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인왕산 자락 옥인동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0:10

2001년 봄 답사 후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먼발치로는 남산과 시내의 건물들이 보이고, 동네의 집들은 어느 하나 정해진 양식이 없이 다양한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6월의 아침에 보는 이 동네의 풍경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어떤 느낌을 담고 있었다. 건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주입식이었는지, 아니면 서구적인 교육의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건축 그리고 도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였다.’ 옥인동 언덕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 서울과 동네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옥인동 지도 보기

인왕산 아래 자리잡은 옥인동의 전경.

 

 

인왕산과 하나 된 동네

아름다운 동네 옥인동은 옥류동과 인왕동을 합쳐 만든 동네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왕산은 그곳에 자리했던 인왕사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유래하고, 옥류동은 인왕산 아래 물이 흐르는 골짜기 부근의 동네를 말한다. 조금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옥인동이란 이름 속에서 옥류동천 맑은 물에 인왕산 깊고 푸른 계곡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지금도 물길은 인왕산에 바로 붙은 옥인아파트 옆을 지나 아래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내 숨어 버려 사람과 차들이 오가는 복개된 도로 밑을 지나, 곡선을 이루는 통인시장 일부를 거쳐 자하문길을 향해 묵묵히 보이지 않는 흐름을 계속하고 있다.

 

1912년 지적원도(이상구, 양승우 교수 제작)에 현재의 지적과 한옥들을 겹쳐 만든 옥인동 일대의 지도.

 

 

인왕산 자락은 마치 엄지 아래 두툼한 손바닥처럼 여유롭다. 성곽 안쪽의 완만하고 넓은 지형이 그러하고, 골짜기마다 다른 장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그러하다. 허경진 교수가 쓴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이란 책을 보면, 인왕산 자락을 터전으로 문화를 꽃피운 중인들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그중에 재미있고 실감 나는 이야기가 있다. ‘송석원시사’라는 모임이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시문학동인, 그러니까 서로 시를 짓고 나누며 즐기는 중인들의 동아리가 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당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에게 그들의 모임 장소인 ‘송석원’을 글씨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여기까지야 보통 이야기인데 흥미로운 것은 그 장소이다. 송석원이 있던 자리는 지금의 옥인동 한가운데(47번지 일대)이고, 추사의 집은 경복궁 바로 서쪽, 통의동 백송이 있는 큰 집이었다.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다. 송석원시사의 리더인 천수경의 환갑을 기념하는 중요한 행사였으므로 일을 준비하느라 사람과 서신이 바삐 오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추사는 의뢰받은 장소와 사람들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 송석원을 한 번쯤 직접 들러보지 않았을까? 통의동 집을 나온 추사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지금보다 폭이 좁고 개천이 흐르는 자하문길을 건너, 인왕산을 바라보며 옥류동천을 거슬러 올라 송석원을 향해 녹음이 우거진 계곡 속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옥인동 옛길들은 이러한 상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 1 한옥골목을 이루면서도 군데군데 일식가옥들이 함께 들어서 있다.
  • 2 옥인길 입구에 나란히 있는 두 채의 2층 한옥. 2001년 봄의 모습.
  • 3 축대와 오래된 나무가 있는 여유로운 풍경.

 

 

동네 한가운데 있는 통인시장

답사는 옥인동 입구에 있는 통인시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2001년 답사를 할 때는 지금과 같은 현대화된 아케이드는 없었다. 자하문길에서 다른 건물보다 우뚝 선 효자아파트 옆으로, 색색의 천막이 드리워져 깊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본 시장의 모습은 마치 시골 장터처럼 거칠면서도 시장다운 맛이 났다. 90여 개의 가게들이 늘어선 사이사이에는 여러 골목들이 이어져. 어떤 길은 시장과 십자로를 만들고, 어떤 길은 몇 걸음만 들어서도 어느새 시끄러운 시장통 소리가 사라져 조용한 한옥골목을 이루기도 한다.

 

통인시장 가운데에서 찍은 사진. 중간마다 동네로 통하는 골목길들을 만날 수 있다.

 

 

통인시장과 통하는 한옥골목길을 실측하여 그린 그림. 다양한 길들이 시장으로 통하고 있다.

 

 

시장 아주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한때 가게들을 한 건물에 모은 공설시장을 만들고자 효자아파트를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늘 다니는 길에서 물건을 샀고, 그 때문에 가게들도 공설시장보다는 길 쪽에 다시 자리를 잡아 지금과 같이 길쭉한 모양의 시장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 같이 입구와 출구가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도시 속 시장은 많은 길들이 이어져,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구멍 많은 스펀지처럼 사람을 모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일부러 장을 보러 가기도 하지만 귀가하는 중이나, 이웃에 놀러 가는 길에 들러, 순대나 떡볶이라도 사 들고 가는 우리네 풍경은 이러한 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시장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 1 2001년에 본 효자아파트와 왼쪽 아래 사이에 자리한 통인시장의 모습.
  • 2 가지각색의 천막으로 덮인 당시 시장의 풍경.
  • 3 시장으로 이어지는 조용한 한옥골목의 모습.

 

 

윤덕영의 별장이 된 송석원

조선후기 중인들의 문화적 아지트였던 송석원은 시간이 지나 권문세도가들에게 쓰이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윤덕영의 커다란 별장영역에 포함되고 만다. 윤덕영은 순종 황제의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큰아버지로, 친일과 매국으로 큰 부귀영화를 누린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별장에는 커다란 한옥들 외에도, ‘한양의 아방궁’이라 부르는 양식건물인 ‘벽수산장’이 있었다.  윤덕영은 프랑스 공사로 갔던 민영찬이 사두었던 건물의 설계도를, 나라가 망한 후 일본국왕에게서 받은 은사금으로 사들여 3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완성했다.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옥인동 위쪽에 자리한 양풍의 건물은 해방 후 화재로 소실될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순정효황후가와 주변 골목을 위에서 그린 그림.집에 이르는 잘 만든 화강석 계단과 난간이 있고, 그 주변으로 녹음이 짙다.

 

 

지금도 옥인동 일대에는 윤덕영 별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순정효황후의 친가, 즉 황후가 어려서 살던 집이 그것이다. 보통 왕이나 왕비가 되면 원래 살던 집을 ‘잠저’라 하여, 나중에 더 크게 격식을 갖추어 짓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당시 큰아버지로 권력을 누리던 윤덕영 소유의 이 집도 황후가 된 뒤에 크게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골목을 들어서면 나무그늘 아래로 잘 조각된 돌계단과 난간이 보이고, 위로 2층 높이의 한옥이 우뚝 서 있다. 지붕은 군데군데 천막을 쳐서 낡아 보이지만, 건축물의 양식이나 외관은 잘 갖추어져 있다. 대문이 열린 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보니 마당으로 한가득 살림살이가 차있다. 모두 12가구가 ㅁ자 모양의 큰 집을 나누어 살고 있었다. 한 편, 서울시는 남산 한옥마을에 이 집을 실측하여 재현하여 놓았다. 안쪽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옥마을에 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1 순정효황후 친가와 주변 골목을 위에서 보고 그린 그림.
  • 2 돌계단을 오르면서 정면에 보이는 2층 높이의 한옥입면.
  • 3 옆으로 돌아가면 보이는 돌계단. 다른 길로 이어진다.

 

 

자연으로 돌아갈 옥인시범아파트

마을버스 9번을 타고 올라간 맨 끝, 인왕산 바로 아래 자리한 옥인아파트는 1971년 시유지에 지어진 시범아파트다. 한 때 360여 세대가 살고 있었지만, 거의 모든 세대가 비워지고, 현재 일부 동은 철거 중에 있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일까? 2001년 답사 때에 느꼈던 어색하고 딱딱한 네모 상자들은 자세히 보니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많았다. 요즘의 아파트나 주상복합 같으면 대단위 토목공사로 건물이 들어설 자리를 만들면서 높은 옹벽을 주변에 치거나, 인접한 동네와는 외떨어진 공간을 만들어 가지만, 옥인아파트에서는 당시의 시공능력이나 예산의 한계가 있어서 일까, 각 동이 위치한 상황에 따라 진입하는 외부계단의 모양이 모두 다르고, 단지 한가운데는 나무가 무성이 자란 커다란 암반이 자리하여, 수십 년의 세월 속에 아파트와 자연 그리고 주위 동네가 깊이 하나로 결합된 느낌이 들었다.

 

 

옥인동 아파트 한가운데 있는 돌산과 나무들.

 

 

  • 1 황량하게 늘어선 옥인아파트 현재의 모습.
  • 2 비워진 아파트 내부에서 밖을 본 모습. 시원하게 자연이 펼쳐져 있다.
  • 3 계단실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두 세대의 평면. 방 배치가 조금씩 다르다.

 

 

아파트에 들어가 보았다. 아파트의 각 세대들은 동마다 자율적인 증축-리노베이션을 하여 그 내부의 방 배치가 제각기 달라 집마다 개성이 느껴졌다. 실측을 해본 두 세대에서도 한쪽은 부엌과 거실을 구분하지 않고 크게 하나로 터서 쓰고, 뒤쪽에는 튀어나온 이중창을 두어 단열과 수납을 보완한 경우(왼쪽)와 화장실과 부엌의 위치를 바꾸어 부엌을 뒤로하고 수납공간을 털어 거실 옆으로 작은 방 하나를 더 늘린 경우(오른쪽)를 볼 수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대 간 칸막이 벽 일부가 요철 모양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버려 아래에서 모으는 ‘더스트 슈트’가 사라지면서 각자 수납공간으로 바꾼 것이 그 이유임을 나중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아파트 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이었다. 길쭉하게 늘어서며 인왕산 깊숙이 들어선 탓에 아파트 바깥은 언제나 자연과 접하는 입지적 장점을 누리고 있었다. 옥인아파트는 앞으로 철거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한편으로 황량하게 비워진 단지 속에 아직도 살고 계신 분들의 안부가 걱정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그리고 근현대를 거치며 인왕산 아래 옥인동에는 여러 시간의 흔적과 삶의 형상들이 쌓여 왔다. 어떤 것은 사람과 문학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었으며, 어떤 것은 망국과 식민지배의 아픔 속에 개인의 부귀영화를 뽐내다 사라졌다. 또 어떤 것은 현대식 주택 보급의 맹신 속에 자연에 아파트를 밀어 넣기도 하였다. 인왕산은 그 커다랗고 여유로운 품 속에 이 모든 것들을 안고 있다. 평범하면서도 그윽하고, 사람 냄새가 나면서도 자연과 가까운 동네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옥인동을 꼭 권하고 싶다.

 

옥인아파트로 가는 길에 있는 한 카페의 내부 모습. 한옥을 고쳐 꾸민 모습이 이채롭다.

 

 

 

조정구
글·사진 조정구 / 건축가
2000년 구가도시건축(http://guga.co.kr/)을 만들어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에 주제를 두고, 도시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진풍경은 10년간 지속해온 답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표작으로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라궁으로 2007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2008년에는 안동군자마을회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실측조사 및 도면 요네다 사치코, 정선미, 김아람, 황주현, 강수연, 강동균, 차종호
그래픽 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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