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7) 애무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19. 18:49

(17) 애무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지인이 남자친구와 밤생활에 대한 문제점을 털어놨다. "그는 정말 딱 내 가슴만 좀 만지다가 바로 들어와. 난 하나도 흥분 안 됐는데…."

이런 남자들 생각보다 아주 많다. 애무를 생략하는 남자들 때문에 고민하는 여자 여럿 봤다. 실제로 여자들은 '삽입' 자체를 즐기진 않는다. 혀뿌리가 뽑혀나갈 것 같은 강렬한 키스 아니면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구석구석을 매만져주는 애무라거나 섹스 후 남자의 품에 꼭 안겨서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이 가장 황홀하다는 여자도 있다.

애무를 생략하는 남자의 논리란 단순하다. "고기를 먹고 상추를 먹는 거나 상추에 고기를 얹어 쌈으로 먹는 거나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잖아." 그래, 이 아까운 시간에 비생산적인(?)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아까울 수도 있지. 이런 남자들을 만나면 방법이 없다. 독하게 마음먹고 애무하는 법을 일일이 가르치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애무 잘하는 남자를 찾아 떠나는 수밖에 없다.

또 한편 애무를 아주 잘하는 남자들도 있다. '여자를 만족시키려면 애무를 잘해야 한다'면서 애무 기술을 꼼꼼히 가르쳐주는 남성잡지들이 늘어난 탓인지 나도 모르던 성감대까지 찾아내기도 한다.

그런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위아래 아주 기본적인 곳부터 손가락과 손바닥, 귓불과 배꼽, 무릎 안쪽, 심지어 발가락까지 그의 혀가 안 닿는 곳이 없었다. 처음 몇 번은 정말 좋았다. 그런데 그런 밤이 몇 번 지속되고 나자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의 애무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어 그 순서대로 차례로 진행됐고, 게다가 애무에만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지금 본게임이 시작되면 더없이 훌륭한 타이밍을 놓쳐버리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어느 날 밤 땀까지 뻘뻘 흘리며 몰두하던 그 남자가 드디어 얼굴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마치 꼭 해야만 하는 숙제를 다 마친 양 흐뭇한 표정을 보았을 때 나는 그 남자와 끝냈다.

남자들에게는 '여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섹스를 잘한다'는 이야기만큼 남자들을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만드는 것도 없다. 애무를 생략한 삽입이든 너무 과도한 애무든, 이런 것들이 불편한 이유는 남자들의 자기만족과 도취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애무라는 게 사실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다. 그녀의 감춰둔 부드러운 속살, 손길이 스칠 때마다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몸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밤이 다시 못 올 거라 믿고 그 순간에 충실하면 모든 애무는 저절로 나온다. 거기엔 기교도, 계산도, 그리고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