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좋아하면서 자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2. 19. 21:22

 

[에로틱칵테일] 좋아하면서 자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나, 그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아!" 얼마 전부터 계속 만나자고 조르던 '베프' J양이 보자마자 폭탄 발언이다. 왠지 불안불안했었다. J양은 좋게 말하면 참 긍정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여자 카사노바다. 오늘은 이 남자의 다정하고 착한 면이 좋아서 이 남자를 사랑하고, 내일은 저 남자의 잘생기고 섹시한 면이 좋아서 저 남자를 사랑하는 식이다. 알아온 10여 년 동안 내내 그랬으니 이제는 그녀가 "이 남자가 너무 좋아" 해도 그러려니 흘려 넘긴다.

그녀가 말하는 '그 오빠'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 오빠를 알게 된 지 8개월, 항상 그녀는 그 오빠를 칭찬해왔다. 어쩜 그렇게 사람이 다정하고 따뜻한지 모르겠어. 내가 밥 먹었는지 항상 물어봐주고 내가 좋다는 음악은 다음날 직접 USB에 담아서 전해주고, 네이트온 같은 데서 대화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그가 다른 사람 욕하는 거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항상 자기 일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고, 일이면 일, 취미면 취미, 자기관리면 자기관리, 뭐 하나 놓치지 않고 잘해나간단 말이야. 정말 좋은 오빠야……

"그럼 그 남자랑 연애를 해! 너도 이제 정착을 좀 해야지!" 듣다 못해 내가 말하면 그녀는 울상을 지으면 말했던 것이다. "그 오빤 나보다 키가 작고 왜소해. 도저히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야."

그랬던 그녀의 감정이 몇 달 사이에 더 발전을 했나 보다. "이 오빠가 네이트온에 있으면 먼저 말을 걸고 싶고, 주말에도 뭐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할 정도야. 종종 단둘이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하고, 함께 만나는 모임이 있을 때면 집에 있는 먹을거리를 가져가서 오빠 먹이고 싶어. 요새 더 말라가서 뭐라도 잘 먹고 있는지 항상 걱정된단 말이야. 이런 감정, 연애 감정 맞지? 내가 그 오빠 좋아하는 거 맞지?"

뭐 엄청나게 사랑하는 건 아닐지라도 J양이 말하는 감정이란 이성적인 호감과 설렘, 그러니까 연애 직전의 감정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성에 대한 감정이 오락가락한 J양이지만, 그래도 저 정도까지 감정이입을 할 정도면 좋은 징조다. "그래, 좋아하는 거 맞아, 그러니까 연애를 하라구!"

"그런데…… 왜 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 엄머. 이건 의외의 발언!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지고 싶다. 아무리 섹시하고 잘생긴 남자가 눈앞에 있더라도 정작 같이 자고 싶은 건 내가 사랑하는 연인이다. 이건 '섹스'라는 게 단순히 성욕 해결의 문제는 아니며, '연애'라는 것이 정신적인 교감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그의 얼굴을 만지고 싶고 손을 잡고 싶고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 그런 욕망과 욕구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J양과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우선 자보고 나서 결정해"라고 하기엔 '그 오빠'가 너무 좋은 남자이며, 그렇다고 "연애감정은 아닌 듯하니 거리를 둬" 하기엔 J양의 감정이 너무 애달팠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둬봐." 나는 이렇게 충고하고 J양과 헤어졌다. 두어 달 뒤면 알게 될 것이다. 자고 싶을 만큼 그 오빠의 성적 매력이 강해질지, J양의 감정이 시큰둥해질지, 아니면 섹스 없는 플라토닉 러브가 정말 가능할지. 그 결말이 나 역시도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