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31) '밝히는' 여자의 속사정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19. 19:59

(31) '밝히는' 여자의 속사정

 

"넌 너무 밝혀." 섹스가 끝나고 그가 말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같이 잔 남자들에게 이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것 같다. "남자랑 많이 자봤지?" "넌 섹스를 너무 좋아해" "너에게는 정말 강한 남자가 필요하겠구나" 등등등.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마냥 민망하고 부끄러워지곤 했다.

그런데 가만있자, 나는 왜 '밝힌다'는 소리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걸까? 남자가 밝힌다(섹스를 잘한다, 좋아한다)고 하면 정력이 좋다, 지치지도 않는다, 여자들이 좋아하겠다, 하면서 부러워 마지않지 않던가. 그런데 왜 '밝히는' 여자들은 헤프고 음탕한 계집 취급하는 것인가.

물론 처음에는 남자들도 '밝히는'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가 섹스를 거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즐기면 남자들은 원하는 만큼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자신과 자꾸 자고 싶어하는 여자를 보면, 내가 잘하긴 잘하나 보다, 하며 자신감에 넘치기도 한다.

그런데 섹스가 주는 쾌락도 잠깐. 남자에게 섹스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만큼의 칼로리가 소비되고, 매번 단백질 엑기스를 덩어리째 쏟아내야 하는 매우 소모적인 행위다. 따라서 어느 순간 몸이 지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밝힌다.......

이때 남자들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내가 이 여자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 이 여자의 '밝힘'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 여자는 언젠가 정말 '강한' 남자를 찾아 떠날지도 모른다, 내가 섹스가 부실해지는 순간 버림받을 수도 있다... 이런 공포심이다. 그 공포심 때문에 섹스를 좋아하는 여자, 섹스를 거부하지 않는 여자들에게 '천박한 여자' '헤픈 여자'라는 주홍글씨를 박고는 딱 즐길 것만 즐기고 화들짝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매번 '밝힌다'는 오해를 받아오는 나로서, '정말 남자를 밝히냐'고 묻는다면 결단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난 살 부대끼는 것을 좋아하고, 오르가슴의 기쁨을 알고, 섹스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여자일 뿐이다.

여자들은 생각보다 영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순진하디 순진하다. 당신의 품안에 있는 게 좋아서, 당신의 손길만 닿으면 흥분돼서, 당신에게 사랑받는 게 너무 좋아서, 더 사랑받고 싶어서 그녀들은 오늘밤 당신을 '밝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자들이 타이밍 제때 못 맞춘 사정에, 급히 끝나버린 섹스에, 그리 건강하지 않은 정액에, 약해져버린 체력에 자존심 상처받고 그녀들을 멀리하는 순간, 그녀들의 욕구불만이 시작된다.

평범했던 그녀가 '섹스를 밝히는 여자'가 되는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다. 그녀가 정말 밝힌다고? 아니, 여자가 밝히면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당신이 아직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