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외로워서 하는 사랑은 슬프잖아
아침부터 남자 후배가 여자를 하나 소개시켜 달라고 한다. "안 예뻐도 돼요. 외로워하는 여자면 돼요." 외로워서 누군가의 체온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여자라면 자신이 조금만 작업해도 금세 잘 수 있지 않겠냐고. 그가 여자와의 섹스만을 꿈꾸는 나쁜 남자여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 역시 무척이나 외로워서 그렇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여기저기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 자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꼭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어...
그러게 말이다. 나 역시 애인과 헤어지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이제 어디서 외로운 몸을 달래야 하나'였으니, 공식적으로 섹스할 수 있는 애인이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얼마 전 한 남자와 같이 잤다. 그는 내가 같이 자본 남자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손길과 입술이 닿는 곳곳마다 그의 열정과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심지어 너무 꼭 껴안아서, 손조차 놓지 않아서 나는 갑갑해 잠이 안 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상하다, 누군가 그렇게 뜨겁게 안아주면 보통 '이 남자 나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는데, 오히려 너무 오버된 그의 열정이 묘하게 건조한 것이다. 그의 품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 정말 많이 외로웠구나, 사람의 체온이 진정 그리웠구나.'
몸이 먼저 당기는 연애는 실패 확률이 높다. 하룻밤 간절한 외로움에 어영부영 몸부터 섞고 나면 어색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사귀자'고 규정짓고, 그 순간부터 내리 이별을 향해 치닫게 된다. 그게 '사랑'이 아님을 알아채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 뒤에는 후회와 미안함만 남았다. '널 사랑한 건 아니었어'라는 말은 어떤 형태로든 상처가 된다.
그에게 말했다. "그냥 맘 맞는 사람끼리 따뜻한 하룻밤 보낸 걸로 해요. 당신은 날 진정 좋아하는 거 같지 않아요. 외로워서, 그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의 외로움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아무 여자나 달래줄 수 있다. 나는 그에게 사랑의 대상이고 싶었지 체온을 나눠주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여자가 되는 건 슬픈 일이니까.
외로울수록, 오늘 하루 발끝 시려 아무나라도 품에 안고 싶어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참아야 한다. 당장 몸은 따뜻해질지언정 당신의 외로움은 금세 티가 나고 외로워서 시작된 관계는 모두 허무한 뒤끝을 남긴다.
그는 언젠가 한번쯤 전화를 걸어올 것이다. 아마도 다시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질 때겠지. 그러나 나는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남자의 외로움에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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