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예상대로 넘어오는 남자 재미 없다.
우리는 보통 쉽게 꼬실 수 있거나 조금만 노력해도 하룻밤 잘 수 있는 여자나 남자를 일컬어 '쉬운 여자' '쉬운 남자'라고 부른다. 이 말에는 상당히 부정적이고 싸구려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 담겨 있기 때문에 (지난주 칼럼에서 밝혔듯이) 술 취하면 헤퍼지는 나 역시 '쉬운 여자'로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실제로 '쉬운 여자'들은 항상 정에 굶주려 있기 때문에 작은 친절이나 관심에도 금세 마음을 열고 그런 만큼 쉽게 버림받으며 그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더 정에 굶주리고…… 그러다 보니 정말 쉽고 헤픈 여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아주 작은 유혹에도 와르르 마음이 무너져서 몸을 금세 주어버리거나, 따뜻한 체온에 위로받고 싶어서 살 부대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쉬운 여자'의 주홍글씨를 오랫동안 박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쉬운 남자'는 좀 다르다. 똑같이 아무와 쉽게 잔다고 해도, 우리는 여자와 잔 뒤 도망가는 남자는 '먹튀남'(먹고 튀는 남자)이라고 부르고, 이 여자 저 여자 안 가리고 마구 밝히고 다니는 남자를 '나쁜 남자'라고 부르지 '쉬운 남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자의 사소한 작업이나 스킨십, 친절에 홀라당 넘어와버리는 '쉬운 남자'는 오히려 순진하고 남녀관계에 서툰 '착한' 남자일 가능성이 크다.
꽃다운 이십대, 남자가 나의 유혹에 넘어오는 걸 보기를 즐길 때가 있었다. 관심도 없는 남자들에게 다정하게 굴며 그가 나에게 대시하는 순간까지 친절과 매력을 유지해 오다가, 그 남자가 고백하는 순간 '리스트'에 추가하고는 바로 그를 차단했다. 물론 자만하고 이기적이고 철없던 어린 시절에 저지르던 행동이었다. 몇 번 그런 상황을 반복하다 보니 그들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나의 서투른 '작업'들에 넘어오는 남자들은 정말 착하고 순진하고 좋은 남자들이었다!
지난주 술에 취해 손을 맞잡은 그 남자도 마찬가지다. 착하고 순진한 남자들만의 패턴에 따라 딱 예상했던 시간에 딱 맞춰 아주 오랫동안 고심한 듯한 다정다감한 문자를 보내오더니만 얼굴 한 번 보자, 술 한잔 하자 수시로 연락을 해온다. 그는 마주 잡은 손의 체온과 술김에 저절로 몸에 배어 나왔던 '교태'에 마음이 흔들려버린 것이다. 그 사소한 것들에 그렇게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그는 얼마나 쉬운 남자인가, 그리고 또 얼마나 착하고 순진한 남자인가…. 왠지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와 연애를 하고 싶진 않다.
'쉬운 남자'와 '쉬운 여자'는 결국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넘어오는 순간, 그러니까 그녀가 당신과 잠을 잔다거나 그 남자가 마음을 여는 순간, 흥미가 뚝 떨어져버린다는 것. 저런, 여전히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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