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서른한살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4) 이런 남자와 자고싶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9. 23:36

[서른한살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4) 이런 남자와 자고싶다.

 

두 살 연하남과의 짧은 연애 이후 나는 공식적으로 '남자를 끊겠다!'고 선포했다.

거의 10년 동안 다 합해 1년도 채 쉬지 못한 연애들에 나는 급속도로 지쳐가고 있었다.

 

'남자를 끊은' 몇 개월 동안 주말에 종종 회사에 나가 일을 했고, 새롭게 운동을 시작했다.

일요일에는 청소와 빨래를 했고, 새벽 4시 넘어서 자서 일요일 12시가 넘어서 깨어나는 날도 많았다.

외로웠냐고? 아니, 나는 그 동안 연애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와 해방감, 행복을 느꼈다.

왜 그 남자가 그렇게 행동하는지 고민할 일도 없었으니 머릿속은 항상 맑고 깨끗했다.

내가 한 행동에 후회하거나 괴로워할 일도 없었고, 내 삶은 어떠한 동요도 없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옆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는 남자를 본 순간

그 편안했던 모든 순간이 산산조각 무너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동안 지친 몸 누일 남자의 품이 그립긴 했으니,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섹스 파트너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내가 꾸준히 만나야 할 모임의 남자였고, 애인도 있는 남자 아니었던가!

 

간밤 필름이 하얗게 끊겼던 것을 원망하며 어떻게 이 남자를 보내야 하나, 를 고민하는데 순간

이 남자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지 않으려는 그에게 그냥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그는 내 옆에 누워서 애인에게 친구네 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의 화내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상하게 그 상황은 나를 흥분시켰고, 그를 보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은밀한 파트너를 갖게 되었다.

애인과의 섹스만으로도 욕구불만인 20대 남자와 연애는 지겹지만 완벽한 싱글 생활을 위해

고정적인 섹스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결합이니 어찌 보면 무척

실용적인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근래 들어 나는 이 관계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 그건 우리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남자와 여자로서의 애정. 애정 따위는 필요 없어, 라고 말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그와 살을 섞고 나면 그전에는 전혀 실감 못했던 외로움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물론 나와 자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이 끝나면 바로 바지를 꿰차고 어색해하며 담배를 문다.

그러고 보니 딱 기본 애무 외에 별다른 애무를 해준 적도 없다.

섹스가 끝난 뒤 팔베개를 하고 나란히 누워 다정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아, 나 역시 섹스에 그리 쿨한 여자가 아니었구나.

 

아무래도 파트너를 바꿀 때가 온 것 같다.

최소한 애인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남자,

내 몸을 구석구석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

나와 섹스하는 동안에는 완벽하게 나를 사랑하는 남자.

나는 그런 남자와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