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27) 어린 애인을 회상하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2. 19. 20:13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27) 어린 애인을 회상하다.

 


친구에게 애인이 생겼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하다, 자그마치 10살 어린 애인이다! 23살,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풋풋한 대학생. 친구는 자신이 철부지 대학 시절로 돌아간 양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앙탈을 부렸다. 도대체 우리가 그 아이랑 무슨 공통점이 있겠냐, 이렇게 나이 많은 아줌마들과 함께 노는 게 재미있겠냐,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결국 그녀의 애인을 소개받고야 말았는데, 아, 청춘이 좋긴 좋더라. 총명해 보이는 동그란 눈망울과 금테 안경의 23살 청년은 여드름 자국마저 채 지워지지 않은 듯했다. 저렇게 순진해 보이는 아이가, 직장생활 8년차에 빡빡한 세상사와 복잡한 연애사에 찌들고 찌든 내 친구를 사랑은커녕 과연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아이의 모습이 왠지 눈에 익숙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과 표정, 저 맑은 눈빛, 하얀 얼굴…… 아, 그는 십여 년 전 늦여름, 잠깐 사귀었던 학교 후배이자 두 번째 연인과 아주 흡사했다!

대학 4학년 때, 그러니까 첫 번째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10개월을 외로움에 치를 떨던 그즈음이었다. 녀석은 말갛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건방진 데다 잡생각 많고 선배들의 말에 꼬치꼬치 말꼬리를 잡는 게 자타공인 '똘끼 충만'이었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 순간, 수업시간, 술자리, 학회실 할 것 없이 내 주위를 알짱거리기 시작하더니만 기어이 졸업 MT까지 쫓아왔다. 밤을 꼴딱 새우고 술도 깰 겸 나선 새벽 산책길에 녀석은 내 손을 그러잡고 "내가 지금 누나한테 프러포즈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어영부영하고 있는 사이에 "누나 사랑해요" 하면서 확 입술을 덮쳐왔다. 우습게도 이 기습키스는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습키스였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며 키워본 기습키스에 대한 환상이 채워졌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녀석과는 그리 오래 사귀지 않았다. "실락원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하면서 내 '그곳'을 보려고 덤비는 어설픔이나 동정남다운 미숙함, "누나가 올라가서 하면 안 돼요" 하는 소심성까지……. 그는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왠지 프로가 된 것 같은 자부심이 가득했던 나에게는 어딘가 모자랐다.

그런데 문득문득 녀석이 떠오른다. 그때 그 아이가 22살이었던가, 23살이었던가. '지금이 손을 잡아도 될 때인가 아닌가' '키스를 해도 되나' 머리 굴리는 게 빤히 보이는 '나이 든' 남자와는 아무래도 차원이 다르다. 사랑한다고 느끼면 곧바로 사랑한다고 소리치고, 키스하고 싶으면 언제든 용감히 입술 들이대고, 난생처음 여자의 몸을 안고는 바르르 희열에 떠는 어린 남자아이. 그런 경험은 그 뒤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아마 그렇게 어린 남자와 다시는 사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애인 앞에서 마냥 웃고 있는 친구가 살짝 부러웠다. 철들지 않은 연애, 때묻지 않은 풋풋한 섹스, 그녀는 마치 오래 전에 잃어버린 청춘을 찾는 느낌이지 않을까, 어쩌면 그래서 저토록 어린 애인과 사랑에 빠진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