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같이 잔 남자와 다시 만나는 일
얼마 전 5년 전에 한 번 잤던 남자를 술자리에서 만났다. 그는 그 동안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고 한다. 5년 전보다 약간 살이 찐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다. 맥주와 소주를 섞어서 급히 마시면서 우리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성 높여 서로를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실실 쪼개면서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었다. 술에 취해서 그가 말했다. "너 보고 싶어서 왔어. 너 있다는 소리 듣고."
그는 이제 한 여자하고만 섹스하는 사이가 된 만큼 나름 연애 감정을 품었던 옛 여자를 마주치는 일이란 그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어쩌면 옛 추억에 마음 설렐 수도 있고, 잘하면 또 한 번 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여자들도 마찬가지 아냐? 한 번 잤으면 또 잘 수 있는 거잖아. 포장은 어떻게 하든 다 자고 싶어서 만나는 거겠지."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자 심리는 좀 다르다.
사실 한 번 잤던 남자를 또다시 만날 수 있는 건, 다시는 그와 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섹스 이후의 팽팽한 긴장감, 연애를 할 만큼의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하룻밤 얽혔는데 뭔가 수습과 정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매우 불편하다. 이 불편함은 누군가에 대한 설렘에서 오는 달콤한 긴장감이 아닌 도망치고 싶은 불편함이기 때문에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한동안 연락을 피하거나 억지로라도 관심을 끊어버린다.
어쩌면 같이 잔 순간 연애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그냥 흐지부지 '원나잇'처럼 되어가면서 그 남자에게 정이 떨어져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르면 우리가 함께 잔 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잘 안 가는 시점이 오고, 그 순간부터 여자는 남자를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의 하룻밤이 희미하게 떠오를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어떤 체위를 좋아하고 어떤 신음 소리를 내었는지, 사정할 때 몸을 부르르 떨었던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애무하는 데 익숙하진 않지만 키스는 부드럽게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자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미 욕망이나 육체관계를 뛰어넘은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들은 오래 전의 섹스에 생각보다 집착하지 않는다.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원나잇으로 끝나버린 관계는 여자들에게 오래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다. 따라서 한 번 잤다고 또 잘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으시기를. 여자들의 자존심과 이성은 욕망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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