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였다.
밤 늦게까지 이어진 스터디 뒤풀이 자리. 우리 모두 취했다. 평소 완벽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잠시잠깐 나를 설레게 했던 남자가 술자리 끝에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나, 김양에 대한 소문 들은 적 있어요. Y양이 그러는데, 당신…… 문란하다고."
그러고는 슬쩍 내 위팔을 살짝 잡아왔다. 순간 나는 술이 확 깨서 그를 밀치고 술자리에서 뛰쳐나왔다.
Y양은 그 스터디 모임에 함께 참여하는 여자 멤버로서 한때 그 남자와 사귄 적이 있었고, 나보다 약간 어리고 좀더 뽀얗고 거기에 아직 '처녀'인 아가씨였다.
그녀가 이성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할 때 내가 몇 번 충고를 해준 적이 있었다. 남자 별거 아니다, 그가 원할 때 하지 말고 네가 원할 때 해라, 성적 긴장과 사람에 대한 설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네가 처녀인 것에 얽매이지 마라, 네 몸이 원하는 것을 억제하고 참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하지만 네 몸의 욕망의 충실하되 절대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
심지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언니, 오르가슴은 어떤 느낌이에요?"라고 물을 때는 내 경험에 빗대어 성심성의껏 대답해준 적도 있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언니는 너무 쿨하고 멋져요.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쪼르르 그 남자에게 달려가서, "오빠, 그 언니는 말예요, 되게 문란한 여자예요"라고 이야기했나 보다.
그녀의 입장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마음껏 누리면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언니'에게 처음에는 동경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경은 곧 자신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러니까 섹스로 '내 남자'를 유혹하거나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따라서 나를 '문란한 여자' '천박한 여자'로 만듦으로써 자신은 마음껏 '순결한' 여자로 그에게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나 같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옛 여자친구에게 전해들은 말 몇 마디로 그날 밤 날 어떻게 해보려고 치근덕거렸던 그 남자보다 그녀가 더 미웠다.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다. '순결하면 좋은 여자, 밝히면 나쁜 여자'라는 잣대는 여자가 먼저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학습받아온 것들, 그 나이까지 여자를 처녀이게 만드는 도덕적 가치 앞에서 여자들은 안전해지고 당위성을 부여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과연 무엇이 헤픈 것이며, 또 문란하고 천박한 것일까. 남자에게 헤픈 여자는 하룻밤 별다른 노력 없이 잘 수 있는 '쉬운' 여자라면, 한 여자가 또 다른 여자에게 '문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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