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는구나(無等山高松下在 赤壁江深沙上流)'. 김삿갓으로 유명한 난고 김병연(1807∼1863)이 조부를 비난한 죄책감 때문에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며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유랑에 나선 때는 22세 무렵. 처자식을 남겨두고 강원도 영월을 떠나 '동가숙 서가식'하던 김삿갓은 34세 되던 1841년에 처음으로 전남 화순 땅을 밟았다.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인 무등산 장불재를 넘은 김삿갓은 눈앞에 펼쳐지는 화순적벽의 절경에 취해 걸음을 멈추었다. 삿갓을 살짝 들고 화순적벽을 응시하던 그는 괴나리봇짐에서 지필묵을 꺼내 짤막한 시 한 수를 지었다. 그때만 해도 김삿갓은 이곳에 뼈를 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화순의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에 걸쳐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 크고 작은 절벽들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모양의 옹성산을 휘감아 돌면서 거대한 산수화를 그린 것이다.
호남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화순적벽은 중국 양쯔강변의 소상적벽을 연상케 하고 소동파의 적벽부를 생각나게 하는 절경. 임억령 김인후 등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화순적벽을 찾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이유다. '적벽'이란 이름은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 중이던 신재 최산두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해 명명했다.
화순적벽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가 전해온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이자 개혁 정치가였던 조광조(1482∼1519)는 화순에서 사약을 받기 전에 25일 동안 배를 타고 다니며 화순적벽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한을 달랬다고 한다. 화순엔 아직도 그가 사약을 받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노루목적벽 상류 3㎞ 지점에 위치한 물염적벽은 병풍처럼 깎아지른 기암괴석과 노송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비단결 같은 강줄기와 주위 풍광을 감싸 안은 듯 포근하고 고색창연한 물염정이 압권이다. 물염정은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로, '물염(勿染)'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뜻. 정자 안에는 김인후, 이식, 권필 등 조선 선비들이 지은 시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물염정은 김삿갓이 즐겨 찾던 정자로도 유명하다. 1850년에 두 번째로 화순을 찾았던 김삿갓은 50세 되던 1857년 아예 동복에 안주하면서 방랑생활을 마감한다. 그리고 1863년 동복면 구암리의 정시룡 사랑방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수많은 시를 지었다. 물염정 옆에는 김삿갓 동상이 시비에 둘러싸인 채 물염적벽을 응시하고 있다.
창랑적벽은 높이 약 40m에 길이가 100m가량 이어진 절벽군으로 웅장한 느낌을 준다. 흙 한줌 없는 절벽 바위틈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나무와 돌단풍이 울긋불긋 풍경화를 그린다.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철조망 밖에서 감상하는 게 흠이지만 동복천에 비친 반영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창랑적벽이나 물염적벽과 달리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안타깝게도 상수원보호구역 안에 위치해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있다. 흔히 화순적벽으로 불리는 100m 높이의 노루목적벽은 4개의 적벽 중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1985년 동복댐이 만들어지면서 50여m의 깎아지른 절벽이 물 속에 잠겼지만 그 위용은 여전하다.
상수원보호구역 초소에서 노루목적벽까지는 산길로 5㎞. 단풍이 울긋불긋한 산길을 몇 차례 굽어 돌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호수처럼 잔잔한 동복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노루목적벽은 붉은 빛을 띠는 거대한 암벽. 하늘로 치솟듯 수직으로 솟아오른 절벽의 위용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단풍으로 물든 옹성산을 머리에 이고 거울처럼 잔잔한 동복호에 반영을 드리운 노루목적벽은 선경 중 선경.
댐이 생기기 전 노루목적벽에서는 매년 4월 낙화놀이가 열렸다. 낙화놀이는 10여명의 장정이 적벽에 올라 용모양의 달집에 불을 붙여 하늘로 던지는 것.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의 한을 달래고 소원을 비는 행사로 적벽의 붉은 기운과 옹성산의 단풍이 마치 낙화놀이 할 때의 불꽃처럼 보인다.
노루목적벽 맞은편에 위치한 보산적벽은 규모는 작지만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파인 모양새가 신비롭다. 보산적벽 위의 평평한 구릉에는 망향정이 위치하고 있다. 망향정은 댐 건설 후 물에 잠긴 월평마을 등 15개 마을의 실향민을 위해 세운 정자다. 정자 옆에는 15개의 마을 유래비를 세워 해마다 설날과 추석 때 망향제를 지낸다.
망향정에서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노루목적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망미정이 나온다.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이 인조가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에 분개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은둔생활을 했던 곳으로 현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다. 조선팔도를 두루 섭렵한 김삿갓이 하필이면 화순의 동복을 세 번이나 방문했을까? 그리고 동복의 구암리 마을 정시룡씨 사랑방을 제집 드나들 듯 하다 화순적벽에서 방랑생활을 마감했을까? '내 집에 오는 손님을 반겨 맞으라'는 정씨 가문의 넉넉한 인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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