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9) 남자들 못 잊는 건 첫사랑이 아니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9. 23:46

[서른한살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9) 남자들 못 잊는 건 첫사랑이 아니다,

"잘 지내니?" 하며 그 남자가 연락을 해왔다. "난 너랑 잘 수 없어"라는 그의 말에 "나랑 연애해요.

자지 않아도 돼요. 가끔씩 만나서 술 마시고 이야기하고……, 당신도 나 좋아하잖아요!" 하며

매달린 그날 이후 근 5개월 만이다.

내 인생에서 세 번 남자에게 매달려봤다.

 

스물세 살, 어린 남자 후배가 연애하자고 조를 때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 당시 내가 좋아하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빠 좋아해. 내가 지금 다른 남자한테 가버리면, 오빠는 평생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그는 말했다.

 

"넌 정말 좋은 여자야, 그러니까 더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해."

스물일곱 살 때, 떠나는 애인의 오토바이 앞에서 울면서 무릎을 꿇었다.

"제발 가지 마. 내가 정말 잘못했어.

"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오토바이를 몰고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남자들이 첫사랑을 못 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남자들이 정말 못 잊는 건, 자신을 끔찍하게 좋아했던 여자다.

더 이상 자신들이 핸섬하지도 않고, 인기가 많지도 않고, 젊지도 않다는 것을 자각해 가면서

그들은 무용담처럼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들을 떠올린다.

 

그녀들이 얼마나 순정적이고 진실하게 자신을 좋아했었는지 떠올리면서 자신들이 아직까지

'남자'임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과 이름은 이미 예전에 잊었으면서 그녀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기억하는 것이다.

 

한때는 6개월마다 좋아하는 남자가 바뀌었을 때가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오롯이 미친듯이 그 사람을 사랑하다가

다시 나를 설레게 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또 새 사람을 완벽하게 사랑하던 때였다.

 

나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매 남자들을 잊어갔지만 그들은 다시 나타나서

'네가 예전에 나를 참 좋아했었지' 하면서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그들을 좋아했던 사실이 부끄러워서,

그 시간을 지우고 싶어서 한참 동안 고통스러워했다.

그때 알았다. 내 자존심을 사랑과 맞바꾼 대가란, 비참함과 모멸감이라는 사실을…….

 

어차피 시간은 지나간다. 어느 즈음이면 나는 나의 실수를 용서하고, 그를 까맣게 잊을 것이다.

그 사건은 재미난 안주거리로 우스꽝스럽게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에게 각인됐다. 그는 나라는 여자를 자신의 청춘의 말미를 화려하게 장식해 준,

'나를 좋아한 여자'로 평생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렇게 드문드문 연락을 해올 것이다.

 

일상이 고되거나 무료해질 때, 몸이 아프거나 지칠 때, 아직도 이 여자 나를 좋아하겠지,

그렇게 나를 좋아했으니 내가 연락을 하면 반갑게 맞아주겠지, 그래 난 아직 죽지 않았어!

절대로 남자에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사랑이 치욕으로 변하는 순간. 그건 평생 경험해보지 않아도 되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