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해야 여자랑 기분 좋게 잘 수 있는 거야?" 조군이 투덜댔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여자 후배와 단둘이 술을 마시게 된 조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둘 다 적절히 취했고 여자가 먼저 살짝 풀어져서는 술집에서 나오는 길에 은근히 기대오더라는 것이다.
특히 모텔 앞을 지나면서 휘청, 하는데 그 순간 조군은 '이건 같이 자자는 신호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텔까지 간 건 좋았다.
어색하게 침대에 앉아 있다가 본격적으로 육체의 대화를 나누려는 순간, 그녀가 갑자기 묻는 것이다.
"오빠, 나 좋아해?" "……음. 좋아하지." "육체적으로 말고 이성적으로 말이야." "……."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나랑 자려고 해?"
그는 그만 확 술이 깨서는 그 자리를 뛰쳐나오고 말았다.
조군이 여자 사냥을 즐기는 나쁜 남자도 아니고 그냥 그 순간이 좋아서 충실하고 싶었을 뿐인데…….
무참하게 깨진 그의 욕망이 안타까우면서 동시에 그녀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들도 섹스가 하고 싶다.
오늘밤 내 이야기에 잘 귀 기울여주는 남자, 내내 성적 긴장이 느껴지는 남자,
살짝 스치는 손등이 불쾌하지 않은 남자라면 이 밤 따뜻하게 살 부대끼면서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당신과 자고 싶어"라고 먼저 말할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아주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여자들은 그 순간 엄격한 자기검열이 시작된다.
헤픈 여자가 되어서는 안 돼, 지금 자면 나를 얼마나 쉽게 보겠어?
여자가 죄책감 없이 섹스할 수 있을 때는 조금이나마 감정이 전제돼 있을 때다.
"난 너를 너무너무 사랑해" "내가 이러는 건 널 좋아하기 때문이야"라고
그가 말하는 순간 여자들의 성욕은 면죄부를 얻는다.
난 좋아하는 사람과 잔 거야, 그의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서야.
다른 사람에 비해 자유롭고 개방적이라고 믿었던 나도 그랬다.
딱 두 번째 만났을 때 같이 잔 남자가 있었다. 나 역시 물었다.
"우린 어떤 관계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그가 뭐라고 대답했던가. 가끔 만나서 술 마시고 같이 자고, 그런 관계지.
난 그를 남자로서 좋아하지도, 연애를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 순간 사랑 고백을 거절당한 여자처럼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도대체 왜 이 남자와 잤을까,
이렇게 싸게 보이다니. 여자들은 왜 그렇게 생겨먹었냐,
왜? 섹스에서 감정을 요구하냐라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다.
오랜 교육의 탓일 수도 있고, 육체와 감정이 분리될 수 있는 남자들의 동물성에 세뇌당해서일 수도 있고,
실제로 남자들이 한 번 잔 여자들을 하룻밤 상대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까짓것, 그냥 좋아한다고 말해줘. 이 순간 너무나 예뻐 보인다고. 뒷일이야 어떻든 간에
마음이 찜찜할지언정 오늘 하룻밤, 도덕적 잣대 없이 뜨겁게 서로의 성욕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게 뭐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