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4) 여자에겐 부끄럽지만 '몸정'이 있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19. 18:42

(14) 여자에겐 부끄럽지만 '몸정'이 있다.

 

"여자들은 도대체 왜 그러냐. 한 번 잤는데 그 다음에 계속 문자 치고 전화 오고, 아주 스토커가 따로 없다니까. 왜 그렇게 쿨하지 못해?"

알고 지낸 지 오래인 남자아이가 말했다. 그로서는 평소 쿨하고 섹시하다고 생각했던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쿨해 보였던 그녀가 그에게 매달리는 형국이 되었나 보다.

물론 그녀가 평소 그를 남몰래 흠모해서 함께 하룻밤 보내기를 간절히 바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녀 역시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잤을 수도 있다. 그에게 먼저 전화하고 문자를 보낼 거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참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여자들에게는 '몸정'이라는 것이 있다. 애인이 아닌 사이라도 같이 자고 나면 이상하게 이 남자가 신경 쓰이고 기다려진다. 그날 밤 그렇게 적극적이었던 여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이제 막 처녀성을 잃은 여자아이처럼 소극적이고 지고지순해지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여자는 자고 난 뒤 묘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 남자가 최상의 섹스 상대였건 아니건 상관없다.

섹스가 끝나고 난 뒤 남자는 좋은 섹스였는지 나쁜 섹스였는지만 기억한다. 그러나 여자는 섹스 중간 그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던 말들과 다정한 손길이 더 기억된다. 나를 안는 순간 그가 뭐라 말했던가. 네 몸 참 예쁘구나, 다른 사람한테는 보여주지 마라, 너 이제 내 거다, 너무 좋다……. 그 순간순간이 모두 고스란히 남아 며칠째 머릿속을 맴도니, 나중에는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하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속살을 드러내고 은밀한 신음을 들려주는 일이란 여자에게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무방비 상태의 나를 꼭 안아주었던 남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자는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린다. 오늘 중으로 문자 한 통 오겠지, 오늘은 전화하겠지. 그러나 몸과 마음이 모두 쿨한 남자들은 절대 연락하지 않는다. 그러면 여자들은 그들에게 직접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날 밤 내게 속삭였던 그 말들이 다 거짓이었니? 그 따뜻한 손길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거야?

여자들은 스토커가 아니다. 하룻밤의 섹스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여자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무리 쿨해 보여도 절대 쿨하지 않다는 것이다. 참으로 다정했던 말,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속해졌을 때 오는 기쁨과 행복, 따뜻했던 품은 여자에게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실은 나쁜 일도, 비웃을 일도, 짜증낼 일도 아니지 않은가. 다행인 건 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그날 밤은 떠오르지 않고 그런 '먹튀남'이 있었지, 라는 사실만 기억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