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스물다섯 살의 여자 후배와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연상의 애인과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가 현재 헤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 애인은 그동안 다른 여자와 만나고, 가벼운 폭력마저 행사하고, 헤어지자는 말도 서슴없이 꺼내는 개차반에 가까운 남자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가 드문드문 연락을 해올 때마다 마음이 고스란히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첫 남자지?" 역시 그녀 인생에서 첫 번째 섹스 상대였다. 왠지 익숙한 패턴이다.
내 나이 스물한 살에 처음으로 남자와 잤다. 첫 연애였고, 사귄 지 열흘 만이었다. 첫 섹스라는 게 그 남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오늘 하룻밤 완전히 하나가 되고 싶어서…. 여자에게 이런 의미일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개가 얼떨결에, 거절을 못 해서, 남자가 너무 간절하게 원해서, 일 때가 많다.
나 역시 술에 취해서 으슥한 건물 계단에서 자꾸만 파고드는 그 남자를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라서 학교 앞 여관으로 못 이긴 척 들어갔다. 내심 빨리 자버리고 나면 이 곤란한 상황을 다시 겪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첫 섹스 중간에 너무 아파서 화장실로 내뺐다. 피를 닦으며 변기 위에 앉아 있는데 화장실 문을 덜컹 열고, "괜찮아?" 하는 남자의 100퍼센트 벗은 몸을 보고 화들짝 놀라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 당황했던 게 기억난다. 더 충격적인 건, 그렇게 어렵사리 첫 섹스를 마치자마자 이 남자가 코를 골며 잠든 것이었다.
행복했던 밤이냐? 그렇지 않다. 섹스라는 게 결국 덩치 큰 남자가 공격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내 몸속을 왔다갔다하는 것이구나, 이제 나는 처녀가 아니구나, 이렇게 아픈데 왜 사람들은 섹스를 할까, 코 골고 자는 이 남자는 도대체 왜 나와 자려고 한 걸까, 나를 좋아하긴 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서 잠 한숨 못 자고 그 남자 곁에서 밤을 꼬박 지새웠다.
결국 그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분명 그 남자가 나와 잘 안 맞는 남자였고, 내가 일방적으로 상처받는 관계였고, 그렇다고 내가 미친 듯이 좋아한 것도 아닌데 한동안 이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그 남자가 전화하면 쪼르르 달려가서 술 한잔 걸치고 섹스를 하고.
나중에야 내 몸이 '첫 남자'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몸정'이라는 것이, 나쁜 사랑에서조차 미련을 남긴다는 것도 알았다. 내 몸은 내 머리보다 순결하고 한결같고 그래서 미련했던 것이다.
후배에게 빨리 다른 남자와 자라고 충고했다. 네 몸에 남은 그 남자의 흔적을, 빨리 다른 남자의 것으로 채워버리라고. 그러면 그 나쁜 남자에 대한 미련은 깨끗이 지워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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