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3) 남자가 '사랑해' 말하는 순간..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19. 18:40

(13) 남자가 '사랑해' 말하는 순간..

 

"사랑해." 남자가 말했다. 그가 막 사정한 다음 순간이었다. 나는 술에 만취해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물론 그 남자에게 호감이 있고, 몇 번 데이트 비슷한 것도 거쳤지만 설마…… 벌써 사랑이라니.

남녀 관계에서 처음 나누는 '사랑해'라는 말은 어느 날 문득 가슴이 벅차오르고 숨이 막힐 만큼 행복한 감정 그 자체에서,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죽을 거 같은 때 튀어나오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동안 '사랑해'라는 고백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잠시잠깐 당황했던 것 같다. 보통 남자들이 그 말을 한 것은 사귀기로 한 첫날 아니면 첫 섹스 때였다. 나 역시 설렘과 충만함으로 가득한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고백을 들을 때마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당황했던 것일까.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의 분위기를 깨지 않을 만큼 달콤한 '대답'을 해주기 위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려야 했다. 알다시피 연인 관계에서 '사랑해'라는 말은 "너를 사랑해"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고백이 아니라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이렇게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이니까. 그래서 내가 선택한 답변이란 왠지 찜찜한 "사랑해"라는 말 대신 "나도~"였다. 물론 나도 그들을 많이 좋아하긴 했지만 사랑해, 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뭔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남자들은 객관적이고 교과서적인 '사랑'의 기준에 채 도달하지 않은 시점에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성적인 흥분을 '사랑'과 헷갈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살짝 손끝만 닿아도 짜릿하고 금세 폭발할 듯 가슴속이 부풀어오르는 것. 이런 몸의 반응은 언뜻 '사랑'과 비슷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이 여자와 자고 싶다는 욕망, 엄청 기다렸던 섹스에 대한 기대감, 사정하는 순간의 쾌감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몸을 다 주었으니 앞으로 너를 진짜 사랑할 거야"라는 자기 암시거나 "이제 옛 여자는 잊고 너에게 충실하겠어"라는 선포 혹은 다짐은 아니었을까?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갖는다. "나도 사랑해!" 하면서 그의 목을 끌어안을 수 있다면 해피엔딩이지만, 왠지 뒤끝 구리고 찝찝해진다면 그 말을 아껴두는 게 좋겠다. 차라리 "너랑 섹스하는 게 좋아" "정말 (섹스가) 좋았어"라고 말하는 게 낫다. 그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 그를 만나는 게 설레고 재미있었지만 이제는 나에게 사랑에 대한 기대감과 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리고 명백한 사실은,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남자들이 '사랑해'라는 말을 남발하지 않길 바란다. 사랑해, 라고 말하기 전에 이게 육체적 욕망 혹은 흥분은 아닌지, 정말 이성적으로 이 여자를 사랑하는지 한 번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아니라고?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