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달려가서 물었다. 어떻디, 좋았니,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워? 그녀는 심각하게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조용히 읊조렸다. "차라리...... 빨리 자버렸음 좋겠어!"
내 친구가 이렇게 '까진' 여자였나. 순진하고 어린 마음에 우리는 그녀에게 실망감까지 느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됐다.
집 앞 벤치에서 첫 키스를 하고 나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안고 밤을 꼬박 새웠다. 내 입술에 밤새 그 남자의 입술이 느껴졌고 그 긴 첫 키스의 순간이 자꾸만 떠올라서 나는 계속 소스라쳤다. 우리가 어떻게 키스를 하게 됐지? 그가 약간 고개를 숙였던가? 그의 감은 눈이 다가오는 걸 내가 지켜봤던가? 그의 손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안았던가, 아니면 허리 근처를 스쳤던가, 그의 혀가 내 혀를 어떻게 감쌌던가, 내 혀는 또 어떻게 그의 혀에 예민하게 반응했던가...... 미치도록 황홀한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 생각이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곁에 조금만 바짝 다가서도 나는 소스라치며 그 키스를 떠올렸고 그 키스가 떠오를 때마다 조바심이 나고 애가 타서 죽을 것 같았다. 강의실 저 멀리서 그가 보일 때나 여러 사람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나 손을 잡아올 때나 살갗이 스칠 때나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나눌 때나...... 그 키스, 그의 조심스러웠던 손길 뒤에 존재할 그 무언가 때문에 나는 불안하고 조급하고 오금이 저렸다. 드디어 나도 외쳤다! "차라리...... 빨리 자버렸음 좋겠어!"
첫 키스 이후 첫 섹스까지 딱 열흘이 걸렸다. 전에도 말했듯이 별로 아름답지 않은 밤이었다. 남자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그날 선물받은 귀걸이와 잃어버린 팬티 자락을 찾아 주섬주섬 여관방을 헤매다 지쳐 쭈그리고 앉아 해 뜨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입을 헤 벌리고 자는 그 남자는 입술만 봐도 키스 생각에 심장이 쿵 떨어지던 그 남자가 더 이상 아니었다.
때로는 성적 긴장이 가장 불편하다. 그건 사랑이 주는 설렘과는 다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옷깃만 스쳐도 소스라치고 쓸데없는 상상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자꾸 화장실이 가고 싶기도 하다.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려면 차라리 빨리 자버리는 게 낫다. 긴장이 풀리고 나면 마법처럼 그 사람이 다시 보일 수 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거나. 사랑은 그때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