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1) 여자들은 완벽한 섹스를 잊지 못한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19. 18:37

 

[서른한살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1) 여자들은 완벽한 섹스를 잊지 못한다.

한 남자와 헤어지고 난 뒤 한참 동안 그를 잊지 못했다.

처음에는 사랑 때문인 줄 알았다.

내 생에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을 놓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 때문이라고.

얼마 전 날선 목소리의 여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우리 오빠랑 아직도 만나요? 우리 오빠한테 미련 있어요?" 그녀는 다짜고짜 나에게 따져물었다.

 

그를 못 만난 지 이미 2년. 얼마 전 안부를 묻는 문자를 주고받긴 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 문자를 그녀에게 들킨 모양이었다.

좋은 직장 다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는 멀쩡한 아가씨가 한 시간 동안 전화통을 붙들고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당신한테는 이런 거 해줬냐, 나는 이런 거 받아봤다'

이런 유치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듣다 보니 짜증이 나면서도 문득 데자뷰 같은 게 일어나는 거다.

아 이 상황, 왠지 익숙하다.

 

그 남자와 연애하는 동안 그는 몇 번 낯선 여자들의 전화와 문자를 받았더랬다.

어떤 여자들은 드문드문 안부 문자를 남기기도 했고, 또 어떤 여자들은 당장 만나자고 떼를 쓰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행동하고 다니는 거냐' 몇 번 싸우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세상에 참 집요하고 무서운 여자들 많구나 하며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제야 이 남자가 만난 모든 여자들이 왜 이 남자를 잊지 못하고 집착하는지 알 것 같다.

 

그는 내가 잔 모든 남자 중에서 가장 섹스를 잘하는 남자였다.

남다른 기술이 있다거나 사이즈가 남들보다 크거나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나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금세 흥분하고 항상 나를 만지고 싶어했고 또 갖고 싶어했다.

 

섹스하는 동안에는 내 몸 하나하나를 골고루 예뻐했고,

내내 귓가에 대고 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여자인지 속삭였다.

내가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 내는 소리가 좋다고 사정을 늦추고,

내가 간지러운 신음을 낼 수 있는 포인트를 정성껏 찾아내는 남자였다.

 

그는 나와의 섹스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잠들어 뒤척이는 순간에도 내 몸을 안고 또 안아주었다.

그와 섹스하고 난 뒤 비로소 나는 사랑하는 남녀가 한 마음을 뛰어넘어 한 몸이 되는,

섹스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 남자의 현재 애인의 전화를 받고 난 뒤 모든 게 명백해졌다.

나 역시 그와 헤어지고 난 뒤 몇 명의 남자를 만났다.

건조한 섹스도 있었고 하룻밤에 몇 번 오르가슴을 주는 남자도 있었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남자도 있었고 내가 좋아한 남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자고 난 후면 항상 그가 그리웠다.

 

여자들은 완벽한 섹스를 잊지 못한다.

내 몸을 나보다 더 사랑해준 남자는 내 몸 속에 영원히 각인된다.

"더 이상 그 남자에게 미련 없어요.

" 쿨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지만 무척 불쾌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누리던 그 많은 것들을 이제 네가 누리고 있구나, 너는 밤마다 참 행복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