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5) 섹스 얘기 좋아한다고 헤픈 여자라니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9. 23:38

[서른한살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5) 섹스 얘기 좋아한다고 헤픈 여자라니?

 

나는 야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섹스 이야기는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음침한 곳에 모여 히죽히죽 웃어대며 나누는 음담패설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내가 야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은 타인과 자유롭게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 그 남자와의 섹스가 너무 좋았어"를 "오늘 점심 정말 맛있었어!"와

똑같은 무게, 똑같은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섹스에 대해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는 여자들이나 그런 이야기에 큰 불쾌감을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 대해, '이 여자는 마음껏 희롱해도 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말야, 너희 중에서 가장 자고 싶은 여자를 꼽아봤는데 1순위가 강양, 2순위가 김양,

3순위가 이양이 나왔어. 킬킬킬." 얼마 전 술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그동안 그들과 어우러져 종종 섹스 이야기를 나누던 나조차도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그들 앞에서 내 몸이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강양, 또다른 김양, 이양은 당황하면서도 하하 웃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오랫동안 마음 잘 맞는 지인으로 지내온 남자들이 한 농담에 대해

뭐 굳이 삐죽하게 반응하랴 싶었을 것이다. 악의를 갖고 한 이야기도 아닌데 괜히 분위기 흐리지 말자 고

생각했을 수 있고 이걸 기분 나빠해야 하는 게 맞나? 순간 헷갈렸을지도 모른다.

 

역시 여자들은 의외로 '정색하는 법'을 모른다. 화를 낸다거나 줄행랑을 치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거나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꿋꿋하게 그 자리를 참고 견디는 것이다.

야한 이야기가 밋밋한 유머보다 훨씬 재미있다. 성경험이나 성 취향을 오픈하고 났을 때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해지고 서로 약간씩 친근해진다. 우리의 은밀한 욕망에 대해 분명히 말하는 순간 묘한 해방감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섹스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선'이 필요하다.

섹스 이야기를 좋아하는 여자라고 해서 헤픈 여자는 아니다.

포르노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아무 남자의 손길에도 헐떡거리며 좋아하는 여자도 아니다.

 

우리를 발가벗기지 않고도 섹스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우리를 하룻밤 바이브레이션의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그걸 굳이 까발릴 필요는 없다.

나도 물론 지나가다 이상형의 남자를 볼 때면 저런 남자랑 자고 싶다고 생각하고, 마주 앉아

술잔 기울이는 섹시한 남자와 섹스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일일이 "당신은 같이 자고 싶은 남자예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섹스 이야기는 그냥 섹스 이야기일 뿐이다. 그냥 우리 명랑하게 섹스 이야기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