히 지나고 있는 나로서,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섹시한 상황이다. 나를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어하고, 영원히 자기 것으로 두고 싶어하는 남자를 볼 때 은근히 흥분되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들의 프러포즈는 항상 이중적이다. 남자들은 여자를 볼 때마다 머릿속으로 분류한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연애하고 싶은 여자. 매력적인 걸로 치면 연애하고 싶은 여자가 훨씬 매력적이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섹시하고 밀고 당기기도 잘하고 남들에게 과시하기에도 좋다. 그러나 결혼 문제에서는 또 달라진다. 그들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란, 부모한테 잘하고, 아무리 불합리한 상황이라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고 견디고, 자신이 바람피우고 돌아와도 가정을 깨지 않고, 청소 빨래 요리 살림하기를 타고나기부터 좋아하고,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지 않고, 친구나 모임도 거의 없고, 자기보다 덜 매력적이어서 평생 바람 날 일 없는 여자다.
나는 오랫동안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비껴나 있었다.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개인적이고, 모임도 많고, 술도 좋아하는 나를 보고 남자들은 한 남자의 아내로서 평범한 삶에 안주하지 못할 여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혼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랑 "넌 연애하기 좋은 여자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랑 어느 때 기분이 더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왠지 보호받고 영원한 사랑을 약조받는 느낌이라 편안함을 느꼈고, 후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아직 여자로서 섹시하고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왜 그가 결혼하자고 말했는지 곰곰이 따져보았다. 나는 제 밥벌이를 하는 직장 여성이므로 그를 만나면서 데이트 비용의 반을 부담했고, 주말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대신 집에서 낮잠을 즐기며 데이트했고, 일주일에 2,3일은 찌개에 고기반찬을 해서 손수 밥을 차려주었다. 남자들이 많은 모임들도 정리했고, 술도 줄였다. 대신 그는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을 곱게 한 내 얼굴보다는 맨얼굴에 무릎이 나간 추리닝 차림에 익숙해졌다. 아, 그에게 나는 결혼하기 좋은 여자였던 것이다!
이제 그만 불안정한 연애사를 정리하고 '이별 없는 세상'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아니다, 문제는 여전히 남자들의 심리다. 역시 남자에게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연애하고 싶은 여자가 따로인지라,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슬슬 연애가 하고 싶어지는 거다. 매력적이고 예쁘고 몸매 좋은, '연애하기 좋은 여자'와 말이다.
나는 과연 어떤 여자가 되고 싶은 걸까. 안전하지만 호시탐탐 연애를 꿈꾸는 남자를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삶, 혹은 불안하지만 여전히 성적 대상으로 사랑받으며 살 수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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